1970년 11월12일 파리 노틀담사원에서는 세계 정상급지도자 63명이 참석한 가운데 드골의 장엄한 영결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파리에서 동쪽으로 200㎞나 떨어진 콜롱베에서는 드골의 유해를 장갑차 한대가 운구하고 있었다. 장엄한 기병대도, 화려한 의장대도, 추도객들의 긴 행렬도 없는 소박한 장례식이었다. 평범한 고향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9살의 어린 나이로 죽은 그의 딸 안 곁에 드골은 묻혔다. 그날밤 비가 내리는 상제리제 거리에 20만명 넘는 파리시민들이 모여 드골의 추도행진을 벌였다. 장엄한 영결식, 소박한 하관식…. 극과극이 연출된 드골의 장례는 그가 20년전에 작성한 유서에서 비롯된 것이다.
‘1.국장(國葬)같은 행사는 사양한다 2.나는 내 딸 안 곁에 묻히고 싶다 3.장례 참가자는 고향사람, 레지스탕스 동지, 그리고 약간의 육군요원으로 제한한다’ 패전국 프랑스를 전승국으로 격상시킨 거인 드골은 이승의 고별식을 소박·검소하게 치를 것을 유서에 명시한 것이다. 드골은 79년 생애에 두번이나 거머쥔 정권을 스스로 포기한 신념의 정치인이었다. 1946년 자기의 정치적 소신과 의회의 생리가 맞지 않는다 해서 정부주석을 사임했다. 1969년 이른바 ‘5월혁명’이란 좌파들의 총파업을 수습한 이후 지방자치제도와 상원개혁을 골자로 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패배가 확인되자 곧바로 물러났다. 동양의 修身철학에 安分과 時中이라는 것이 있다. 안분은 자기의 몫에 충실하면서 그속에서 마음편히 살라는 뜻이고, 시중은 나갈 때 나가고 물러갈 때 물러가라는 뜻. 드골은 나아갈때와 물러갈때를 아는 君子였다.
올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인물교체바람이 분다. 60대 물갈이론, 호남중진용퇴론, 비리의원 공천배제론이 설왕설래된다. 한번 금배지를 달면 죽을때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노추한 풍토속에서 40대 초선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해 주목을 받는다. ‘나아갈 줄은 알지만 물러갈 줄은 모른다(知進而不知退)는 政商輩가 득세하는 세상에 ‘아름다운 퇴장’으로 멋을 부리는 政治家는 없을 것인가. 드골같이 통찰력·리더십·퇴장의 美學을 고루 갖춘 巨人의 출현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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