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대학 대학원 입학 아프간 청년, 서면 인터뷰
"가족의 안위 걱정…인권 존중·비폭력 등 조건부 지원하면 카불 사태 해결책 될것"
"난민 수용 등 아프간 현 상황 개선 원동력…조금만 더 도와달라"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하기 닷새 전인 8월 10일 대한민국에 입국한 A씨(27)는 자신의 나이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았다. 9월부터 지역의 한 대학교 대학원에서 농업을 전공할 예정인 A씨는 자가격리 중에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가족의 안위가 걱정된다”며 두려움에 떨었다. 아직은 가족이 안전한 상황이라고 전한 A씨는 “가족과 친구 대부분이 공무원인데, 탈레반이 정권을 다시 잡은 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다”고 했다. 모든 자산이 은행에 잠긴 상태여서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했고, 식료품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탈레반이 정권을 잡기 전에 공무원으로 일했던 가족과 친구가 깊은 공포에 빠졌다”면서 “고위 관료 출신은 아직도 집 밖을 걸어 다니지 못하는 지경”이라고 전했다.

탈레반에 대한 의견을 묻자 A씨는 “2002년 탈레반이 정권을 잡았던 시절 우리는 그들이 저지른 수많은 만행을 목격했고, 지금도 많은 시민을 대상으로 수많은 공격을 퍼붓는 데다 아프간을 통치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서 인식이 매우 나쁘다”면서도 “탈레반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와 아프간인들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불 사태 이후 짐짝처럼 취급했던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고 관료들에 복수를 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낸 탈레반의 약속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A씨는 “과거보다 침착한 면모를 보이는 탈레반이 보장한 약속이 조금은 지켜지는 것 같다”며 “1996년부터 2002년까지 여성과 시민을 대하는 모습과 비교해도 사람들을 존중하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에 탈레반이 내건 공약들이 지켜질지도 모르겠다는 다소 낙관적인 분위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탈레반 통치 시절 국제사회와 우방국의 도움과 지지가 부족해 그들이 지향하는 점을 국제사회에 증명하지 못했다”면서 “지금이 탈레반은 더 큰 목표를 갖고 반복해서 국제사회에 지지를 요구하는 등 조금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탈레반의 요청에 호응할지, 포기할지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탈레반이 카불을 함락시키자 국민을 버리고 도주한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과 달리 카불에 남아 항쟁한 랑기나 하미디 여성 교육부 장관 이야기도 꺼냈다. A씨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우리는 조국을 지지해야 하고, 조국에 머물러야 한다”며 “정권 교체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여전히 아프간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하미디 장관의 선택은 옳았다. 더 밝은 미래를 보장받기 위한 하미디 장관의 노력을 존중한다”고 했다.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 아프간인들을 수용한 것과 관련해서도 “아프간인으로서 세계 각국의 난민 수용에 감사드린다”면서 “이런 도움이 아프간의 치명적인 현재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꿀 원동력이 될 것이다. 조금만 더 도움을 달라”라고 간절하게 말했다.

일각에서 아프간 난민으로 인한 충돌 문제 등을 이유로 수용 반대 의견이 나오는 점에 대해서는 “우리가 선택해서 난민이 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처한 상황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라면서 “충돌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우릴 바라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한국에서 더 나은 미래를 소망할 뿐”이라고 호소했다.

아프간을 인도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통치하겠다고 밝힌 탈레반의 메시지에 대해 A씨는 “국제사회가 탈레반의 의견에 동의해주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국제사회가 지금의 카불 사태를 해결할 방법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인권존중이나 비폭력을 내세우면서 탈레반을 조건부로 지원한다면 지금의 카불 사태를 해결할 대책이 될 것”이라고 했다.

A씨는 전 세계를 향해서도 “탈레반이 이번 사태를 일으킬 당시에 아프간 전체에 공포를 심어 누구도 대들지 못하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면, 최근 상황을 보면 상황이 달라진 것으로 보이기는 하다”며 “아프간은 세계 각국의 도움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알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자가격리에서 최근 해제됐다는 A씨는 “아프간의 밝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겠다. 부디 아프간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당부했다.

배준수, 류희진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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