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중국과 신라의 도교 유적과 기록
[기획특집] 중국과 신라의 도교 유적과 기록
  • 곽성일 기자
  • 승인 2019년 09월 17일 19시 55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9월 18일 수요일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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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장생 신선 만나고 고을 수호신 모시니 행복 염원 기운 만끽
영락궁 전경.
영락궁 전경.

삼라만상은 모두 생명으로 연결돼 있다. 생성과 소멸, 태어남과 사라짐, 모두 생명과 관계된 것이다.

인간은 태초부터 생(生)과 사(死)에 대한 의문을 품고 살아왔다. 그래서 철학과 종교가 탄생했다. 이것은 생과 사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다.

무릇 생명은 인간을 비롯한 삼라만상에게 있어서 절박한 화두이다. 고대인들도 철학과 종교를 만들어 의지하거나 극복을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그 쉼없는 노력은 지금 현대인들도 현재진행형이다. 그것은 영원히 풀리지 않거나, 신에게 의지하거나, 스스로 부처임을 깨달아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거나 하는 등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수준이 결정된다. 태어나서 영원히 살 수 없을까 하는 것이 인간의 숙제였다. 그래서 불로초를 찾고 불로장생하는 신선이 되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 노력의 흔적을 찾아서 도교(道敎)유적들을 찾아 나섰다.
 

중국 산서성 영락궁(永樂宮) 입구

△중국 산서성 영락궁(永樂宮)

서기 1247년에 건설을 시작해 장장 111년에 걸쳐 1358년에 공사를 마감한 도교 전진파(全眞派) 3대 도관인 영락궁(永樂宮)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는 용호전(龍虎殿)과 삼청전(三淸殿), 순양전(純陽殿), 중양전(重陽殿)에 분포된 원(元)나라 때의 벽화이다.

산서(山西, Shanxi)성 예성(芮城, Ruicheng)현에 위치한 영락궁은 대표적인 원나라 때의 건물양식을 보존한다. 굵은 대들보가 첩첩하게 교차 되고 장식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일명 무극전(無極殿)이라고도 하는 삼청전은 태청(太淸)과 옥속(玉屬), 상청(上淸) 천존을 공양하는 도관으로 영락궁의 본전이다. 건물 네 벽에 영락궁 벽화의 최고인 조원도(朝元圖)가 그려져 있다.

높이 4.26m, 길이 94,68m의 벽화에는 도합 286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청룡과 백호를 기점으로 천제(天帝), 왕모(王母) 등 선인 28명을 중심으로 하늘의 군인과 선인들이 펼쳐져 있다.

조원도 벽화에서 가장 다채로운 부분은 서쪽벽에 있다. 전설 속의 동왕공(東王公)과 서왕모(西王母) 내외와 그들을 둘러싼 그림인데 머리에 봉황관을 쓴 서왕모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우아하게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앞에 남색의 두루마기를 입은 태을진인(太乙眞人)이 서왕모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듯 머리를 살짝 숙이고 서 있다.

태을진인의 뒤쪽에는 태을진인이 이야기한 내용을 상의하는 듯 두 천신(天神)이 견해를 나눈다. 그중 태을진인은 근심어린 표정의 연장자로 그려져 있다.

순양전은 팔선인의 한 명인 려동빈(呂洞賓)을 공양하기 위한 건물이다. 예성현 용천촌이 려동빈의 고향임으로 영락궁은 려동빈사당을 토대로 개조한 도교의 도관이다.

순양전은 방 다섯 칸 너비에 세 칸 깊이의 건물 북쪽에 기둥 네 개에 받들린 신단(神壇)이 있고 원래는 그 위에 려동빈의 조각상이 있었는데 오늘날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네 벽의 벽화만 남아 있다.

순양전의 동쪽과 북쪽, 서쪽의 세 벽에 있는 52폭의 그림은 려동빈의 일대기를 보여준다. 독립적인 스토리를 구성하는 그림과 그림은 산과 구름과 바위로 연결해 스토리의 연속성을 구현한다.

이 그림은 려동빈의 일생을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의 사회 풍모와 생활습관,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농부와 걸인을 비롯해 다양한 인물을 묘사하기도 해서 송나라 때의 사회연구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중양전은 도교 전진파(全眞派)의 두령 왕중양(王重陽)과 그 제자 칠진인(七眞人)을 공양하기 위한 건물이다. 중양전에는 49폭의 벽화가 왕중양의 일대기를 보여준다.

순양전과 중양전의 벽화가 려동빈과 왕중양의 스토리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와 동시에 당시 다양한 사람들의 생활을 형상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서민들의 의상과 헤어스타일, 그들이 밥을 짓고 차를 마시고 농사하고 고기잡이를 하고 나무를 하고 공부하고 환담하는 등 생동한 생활장면이 펼쳐진다.

또한 황궁에서 황제를 배알하거나 징을 울리며 위세를 떨치는 고위관리, 경을 읽는 득도한 도사, 유리걸식의 걸인, 울적한 주방장, 착하고 근면한 농부, 위엄있는 황제 등 다양한 인물이 대조적이다.
 

평요고성 성황묘

△평요고성 성황묘(城隍廟)

평요고성의 성황묘는 문묘(文廟)와 길 하나를 사이로 마주하고 있다. 정확한 건설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기록에 따르면 명 가정 24년(1522년)에 크게 보수됐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성황묘는 청나라 때의 것으로 7302㎡의 넓이에 성황묘(城隍廟), 재신묘(財神廟), 조군묘, 진무루(眞武樓) 등이 있다. 성황묘는 사원 내에 다른 사원이 있는 ‘묘중묘(廟中廟)’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산문을 통과해 정원을 지나면 조군묘와 재신묘가 동·서 양측에 위치하고 있다.

성황묘는 남향으로 지어졌으며, 4진의 규모를 갖추고 있고 패루, 산문, 희루, 헌전, 성황전, 침궁 순으로 배열돼 있다. 사원이기는 하나 정부기관들이 취하고 있는 ‘전조후침(前朝後寢)’의 규정을 따르고 있어, 그 지위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성황(城隍)은 고대 한(漢)족이 일반적으로 숭배했던 신의 일종으로 ‘주례(周禮)’에 따르면 제사를 지내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주(周)나라 때 사람들은 한 해의 마지막 밤을 지새우며 8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8신 중에서 7번째가 바로 수용신(水庸神)으로 성황신이다. 고대인들은 성황신을 성(城), 즉, 도시를 보호해주는 수호신으로 모셔왔는데 삼국시대 때부터 성황묘가 있어 왔다.
 

평요고성 성황묘

△신라의 도교

신라의 수도 서라벌(경주) 서쪽 선도산은 도교의 서왕모에서 유래하고 있다. 서왕모는 인간들에게 불로불사를 주는 여신으로서 도교의 수많은 신들 가운데 가장 인기가 많은 신에 속한다.

신라 건국신화에 의하면, 건국시조 박혁거세는 선도산(仙桃山)성모(聖母)가 낳은 아들이다. 선도산은 신라 왕도 경주에서는 서악(西岳)이었다. 나아가 선도(仙桃)라는 이름 자체는 중국의 곤륜산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녔다. 즉, 중국 곤륜산 신화에서 서왕모가 지배하는 곤륜산에는 불로장생을 보장하는 선도(仙桃)가 자란다고 했거니와, 이런 모티브를 신라 왕도에 적용한 산악이 바로 선도산이었다. 선도산 성모는 신라 건국시조의 어머니인 까닭에 성모(聖母)로 추앙됐다. 성모(聖母)란 신라라는 지상왕국을 낳은 최고 여신격이란 의미이니, 이런 점에서도 선도산 성모가 바로 신라판 서왕모이다.

신라시대는 도교의 잡술을 연상시키는 기적을 나타내고 신이한 방술을 구사한 인물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 신라 초의 호공(瓠公)은 박혁거세(朴赫居世)를 도와 인접국과 수교의 사명을 수행해 신라의 국위를 떨친 인물인데 바람과 비, 새와 짐승을 마음대로 부리는 대단한 방술을 행사했다고 전한다.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김유신(金庾信)에 관해서도 방술의 신비성을 띤 설화가 ‘삼국사기’ 권41∼43의 본전과 ‘삼국유사’ 김유신조 등에 전한다.

김유신은 등에 칠성문(七星文)이 있었는데, 그것은 칠요(七曜)에서 정기를 받은 표시라고 하여 생래적으로 신이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여겨졌다.

그는 17세 때 이미 큰 뜻을 품고 단신으로 중악(中嶽)의 석굴에 들어가서 통삼대공(統三大功)을 성취할 힘을 내려 주기를 기도했는데, 신이한 노인이 나타나 김유신의 요청대로 방술의 비법을 전수했다.

그 뒤 또 열박산(咽薄山) 깊은 골짜기에 들어가 천관(天官)에게 빛을 드리워 자기 보검에 강령(降靈)해 달라고 비니, 두 별에서 광채가 내려와 그의 보검을 동요시켜 신령한 기운을 내려 주었다.

김유신의 보검은 고구려군과의 접전에서 신비한 위력을 발휘했다. 또한, 그는 항시 음병(陰兵)의 호위를 받고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김유신에 관련된 신이한 설화들은 도교적인 색조가 농후하고 도교의 잡술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김유신의 증손 김암(金巖)도 방술을 좋아해 숙위(宿衛)로 당나라에 가 있을 때 도교 방술에 포괄되는 음양가법을 배우고 둔갑입성법(遁甲立成法)을 터득했다.

그는 귀국 후 사천대박사(司天臺博士)로 팔진병법(八陣兵法)을 가르쳤으며, 하늘에 빌어 메뚜기의 재해를 물리치는 등 방술을 구사했다.

이 밖에도 신라시대는 시가(詩歌)와 결부된 이적도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월명사(月明師)가 ‘도솔가 兜率歌’를 지어 해가 둘 나타난 괴변을 없앴고, 융천사(融天師)가 ‘혜성가 彗星歌’를 지어 혜성을 없애고 침범해 온 왜군을 제 발로 물러가게 했다는, 향가를 둘러싼 전설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영락궁 비석
영락궁 비석
영락궁 사자상
영락궁 삼청전
영락궁 여의주
영락궁 입구1
영락궁 입구
영락궁 입구를 지키는 사자상.
영락궁 전경
영락궁 전경1
영락궁 현판
영락궁
평요고성 성황묘
평요고성 성황묘
평요고성 성황묘
평요고성 성황묘
평요고성 성황묘
평요고성 성황묘
평요고성 성황묘
평요고성 성황묘
평요고성 성황묘
평요고성 성황묘
평요고성 성황묘
평요고성 성황묘
평요고성 성황묘
평요고성 성황묘
평요고성 성황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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