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읽어주는 남자] 세계 최고 수준의 오페라 극장을 꿈꾸며
[오페라 읽어주는 남자] 세계 최고 수준의 오페라 극장을 꿈꾸며
  • 최상무 대구오페라하우스 공연·예술본부장
  • 승인 2019년 01월 08일 15시 57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1월 09일 수요일
  •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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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상무 대구오페라하우스 공연·예술본부장
세계 오페라 전용극장(오페라하우스)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인 1637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Teatro San Cassiano(산 까시아노)’라는 최초의 오페라하우스가 탄생하였다. 이후 1640년에는 베네치아에서만 오페라 극장 용도로 리모델링한 극장이 세 곳이 더 생겨났고 이후에 일곱 곳으로 늘어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1700년대 들어서는 유럽의 거의 모든 도시에 오페라하우스가 유행처럼 건립되기 시작했다.

1637년 베네치아 ‘산 카시아노 극장’의 건립은 세계 오페라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된다. 이전에는 왕족이나 귀족들의 집에서 소규모로 이루어지던 오페라 공연이 신분에 관계 없이 누구나 볼 수 있는 대규모의 오페라 공연으로 변화 발전한 것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요즘은 비싼 입장료를 내야 앉을 수 있는 1층의 로열석이 초기 오페라 극장에서는 평민들이 서서 보는 자리였고 2층과 3층에 마련되어진 박스석이 귀족들을 위한 좌석이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은 연기자들의 모습과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1층을 좋은 자리로 여기지만 당시의 귀족들은 자신들을 신격화하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2층과 3층을 선호했던 것이다. 아울러 유럽의 유명한 오페라 극장들은 2층과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중앙 출입구로부터 잘 보이는 위치에 나선형으로 자리했는데 이는 귀부인들이 오랜 시간 계단을 돌아 올라가며 화려한 드레스를 자랑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것이다.

유럽의 유명 오페라 극장들은 대부분 대리석으로 지어졌으리라는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오페라 극장이 유행처럼 지어지던 17세기에는 대다수의 오페라하우스가 목조건물이었고 조명으로 촛불을 사용하다 보니 화재로 극장이 불타버리는 경우가 대단히 흔하였다. 물론 실수로 인한 화재가 대부분이었겠지만 개인적인 원한이나 극장간 과열 경쟁에 따른 방화도 많아서 화재 발생의 이유가 영원히 비밀에 싸인 채 밝혀지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리석으로 꾸며진 화려한 오페라 극장들은 왕족들의 후원을 받아 지어진 건물들이다. 일반 평민들이 많이 찾았던 오페라 극장들은 시내 중심가의 목조 건물이 대부분 이었고 이후에 리모델링된 상업 극장들도 벽돌로 이루어진 것이 많은 편이다. 우리가 세계적 수준 오페라 극장이라 부르는 최고의 오페라하우스는 외관만 화려한 곳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 극장에 소속되어있는 오케스트라, 합창단, 발레단 그리고 그 극장의 작품 제작 수준을 모두 고려하여 최고의 오페라 극장이라는 명예를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 고장에 있는 대한민국 유일의 오페라 전용 극장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최고 수준의 오페라 극장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현재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과 같은 상주 단체의 안정화를 통한 수준 높은 음악과 발레단 확충 등의 수준 높은 볼거리, 무대 제작 기술 확충 등의 역량을 꾸준히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예술가들의 안정적인 노동환경 조성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과 더불어 시 관계자 및 우리 지역 시민들의 관심이 우리 지역의 문화수준 향상을 위해 꼭 필요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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