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테일러박사는 중학교 졸업후 고등학교에 가지 못했다. 외국어시험에 늘 낙방했기때문. 캐나다출신인 그는 대학에 갈 꿈도 꾸지 못했는데, 미국 앨버타대학이 그를 받아주었다. 과학에 엄청난 재능을 보인 그를 그냥 썩힐 수 없어서였다. “대학에서 라틴어와 독일어를 이수할 것”이라는 ‘조건부 입학’을 시킨 것. 그는 간신히 턱걸이로 외국어시험을 통과했다.
그는 14살때 이것저것 약품을 섞어보다가 폭발해서 손가락 3개가 날아가고 팔뚝에 유리파편이 박히고 얼굴은 피투성이가 됐다. 어머니가 한사코 말리는 통에 화학에서 물리학으로 돌아섰다. 그가 과학을 파고든 것은 ‘궁금증’때문이었다. 원자핵이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나 알고 싶었고, 결국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기본입자인 ‘quark’의 존재를 입증한 공로로 60세의 나이에 노벨상을 받았다.
그는 “노벨상은 목표가 아니라 연구과정의 산물”이라 했다. 상을 받으려고 연구한게 아니라 연구를 하다보니 상이 따라왔다는 것. 고교졸업장도 없는 그를 받아준 앨버타대학이나, 거액을 들여 거대한 실험기기를 갖춰준 스탠퍼드대학과 정부가 인내심 있게 지켜봐준 덕분이니, “나 혼자 얻은 노벨상이 결코 아니다” 했다.
2002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일본 다나카 고이치씨(45)는 명문도 아닌 도후쿠대를 나왔고, 대기업도 아닌 시마즈제작소의 직원이었다. 그가 최근 제주도에서 열린 대한화학회 학술대회에 초청됐는데, ‘겸손한 자세와 엄격한 자기관리’가 화제였다. 노벨상 수상자에게는 으레 특급호텔과 호텔식당 이용, 왕복여비와 초청금 1천~2천만원을 주는데, 고이치씨는 왕복여비 외에는 일체 돈을 받지 않았고, 호텔과 식당의 급수도 낮췄다.
그는 노벨상을 받은 그 해 회사가 ‘주임에서 이사’로 승진시키려했으나 극구 사양해 부장급에 머물렀다가 올 8월에 임원이 됐다. 그는 이번 訪韓길에도 ‘매스콤 타기’를 극력 경계했다. 언론에서 띄운 사람 치고 早老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연구에 몰두하기 어렵기때문이라고. 명성과 돈을 잊어버리고 ‘연구 그 자체’에만 집중할때 노벨상은 제 발로 걸어들어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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