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스페인 국민대중은 ‘공화정부’를 세웠지만, 1936년 프랑코가 대지주, 자본가, 가톨릭교회, 군부를 등에 업고 반란을 일으켰다. 독일 나찌 히틀러와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가 프랑코에 대규모 병력과 무기를 지원했다.
내전 초기 민중의 저항은 대단했다. 이들의 편에 선 사람들은 세계적인 지성인들과 문학예술인들이었다. 앙드레 말로, 어니스트 헤밍웨이, 조지 오웰, 스티븐 스펜스, W·H 오든 등등을 비롯한 수만명의 외국의 명사들이 스페인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칼은 펜을 이겼다. 1938년 1월 바르셀로나가 반란군에 함락되고, 1939년 3월 수도 마드리드가 점령당하면서 공화정부는 저항 3년만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영국, 프랑스, 미국이 프랑코정부를 승인하면서 36년간의 독재 철권정치가 스페인을 지배하게된다. 앙드레 말로는 이를 두고 이렇게 탄식했다. “정의가 실패할 수 있음을, 인간의 精神이 폭력에 꺾일 수 있음을, 그리고 용기가 덧 없이 쓰러질 수 있음을 스페인에서 알게됐다”
최근 스페인정부는 프랑코정권시절 희생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배상을 위한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시켰다. 프랑코가 죽기전 “적들을 용서하겠는가”라고 친구들이 묻자, “내겐 적이 없네. 다 죽여버렸으니까”라 했다. 3만여명이 프랑코정권시절에 목숨을 잃었고, 그 시체들은 큰 구덩이속에 내던져져 무더기로 묻혔다. 현정부는 그 시신들을 발굴, 희생자들의 신원을 밝힐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군은 일본군과 조선정부군에 의해 무력진압됐다. 혁명군은 ‘비적’ 또는 ‘역적’이라 불렀고, 그 후손들까지 반역자로 몰렸으며, 왜정때는 ‘반일 불령선인’으로 찍혔고, 해방후에도 빨갱이 소리를 들었다.
무려 110년만에 동학농민혁명군의 억울함이 풀리게됐다. 친일파를 가려내는 일보다 먼저 해야할 일이 이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기념사업을 펴는 일이다. 부패정부와 외세의 내정간섭에 저항해 일어난 위대한 농민혁명이 그동안 ‘정반대의 대우’를 받았다. 이것이 바로 ‘역사뒤짚기’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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