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1월9일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국경이 개방됐다. 동서독 젊은이들이 브란덴부르크 관문앞 장벽 위에 올라 ‘우리는 한민족’이라고 외치면서 38년 분단의 벽을 부셨다.
이듬해 독일은 재통일을 이룩했다.‘냉전의 속박’을 벗은 독일은 ‘라인강의 기적’을 동독의 엘바강에서 재현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로부터 15년후 정부위탁으로 구성된 ‘전문가위원회’는 동독지역 경제 평가 작업을 벌였다 “1조5천억 유로를 투입한 동독경제가 사실상 실패했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분배위주의 계획경제에 함몰됐던 지역에 경제적 경쟁력을 소생시킨다는 작업이 지극히 어려운 일임을 입증했다. 올해 9월 독일시사주간지 ‘슈테른’은 동서독 지역민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 21%가 분단의 장벽부활을 원했다. 이념의 대결로 오랜 분단을 경험한 민족통일 작업에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됐다.
북한의 ‘60년 세습독재’실상은 어떠한가. 김일성이 50년동안 살아있는 神으로 군림했고 세습독재자 ‘장군님’이 유훈통치를 내세우며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고 떠벌리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 고수’나팔이 울리면 울릴수록 죽어나느 것은 인민들. 북한은 스스로 95년부터 98년까지 기아로 22만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 노동당 내부문서는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은 390만명이라고 집계했다. 6·25전쟁 3년동안 사망자 382만명 보다 많은 숫자. ‘김일성 수령독재’는 참혹한 피폐를 낳은 실패작으로 귀결됐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보다 ‘우리의 소원은 북한의 개혁·개방’ 이 더 설득력이 있다.
‘김일성 보다 박정희가 싫다’보다는 ‘박정희보다 김정일이 싫다’가 타당하다.
최근 거물급 친북인사가 해외나들이에서 ‘대북안보·경제보상’을 촉구하는 ‘김정일 옹위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제2차 북핵위기는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파기하고 우라늄농축 방식 핵개발을 전격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
‘反독재 투쟁·진보’라는 새로운 기득권에 안주하면서 ‘북한 감싸기’에 몰두하는 ‘좌파적 몽상가’들이 힘께나 쓰고 있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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