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이어진 돌계단 내려다보니 현기증
롯지에서의 흥겨운 윷판에 시름 떨쳐내고
세르파의 한국 요리실력에 다시한번 감탄

김유복의 안나푸르나 원정기 Ⅴ

오늘(11월 16일)은 정말 특별한 날이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히말라야에서만은 이날을 잊을 수가 없다.

 

지난해 에베레스트 트레킹때 3천500m 지점에서 집사람이 사고를 당한 날이 바로 11월16일이었다.

 

고소에서 골절상으로 엄청난 곤욕을 겪었던 기억이 새로워 잠이 오지 않는다. 그때 엄청 애를 먹은 이인 대장, 파상 남겔 세르파가 이번에도 함께 했다.

 

당시 '쿤데'에 있는 산간병원의 '닥터 까미'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늘 간직하고 있다. 3천800m 산간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의지가 대단했다. 카트만두를 떠날 때까지 뒷바라지를 해준 '옹추'(현지 가이드)가 생각난다.

하얀 눈 산과 푸른하늘 그리고 아름다운 꽃의 조화가 히말라야의 신비를 더한다.

 

'옹추'는 우리 일행들의 롯지 확보 때문에 먼저 들어와 내일 합류를 한다니 보고 싶어진다. 다들 고마운 사람들이다. 필자 나름의 '히말라야 메모리얼 데이(Hymalaya Memorial Day)'인 11월16일 밤을 웅대한 만년설의 산과 영롱하게 빛나는 별무리와 함께 했다.

 

11월 17일,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도반(Dovan)'까지 간다. 다소 여유가 있고 그리 어렵지 않은 운행이다. 아침으로 떡국이 나왔다. 정말 여러 가지 메뉴가 다 있다. 물론 이인대장이 짜준 식단표에 의해 만들어 내긴 하지만 재주도 좋다. 출발에 앞서 스트레칭은 필수다. 모두들 어제의 어려움은 보이지 않는다. 열심히 스트레칭을 하는 사이 안나푸르나 사우스봉에서 눈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대규모의 눈사태는 아니더라도 육안으로 목격이 되는 장면이어서 히말라야의 또 다른 모습을 보았다. 8시 25분에 촘롱을 떠났다. 내려가는 길이 까마득하다. 스타트부터 또 돌계단이다. 어제 지누단디에서 촘롱까지 겪은 돌계단의 어려움이 엄청났는데 또 다시 끝 모를 데 까지 내려가는 돌계단을 보니 머리가 어지럽다. 건너편 마을이 손닿을 듯 가까이 보이지만 계곡까지 내려가 올라가야 하므로 족히 2시간은 가야한다. 끝없이 긴 돌계단의 내리막과 오르막을 한차례 올라 당도한 곳이 '시누와(sinuwa)' 마을이다.

시누와에서 만난 옹추1(왼쪽)과 옹추2와 함께 한 필자.

 

반가운 얼굴이 필자를 맞아준다. '락파 옹추 세르파(Lhakpa Ongch hu Sherpa)' 라는 현지 가이드 셀파다. 지난해 에베레스트 트레킹 때 함께 하며 인기 짱이었던 청년이다. 붙임성이 좋고 매사를 긍정적이고 열심이던 유망한 젊은 고산족이다. 필자와 각별한 정은 집사람 사고 당시 끝까지 보살펴준 덕에 늘 고맙게 여기고 있었는데 여기서 만난 것이다. 우리 일행의 숙소 해결을 위해 먼저 들어와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이 청년도 한 등급 올랐단다. 지난해는 보조였는데 이제는 어엿한 현지 가이드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영어도 곧 잘하고 한국어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열정이 있는 젊은이라 지난해 왔던 대원들이 모두 반갑게 안아준다. 스태프 중에 '옹추'라는 똑같은 이름을 가진 보조 가이드가 있어 트레킹 시작 때 필자가 '옹추2'라고 이름 붙여 주며 이번에 만난 '옹추'를 '옹추1' 으로 부르도록 했다. '옹추2'도 역시 세르파 족이며 '옹추1'과 같은 쿰부 쪽 동향인이었다.

 

구름사이로 비친 만년설의 모습.

'시누와'마을 입구에서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 뒤 1시간여 떨어진 같은 마을의 롯지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고도가 2천340m인 이곳 시누와 에서의 점심은 비빔국수가 나왔다. 점심은 늘 분식위주로 나오는 게 이번 트레킹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시누와 게스트 하우스(Sinuwa Guest House)'에서는 태양열을 이용한 더운 물 샤워가 가능하다. 50루피를 받고 제공한다. 간판이 재미있다. 'SOLAR HOT SHOWER'라 쓰여 있다.

 

김용운 명예회장이 '시누와'에서 되돌아가기로 했다. 근육통으로 고생하고 있는 데다 앞으로의 일정 또한 험난해 대원들에게 누를 끼칠 수 있다는 판단으로 포카라에서 휴식을 취하며 3일후 합류하기로 했다. 같이 간 아들과 안까르마 사장이 함께 내려간다.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다. 후일을 기약 할 수밖에 도리가 없을 것 같다.

시누와 게스트 하우스의 간판에 모여든 사람들.

 

점심이 끝난 후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계속되는 급경사 내리막이 이어지고 또 다시 오를 걸 생각하면 걱정스러워지기까지 한다. 계곡을 건너기 전 높은 바위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폭포 아래에서 쉬면서 박재석 이사가 박수를 유도하고 노래를 한다. 일행들의 피로를 풀고 자칫 고통스런 워킹에 즐거움을 주기 위해 휴식 때 마다 노래를 불러 준다. 이번 트레킹단의 행정과 촬영을 도맡아 하면서도 팀을 리더 하는 역할에 대원들이 고마워한다. 노래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덩달아 '옹추1'이 네팔 노래를 한곡 뽑는다. '레삼 삘리리'라는 세르파족의 사랑 노래를 열창해 박수를 받는다.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며 쌓였던 피로가 절로 풀린다.

 

2시 30분에 '뱀부(Bamboo)' 에 도착했다. 레몬차를 내어 놓는다. 네팔은 차(茶) 문화가 발달된 곳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맨 처음 뜨거운 '밀크 티(Milk Tea)'를 한 컵 가득 부어주고, 낮 시간에는 시원한 차 종류를 롯지에서 휴식 할 때마다 내어 놓는다.

촘롱의 밤하늘에 선명히 보이는 북두칠성과 안나의 산들.

 

'도반(Dovan)' 까지 가는 길 좌측에는 여러 갈래의 폭포가 장관을 이루고 있고 우측으로는 눈 녹은 계곡물이 끝없이 쏟아지고 있다. 오후 4시 조금 넘은 시간에 오늘의 숙박지인 '도반(Dovan 2천505m)'에 도착했다.

 

롯지 한 곳에 다 수용하지 못해 두 곳의 롯지에 나누어 들어갔다. 롯지 앞마당 벤치에 앉아 캔맥주로 피로를 달래고 있는 사이 구름이 전망을 가린다. 히말라야 고산지대 날씨는 아침에 쾌청하다.

 

오후부터는 높은 산에 서서히 구름이 모여서 늦은 오후에는 구름이 산을 가리는 것이 보통이다. 지금까지 그러지 않았는데 오늘은 늦은 오후에 구름에 가려 높은 봉우리가 보이지 않는다.

눈 사태가 나고있는 안나푸르나 사우스봉.

 

저녁 식사가 나오기 전에 황태찜이 먼저 나온다. 군침이 도는 안주를 보고 가만히 있을 산꾼들이 아니다. 이제 소주도 없고 롯지에서 파는 '럼(Rum)주'가 동원된다. 한 순배 돌아가니 화색들이 좋다. 저녁식사 메뉴는 간고등어 등의 메뉴에다 야채전과 김칫국, 갖가지 밑반찬이 줄줄이 나온다.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저녁을 먹고 난 후,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오늘은 윷놀이를 하기로 했다. 다이닝에 모인 대원을 두 편으로 갈라 김태호(산향클럽) 대원이 만든 윷가치로 윷판을 벌였다.

 

다이닝에 있던 미국청년과 독일 아가씨에게 함께 하자고 하니 웃기만 한다. 미국청년은 우리말도 잘하고 '백 또'까지 알고 있어 우리 문화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프랑스 젊은이들도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본다. 상금으로 필자가 100달러 내어 놓으니 추여사 (강석호 회장 부인)도 100달러 걸었다.

 

윷놀이란 한번 시작되면 흥이 저절로 나게 되어 있는 법이다. A팀, B팀 나눠 A팀 팀장은 이경수 박사가, B팀은 필자가 맡았다. 밀고 당기고 각축하다 A, B팀이 비겨 소위 '똘똘말이'에서 B팀이 승리했다.

 

난리가 났다. 먼 이국땅 깊은 산속 롯지에서 흥겨운 윷판이 모든 시름을 다 앗아간다.

 

환호와 탄성, 아쉬운 함성이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히말라야 산중을 메아리쳐 나간다. '도반'의 밤은 또 이렇게 깊어간다.

 

11월 18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아침 식사를 마치고 7시 10분 '도반'을 떠났다. 오늘이 가장 힘든 산행이 예상되는 날이다.

 

고도를 1천600m이상 올려야 하고 최종 목적지인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가야하기 때문이다.

 

당초 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서 숙박하고 다음날 새벽에 A,B,C에 오를 예정이었지만 남은 시간 여유가 없어 오늘 A,B,C까지 강행군하기로 했다.

 

'도반'에서 다음 롯지가 있는 '히말라야' 마을까지는 밋밋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다시 계곡으로 내려와 계곡을 가로질러 정글지대를 30여분 지나면 롯지가 보인다. 이곳 정글지대에는 흰 야생 원숭이들이 살고 있어 혼자 가는 트레커들에게 간혹 달려들기도 한다고 주의를 준다. 우기 때는 이 정글지역에 주가(거머리)가 많아 조심해야 한단다. 밀림지역을 벗어나면 수목의 변화가 온다. 키가 큰 나무들은 없고 고산 특유의 키 작은 나무들이 서서히 늘어나는 게 3천m급으로 올라온 느낌이다. '히말라야 게스트 하우스(2천900m)'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계속 행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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