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성동 지경마을서 출발한다. 예부터 대구와 영천을 오갈 때 길목 역할을 했던 능선재(能城岾)는 지세가 성(城)과 닮은 데서 유래되었다. 오늘은 이곳서 팔공산 둘레길 종합안내 센터까지 총 3.69㎞를 여행한다.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지나가고 한가위가 가까워져 오면서 9월은 더 깊어졌고 햇살은 얇아졌다. 불어오는 바람에서 가을 냄새가 난다. 차로를 따라 길은 이어진다. 띄엄띄엄 농가와 카페가 보인다. 해바라기는 해를 찾아 고개를 돌리고 석류는 농염하게 익었다. 농가에 묶인 강아지는 아무 걱정 없는 천진함으로 서로 장난치며 꼬리를 흔든
팔공산 약사암 입구 근처에 차를 주차한 뒤 Y자 길에서 좌측으로 내려왔다. 개울가 식당 앞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우렁차다. 개울을 따라 세팅된 테이블이 시원해 보인다. 흰구름 두둥실 뜬 하늘은 청명하다. 바람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는다. 계곡 위 다리를 건넜다. 능성재까지 3.1㎞. 단거리지만 산은 평지와 달라 얕잡아볼 건 아니다.9월에 들어서면서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졌지만, 한낮의 햇살은 정수리를 녹일 듯 내리쬔다. 비포장 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오른쪽에 복숭아밭이 보였다. 연세 드신 부부가 막바지 복숭아를 따
은해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오늘은 영천시 청통면 은해사에서 경산시 와촌면 약사암 입구까지 총 5.6㎞를 여행한다. 대구 날씨 38도. 차에서 내리는 순간 거대한 열기가 회오리쳤다.편의점에서 얼음물 여러 병을 사서 배낭에 넣었다. 강렬한 햇볕에 놀란 사람들은 시원한 곳으로 숨어버렸고 식당가는 무료한 신음을 토해내며 노릇노릇 익어갔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일주문 앞 광장에서 평일에는 하루 세 번, 주말엔 네 번 한다는 분수 쇼가 한창이다. 경쾌하거나 리드미컬한 음악에 맞춰 물줄기가 춤을 춘다. 하늘로 치솟았다. 낮아졌다 가볍게
오솔길 입구에 이정목이 섰고 팔공산 둘레길 빨강 리본은 철조망에 걸려 팔랑인다. 오른쪽으로 신원리 캠핑장 계곡이 이어졌다. 좁다란 길은 음영이 확실했고 근처에 양봉을 치는지 벌 몇 마리가 날아다닌다. 길가에 마구잡이로 자란 잡목은 머리채를 잡아당기거나 어깨나 등을 내려치기도 했다.곧이어 우둘투둘한 오르막이 이어지더니 과수원이 나왔다. 사유지로 송이 채취 구역이니 입산을 금지한다는 푯말이 있다. 둘레길 조성 시 영천시와 땅 소유자 간에 원활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듯했다. 표식이 없어 헤매다가 겨우 숲으로 들어섰다. 총체적 난관 지
영천시 신녕면 오라지는 특별한 건 없다.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저수지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나무 그늘이 깊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늘이 펄럭였고 좁은 임도는 돌이 많아 울퉁불퉁하다. 다양한 공생이 이루어지는 숲에선 향기도 가지각색이라 딱히 무슨 향이라 구분하기 힘들지만, 코끝에 자연의 냄새가 기분 좋게 달라붙는다. 여름은 자연에 있어 절정기. 번식하고 열매 맺고 익어간다. 그 치열함의 열기를 식히려 이따금 바람은 숲을 흔들어대는지 모른다.오늘은 11, 12코스를 동시에 여행한다. 부귀사를
영천시 신녕면 치산 2리 동구 밖 당산나무 아래다. 이곳에서 치산 계곡 방향으로 100미터쯤 가면 왼쪽에 전봇대가 섰고 ‘가보고 싶은 곳’이란 옻닭 식당 플래카드와 함께 둘레길 이정목이 섰다.안내판에는 10코스 종착지가 치산 캠프장으로 되어 있지만 실재 끝 지점은 치산마을 보호수이다. 큰길 따라 무심코 걷으면 이정목을 지나칠 수 있으니 둘레길이 목적이라면 당산나무 지나서부터 왼쪽을 유심히 살피는 게 좋다.오늘은 팔공산 둘레길 11코스 인근에 있는 수도사와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에 있는 인각사를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을 짰다. 널찍한 차
가호 2리에 다시 왔다. 이곳에서 백학2 리를 거쳐 치산마을 돌담길로 이어지는 8.9㎞가 둘레길 10코스이다.2주 전에는 마을 입구 표석에서 일정을 마무리 했지만 오늘은 자동차를 주차해 둘 겸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시작점과 끝 지점간 거리는 10㎞가 채 안 되지만 경북 구간에 들어서면서 교통편 연결이 어려워 시작점에 차를 두고 돌아올 때는 지역 콜택시를 이용할 때가 많다.자연부락별 유래에 의하면 가호리는 구씨(具氏)가 400여 년 전에 개척하였다고 한다. 동림(東林)으로 불리기도 하는 것은 동쪽에 숲이 우거진 곳이란 뜻이고 고려
오늘은 팔공산 둘레길 9코스와 그 주변을 여행한다. 삼존석굴을 지나자 둘레길 이정목이 두 팔을 벌리고 섰다. 파란 하늘엔 새털구름이 흩어졌다 모이고 다시 풀어지면서 갖가지 모양을 만들어낸다.오른쪽 멀리로는 산성봉과 비로봉 등 여러 능선이 꽃잎처럼 겹쳐 색과 멋을 더하고 마을과 연결된 길은 곡선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낸다. 그동안 팔공산 둘레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돌담을 봐왔다. 돌담의 매력에 빠져 시간을 지체한 적도 있고 아쉬움이 커 마음은 그곳에 두고 온 적도 있었다.오늘 내륙의 제주도라 불리는 대율리 한밤마을에서 무사히 떠날 수 있
요 며칠 비가 참 잦다. 가뭄 해소는 되었지만 사진을 찍고 도보여행을 계획한 사람에게 비는 낭만적이지마는 않다. 여행은 예기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리기도 하고, 돌발적인 일로 인해 스릴이 증폭되기도 하지만 고생을 좀 더 한 여행이 기억에 오래 남는 경우가 많다.둘레길 8코스는 윗산당마을을 시작으로 홍천뢰 묘를 지나 응추리와 각골을 거쳐 군위 삼존석굴까지 이어지는 총 9.5㎞이다. 2주 전 진남문에서 출발해서 이곳에 도착했을 때 참 난감했었다. 마을이니 당연히 버스나 택시를 쉽게 이용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여행자의 착각이었다.
어제는 반가운 비가 종일 내렸다. 메말랐던 땅은 촉촉해져 갓 구운 빵처럼 말랑했고 초목은 파릇파릇 생기 있어졌다. 길가 곳곳에 자그마한 물웅덩이가 생겼다. 여행객보다 먼저 도착한 구름이 어느새 그 안에 들어앉았다. 진남문을 통과해 성안으로 들어섰다. 오밀조밀한 숲길이 양옆으로 펼쳐졌다. 길의 끄트머리가 해원정사다.정성껏 가꾼 티가 나는 정원에 금강역사 두 분이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다. 이곳에 가산산성 외성을 축조한 이세재 관찰사 비각이 있다. 사찰을 지나 왼쪽으로 돌면 공원관리 초소이다.오늘은 진남문에서 중문, 북문을 거쳐 윗
대왕재가 있는 선명학교서 여행을 시작한다. 대구 구간 끝이자 칠곡 구간 시작지라 할 수 있다. 초입은 야트막한 오솔길이다.선명학교 학생들의 야외활동 장소로 이용되는 곳이라 아기자기하게 꾸며졌다.500m쯤 걸어가면 당정 마을에서 올라온 길과 만난다. 겹벚꽃이 화사한 교차지점에 이정목이 나무인형처럼 서 있다.동산 느낌의 산책길에 햇살이 축복처럼 내리고 찔레꽃은 얼굴이 뽀얀 아기만큼이나 사랑스럽다. 그쯤에 대구시 동구 5구간과 경상북도 칠곡군 6구간 경계 표지판이 있다. 경계라는 의미가 주는 뉘앙스가 참 오묘하다. 이것과 저것, 어제와
바람이 맞춤하게 불고 하늘은 해맑다. 오늘은 덕곡 삼거리에서 대왕재까지 총 5.6㎞가 주 코스이다. 시작부터 나무 계단이 이어졌다. 다행히 풍경에 매료되어 힘들다는 생각 없이 산 중턱까지 단숨에 올랐다. 그곳서부터 응해산 허리춤을 잡고 꼬불꼬불 걸었다.가다가 잠시 멈춰서 마을풍경을 굽어보았다. 4월의 마을은 예뻤다. 꽃 피고 새 울어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행복하게 했다. 비로봉과 서봉, 가마바위봉이 까마득히 보였고 파계봉 골짜기는 2주 전보다 초록이 훨씬 짙어졌다.송정 삼거리 방향 이정목이 보여 산허리에서 내려왔다. 왼편에 재실이
내동 저수지 둑길이다. 둘레길 3코스 끝이자 4코스 시작점이다.개나리가 노랗게 핀 임도가 이어졌다 곡선의 길이 무척 선해 보인다. 자전거 탄 사람의 뒷모습이 풍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다.언덕배기에 전망대 쉼터가 있다. 운동기구로 잠시 몸을 푼 후 내동마을을 내려다보며 준비해 간 커피를 마셨다.다시 길을 재촉하면 Y자 길이 나온다. 왕건길은 왼쪽 나무계단을, 둘레길은 진행 방향 그대로다. 하늘다리를 지나면 복숭아와 포도 과수원길이 이어진다.제철이 아니라 복숭아 맛은 볼 수 없지만 파릇하게 존재감을 드러낸 민들레와 개망초의 눈웃음
하늘이 높다. 구름 한 점 없다. 가을 하늘만 공활한 게 아니다. 3월 하늘도 그러하다. 대신 바람은 세차다. 귀한 것일수록 그저 얻어지는 법이 없다는 말이 꼭 맞는 것 같다. 꽃이 피고 새싹이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게 그만큼 어려운 거다. 바람이 코로나바이러스를 통째로 뽑아 가 버리길 바라며 팔공산 자락 아래에 섰다. 일부러 거리두기를 하지 않아도 이곳은 바람과 나무, 새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미곡동 자라미 입구에서 출발했다. 소나무 숲길이 이어졌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작년 가을에 떨어진 이파리가 잘 튀겨진 과자처
서당마을을 가기 위해 바람의 길에서 낮은 능선을 따라 걸었다. 삐뚤빼뚤, 좁고 고불고불한 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얼핏 보면 이전에 걸었던 길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풍경의 결과 색에 미세한 차이가 느껴진다. 메말랐던 수피가 촉촉해지면서 솔잎에 푸른 기운이 돈다. 진달래 가지는 젖니 돋는 아기처럼 바람이 불 때마다 입을 오물거린다.동면에서 깨어 기지개 켜는 숲에 무한한 신비가 감춰져 있다. 새들은 숲의 내밀한 질서를 이해했다는 듯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다니며 수다를 떤다. 이곳 길은 유난히 울퉁불퉁하다. 땅속에 있어야 할 뿌
팔공산 자연식물원에서 일정을 시작한다.둘레길 1구간 시작점이랄 수 있다. 미니 습지에 파란 하늘과 구름이 내려앉아 화려한 색감을 뽐낸다. 개체수와 자생지가 감소하여 점점 사라져 가는 희귀식물을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이곳엔, 팔공산 자락 아래서 서식하는 향토 특산 식물로 가득하다.물론 지금은 황량한 벌판에 갈대만 서걱댈 뿐이지만, 바람이 순해지고 햇볕이 간질간질 내리쬐면 기분이 좋아진 대지의 여신이 날마다 꽃을 출산할 테고, 그때는 아무 때나 와도 눈이 황홀하겠다. 노랑무늬붓꽃, 만자바람꽃, 병꽃나무와 더불어 여러 곤충이 어우러질 봄
공기 중에 아주 작은 물방울이 떠다닌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미세한 입자가 마음으로 전해진다. 모든 게 안개구름 속에 숨었고 세상은 촉촉하다. 어느 화가의 수채화에서나 나옴직한 고즈넉한 길을 천천히 풍경을 즐기며 걸었다. 실루엣으로 존재하는 숲의 깊은 곳에서 새가 운다. 너무 맑으면 안 봐도 될 것까지 봐야 하지만 안개가 짙으니 최소한의 것만 보거나 보여도 되니 좋은 면도 없잖아 있다.팔공산 안내센터와 마주하고 섰다. 직진을 하면 갓바위이고 왼쪽으로 가면 자연식물원이다. 둘레길을 가려면 이곳에서 왼쪽 길을 가야 하지만 여행의 참맛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지극히 평범한 말이지만 때로는 진리처럼 들린다. 시작했다는 건 마음을 정했다는 뜻이라 성공 확률이 그만큼 높다. 새해엔 대부분 사람이 1년의 계획을 세우거나 다짐한다. 같은 찬바람이라도 1월의 바람이 12월과 다른 이유다. 살을 에는 매서운 바람도 새해에는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시작’의 의미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 아닐까.인간은 원래 뭔가를 시도해 보려는 의지가 강하다. 어제의 미진함이나 부족함을 변명과 위안으로 삼기보다는 실패의 경험을 토대로 더 나은 내일을 설계하고 싶어 한다. 향상된 내일을 꿈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