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먹은 유일한 돌이 소금이다. 사람의 체액은 0.9%가 소금물이다. 지금은 겨울에 눈이 쌓이면 길바닥에 뿌릴 정도로 흔한 소금이지만, 한때는 권력과 부의 상징이던 시절도 있었다. 고대 이집트 미라의 방부제에서부터 중국의 만리장성 축성비용, 프랑스혁명, 미국 독립전쟁에 이르기까지 ‘하얀 금’ 소금은 역사의 중요 고비마다 지대한 역할을 했다.
고대 로마문명을 ‘소금에 절여진 문명’이라고도 한다. 대로마제국 형성에 소금의 뒷받침이 컸기때문이다. salary(봉급), soldier(병사), salad(샐러드) 등은 모두 라틴어 sal(소금)에서 비롯됐다. 로마정부는 소금값을 올려 그 수입을 軍費로 썼고, 병사들에게 소금을 급료로 지급하기도 했다.
고대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소금관리제도를 만들어 이를 ‘정치화’했다. 진시황이 집권하자 가장 먼저 시행한 것이 철과 소금의 국가독점제였다. 정해진 구역에서 정해진 사람들이 정해진 양만큼 소금을 거래하게 통제했다.
르네상스의 진원지인 유럽 제1통상국 베네치아는 염전 확보와 소금무역으로 부를 쌓았다. 북아메리카의 인디언, 잉카, 아즈데카, 마야 각국에서 통치권은 곧 ‘소금 지배권’을 의미했다. 영국의 북아메리카 식민지 통제수단도 소금이었고, 미국 독립전쟁은 바로 소금독립전쟁이나 다름 없었다. 프랑스혁명의 발단은 높은 염세에 있었다. 지역마다 염세율이 달라 소금밀수가 성행해 이를 막는 과정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그것이 혁명의 도화선이었다.
19세기 영국이 세계제패의 길에 들어선 것도 유럽 제일의 소금생산국이 되면서부터였다. 바닷물을 끓이는 제염법의 개발로 소금을 대량생산, 부를 쌓았던 것.
지난해 고이즈미 일본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기습참배하자 일본주재 중국대사가 “중국인의 민족감정에 상처를 입히고 소금을 뿌리는 격”이라 비난, 양국간의 외교설전이 일었다.
지난 추석대목 남대문시장을 찾은 여당지도층에게 시장상인들이 “소금을 확 뿌리고 싶은 심정”이라 해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감정을 대변하기도 했다. 국민은 못살겠다 아우성인데 氣싸움으로 민생을 팽개친 정치인들에게 소금바가지를 씌우고 싶은 것이 국민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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