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도 저물어간다. 부안 명기 이매창의 시조가 생각난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여라” 이른 봄 날 배꽃이 비처럼 흩날릴 때 애인은 의병에 나갔고, 낙엽이 날리는 계절이 되도록 소식 한 자 없다. 그저 꿈에서나 천리길을 혼자 오락가락할 뿐.
“나뭇잎이 땅위에 떨어지네/ 아주 조용한 소리로/ 곧 겨울이 오겠지/ 하늘은 음침하고 무겁다/ 황금색 찬란한 가을빛은 어두운 갈색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곧 흰눈이 은색 털외투처럼 대지를 덮겠지/ 지금의 음울한 나날들도 나는 소중히 간직하리라/ 그래서 겨울이 아주 깊어질 때/ 우리의 황금빛 시절을 추억하며/ 울적한 마음들을 씻어보리라”
90살이 다 돼가는 미국 여류시인 ‘아드넬 메이슨’의 시 한편.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거워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다.
“10월은 나의 단풍잎은 황금빛으로 물들였네/ 이제 거의 다 떨어지고 여기저기 한 두잎 뿐/ 머잖아 그 잎들도 힘 없는 나뭇가지에서 떨어질테지/ 죽어가는 수전노의 손가락에서 흘러내리는 동전처럼”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미국 시인 ‘토머스 올드리치’의 작품. 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명예, 권력, 재물의 가치를 묻는다.
“우리의 모든 과거는 바보들이 죽음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었다/ 꺼져간다. 꺼져간다/ 짧은 촛불이여!/ 인생은 단지 걸어다니는 그림자/ 무대 위에서 으시대고 안달하다가 사라지는 불쌍한 배우/ 인생은 아무 의미도 없는/ 소음과 분노로 가득찬 백치 이야기”
셰익스피어의 ‘멕베드’ 5막5장에 나오는 구절. 인생의 무의미함을 이처럼 ‘독하게’ 설파한 시도 없을 터. 그러나 인생을 긍정하는 시인도 많다.
“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갑구나/ 낚시 드리우나 고기는 아니물고/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오노라”
세조의 손자 월산대군의 절창. 왕위 계승자로 가장 유력했으나 권신들의 농간으로 밀려났고, 江湖에 물러앉아 詩文을 벗삼으며 지은 작품이다.
가을은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기 좋은 계절이다. 다 버리고 떠난 빈 나뭇가지에 내년 봄을 위한 속잎이 봉긋이 자라나 조용히 숨을 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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