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은 조선 영조 52년(1776년) 당시 삼수부사를 지낸 류이주가 지은 것으로 99칸의 대규모 저택이다. 류이주는 그가 처음 이사와 살았던 구만들(九萬坪)의 지명을 따 호를 '귀만'(歸晩)이라 했으며 이 집을 '귀만와'(歸晩窩)라고도 불렀다. 운조루라는 택호는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란 뜻과 함께 구름 위를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란 뜻도 지니고 있다. 본래 이 집의 이름은 중국 진나라 때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 칠언율시에서 머리글자만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서...
조선 4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합장묘. 세종대왕릉에서 바라본 정자각 모습과 전경. 왕릉 용세도 양동주 대구한의대 대학원 겸임교수
천주교 대구대교구 주교좌성당 계산천주교회, 통칭 계산성당(桂山聖堂)은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오거리에 위치한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다. 본당의 주보성인은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이다. 1911년에 대구대목구가 설정되었을 때 주교좌성당으로 결정되었다. 1885년 12월 제7대 조선(朝鮮)대목구장 마리장귀스타브 블랑(한국식 이름: 백규삼) 주교가 대구본당을 신설하고, 초대본당 주임으로 프랑스의 아킬레 바오로 로베르(한국식 이름: 김보록) 신부를 임명하였다. 로베르 신부는 신나무골에서 대구와 가까운 죽전 새방골(대구시 서구 상리동...
한 나라의 중심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중심도시가 있으며 그 중심도시는 행정 사법 입법기관이 그곳에 있어서 나라살림을 꾸려나가는 국가의 심장부가 되는 것이다. 신라는 경상도 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지금의 경주에 월성을 쌓고 그곳에 왕궁을 지은 후 나라를 통치하는 중심이 되었으며, 고려는 개성을 조선은 지금의 서울인 한양을 중심으로 하여 나라를 통치하는 중심도시로 발전하고 국가를 지탱하여 온 것이다. 조선이 건국되고 도읍을 정할 때 여러 일화가 있지만 그중에 무학대사와 삼봉 정도전의 도성내의 궁의 배치를 두고 설전을 벌인 일화로 정...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명정리에 위치한 울산김씨의 중시조비(中始祖中) 여흥민씨(麗興閔氏)의 묘소는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물론, 풍수지리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복부혈의 명당 터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여흥민씨(1350-1421)는 아호(雅號)가 하소부인(荷沼夫人)으로 한성판윤 량(亮)의 따님이며 태종비 원경왕후 민비와 사촌이다. 그녀는 울산김씨 시조 김덕지(金德摯:신라 경순왕의 둘째왕자)의 17세손인 김온(金穩)과 혼인하여 달근, 달원, 달지 3형제를 두었는데 둘째아들인 달원의 현손이 바로 신라, 고려,...
우리나라 3대 박사마을로 유명한 곳은 전북 임실의 삼계면과 강원도 춘천의 서면, 그리고 경북 예천의 호명면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서 전북 임실군 삼계면은 2014년까지 배출된 박사 수 "157명의 박사가 배출돼 전국 면 단위 최다 박사 배출 마을이다"고 한다. 삼계면 박사골 마을의 유례를 살펴보면 오수에서 순창방면으로 국도 13호선을 약 7km 달리면 면소재지가 나온다. 삼천(三川)인 뇌(磊)천, 유(柳)천, 후(後)천의 유역, 또는 삼계(오수천, 율천, 사매천)의 하류라하여 삼계, 즉 세 개의 시내가 흐르는 곳이라고 삼계면이...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렀는데 능인대사가 젊었을 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 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천등산'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다. 그 뒤 더욱 수행을 하던 능인스님이 도력으로 부석사에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와서 머물렀으므로 산문을 개산하고, 봉황이 머물렀다 하여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명명...
영남권 남쪽에 위치한 김해 낙동정맥의 끝자락이 아닌 지리산의 낙남정맥이 본맥 가야 건국설화 간직 '구지봉' 현대생활권 위치 의미 더해 낙동강 유역 변진 지역에 기원을 전후로 하는 시기에 가야의 여러 나라가 있었다. 그중 AD 42년에 김해 지역에서 건국된 나라가 가락국이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의하면 가락국을 세운 사람은 김수로왕이었으며, 그 왕비는 아유타국에서 온 허왕후라고 한다. 가락국은 6가야의 맹주로서 주변의 다른 가야들 중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6세기경 신라의 세력팽창에 의해서 김해지방에 있는 금관가야가 신라...
조선후기 1878년 화재로 소실돼 중창하지 못한 '옥룡사' 1996년 순천대박물관팀 지표조사…절터·명문 비편 90여점 확인 도선국사, 땅의 힘으로 나라 흥성 나누는 '양택 이론' 펼쳐 신라 쇠망·새 나라 출현 정당화시킨 근거로 활용되기도 전라남도 광양시내에서 북쪽으로 지방도를 따라 약 25㎞ 떨어진 곳(광양시 옥룡면 추산리)에 옥룡사지(玉龍寺址 사적 제407호)는 백두대간의 마지막 성봉인 지리산을 태조산으로 하여 산맥이 마치 연 꼬리가 춤을 추듯 힘차게 용트림하면서 달려와 섬진강을 건너며 잠시 쉬는 듯 하다가 다시 용트림하여 ...
15세기 초 감천 문씨 정착…후손들 마을 형성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 했던 곳으로 조선시대 고가옥·돌담길 등 양반문화 간직 마을 앞 금곡천 사금 생산·연화부수형 형국 금곡서원·사괴당고택 등 전통생활양식 남아 금당실은 마을 내 고인돌 무덤이 산재하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청동기시대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기록상으로는 600여년전 15세기 초 감천 문씨(문헌)가 이곳에 정착하여 살면서 그의 손자 문부경의 사위 박종린과 변응녕이 처향인 금당실에 터전을 잡으면서 그 후손들이 번성하여 큰 마을을 형성...
흥해는 신라 지증왕 때 '퇴화군'으로 불려 '불이 물러간 고을'이란 뜻에서 지명 유래 신광, 진평왕때 '혼불' 근원지로 지목받아 낙동정맥은 백두대간에서 분맥해 강원도 태백시의 구봉산(九峰山)에서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沒雲臺)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던 한반도의 산맥체계는 하나의 대간(大幹)과 하나의 정간(正幹), 그리고 13개의 정맥(正脈)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산과 물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사상에서 비롯된 이와 같은 산맥체계는 10대강의 유역을 나누는 분수(分...
"하늘이 감추고 땅이 숨긴 천하명당 준경 묘" 강원도 삼척시에 있는 준경묘·영경묘(三陟 濬慶墓·永慶墓)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 장군의 묘인 준경묘와 장군의 부인 평창 이씨의 묘인 영경묘의 묘역으로, 조선 왕조 최고의 선대묘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 후 어명을 내려 선대의 묘를 찾아 고종 임금때인 광무 3년(1899년) 4월 16일에 고종이 공식적인 선조의 묘로 추봉(追封)하고 묘와 재각, 비각 등을 수축·정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양무장군의 능묘는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에 있고 어머니인 '평창 이씨'의 ...
퇴계선생의 성은 이(李), 이름은 황(滉), 자는 경호(景浩)이고, 퇴계(退溪)는 그의 호이다. 1501년 11월 25일 예안현 온계리, 즉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이름은 식(埴), 어머니는 순천 박씨였다. 아버지는 불행하게도 퇴계선생이 태어나신 후 7개월만인 이듬해 6월에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퇴계선생은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게 되었다. 좀 더 자세히 그의 가정 내력을 알아보면 퇴계선생의 관향(貫鄕)은 진성(眞城)이니 그 시조는 이석(李碩)이다. 그는 청송군 진...
광주이씨 족보에 보면 그 조상들이 신라 때 칠원(漆原 : 현재의 경남 함안)에서 일종의 부족사회를 이루고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자성(李自成)을 시조로 하여 내려온 칠원성은 신라의 모든 성이 고려 왕건에게 항복한 뒤에도 마의태자(麻衣太子)만을 王으로 섬길 뿐 왕건에게는 굽힐 수 없다하여 끝까지 항거하였으므로 크게 노한 왕건이 대군을 이끌고 친히 성을 함락시킨 뒤 이씨성을 가진 일족들을 모두 체포하여 회안(淮安 : 현재의 경기도 광주)지방 관헌들에게 노비로 삼도록 하였다. 이후 여러 세대에 걸쳐 광주지방 노비들 중에서 ...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는 대구 도심에서 서쪽으로 약20㎞ 떨어진 마을이며 달성군 다사읍에서 성주군 쪽으로 가다가 칠곡군 왜관읍 방향으로 약4km 들어가면 오른쪽 좁은 길로 접어들면 묘리가 있다. 묘리(妙里)는 밖에서 마을을 볼 수 없고 안에서도 마을 밖을 볼 수 없다고 하여 붙혀진 이름이다. 주민들은 '묫골'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찰의 일주문처럼 생긴 '충절문'을 지나 마을에 들어서면 길 양쪽에 50여 채의 한옥이 있으며 북쪽 끝에는 사당인 '육신사(六臣祠)'가 있다. 조선 세조 때 단종 복위운동을 하다 숨진 성삼문·박팽년...
오어사는 동해안에 있는 신라고찰 중 보경사와 함께 유명한 사찰이다. 경북 포항시 오천읍(烏川邑) 운제산(雲梯山) 동쪽 기슭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며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창건하여 처음에는 항사사(恒沙寺)라고 하였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절 이름 가운데 몇 안되는 현존 사찰의 하나이다. 혜공(惠空)·원효(元曉)·자장(慈藏)·의상(義湘) 등의 승려가 기거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주변에는 오어호(吾魚湖)라는 깊은 저수지가 있고,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한 13동의 당우(堂宇)가 세워져 ...
조상님들을 모신 묘에 자란 잡풀들을 자르거나 정리하여 산소를 깨끗하게 하는 작업을 말한다. 사람에 비유하면 이발을 하여 단정한 모습으로 가꾸는 것과 같다. 금초라 부르기도 한다. 벌초의 기원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으나 유교의 관혼상제에서 시제와 묘제를 언급하고 있고, 특히 성리학에서 묘제를 중시하는 부분 등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한국사회에 유교가 보급되면서 벌초를 하는 관습도 같이 들어온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실제 성리학이 보급된 조선시절에는 조상님들 묘에 잡풀이 무성한 것 자체도 불효로 인식했다. 벌...
양동마을에 사람이 언제부터 정착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청동기시대 묘제인 석관묘가 안산(案山)인 성주산 정상 구릉지에 100여기나 있고 고고학계 보고로는 기원전(BC 4C 이전)에 거주가 시작됐다고 본다. 또 이웃 안계리 고분군(古墳群)으로 미뤄 이미 삼국시대인 4~5세기께 상당한 세력의 족장급 유력자가 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에서 조선 초까지 오씨(吳氏). 아산 장씨(牙山 蔣氏)가 작은 마을을 이뤘다고 하지만 확인 자료는 없다. 경북 고문서집성(영남대 발간)에 의하면 여강 이씨(驪江 또는 驪州 李氏)인...
풍수지리학에서 주택을 방위별로 구분하여 동사택(東四宅)과 서사택(西四宅)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풍수지리학에서 볼 때 이기론적 해석으로써 주역의 팔괘를 방위별로 배치하고 이것은 음양의 이론을 적용하여 각각 4방위로 나누어지는데 양의 괘를 가진 방위에 있는 집을 동사택이라 하고 음의 괘를 가지는 방위에 있는 집을 서사택이라 구분한다. 음양이론의 전개를 보면 처음 우주는 무극이라 하였다. 이 무극(無極)에서 양의(兩儀)로 나누어지는데 이것이 음과 양으로 구분된다. 양은 '―'기호로 음은 '--'기호로 하는데 이것이 효(...
음양오행은 고대 중국에서 발생한 이론으로써 우주 만물과 자연의 현상은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에 의해 변화한다고 보았다. 음양을 다각적 현상으로 나누어보면 음지와 양지, 밤과 낮, 땅과 하늘, 여자와 남자, 차가움과 따뜻함 등 대립된 상태로 존재하지만 균형과 조화가 중요한 것이다. 동양의 음양오행설은 서양 그리스의 4원소설에 비하여 오행은 불(火)·물(水)·나무(木)·쇠(金)·흙(土)으로, 고체는 금과 토로 분류하고 여기에 생물인 목을 더하여 서양보다 자연에 대해 더 깊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오행 사이에는 도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