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쭉한 국물에 쫄깃한 면발…마음까지 뜨근해지는 '겨울 별미'

포항 구룡포 모리국수 한상 차림

지역색이 강한 향토음식에는 그 지방 주민들의 오랜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기 마련이다. 흑산도 홍어가 그렇고, 안동식혜가 그렇고, 울진 물곰탕이 그렇다. 꽁치 과메기의 고장 포항 구룡포에도 이 지역 주민들의 ‘소울 푸드’로 통하는 음식들이 있다. 걸쭉한 모리국수가 대표적이다.

커다란 양은냄비에 갓 잡은 생선과 해산물, 콩나물, 고춧가루, 마늘양념장을 듬뿍 넣고 푹 끓이다가 국수를 넣어 걸쭉하게 끓여 낸 생선국수 구룡포 모리국수는 살을 도려내는 듯한 겨울 바닷가 한파를 녹여 주고 허기진 어민들의 뱃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고마운 음식이다.

구룡포 어민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지닌 채 7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모리국수는 매서운 강추위 속에서 힘든 뱃일을 마친 뱃사람들이 좋아하는 ‘얼큰하고 화끈한 맛’에다 막걸리를 곁들여 언 몸을 녹이며 즐겨 먹었던 구룡포의 토속음식이었다.

그런데 이 투박한 음식이 요즘 들어서는 엄동설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리국수 마니아들이 생겨나 뱃사람 대신 여행객들이, 전국에서 발길이 쇄도할 정도로 겨울철 인기 맛집 소재가 됐다.

속풀이 해장국처럼 시원한 맛도 맛이지만 큰 국수냄비에 둘러앉아 여럿이들 모여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는 장면은 이채롭기까지 하다. 한 그릇 먹기 위해 밖에서 추위에 떨어가며 순서를 기다리는 모리국수 마니아들. 봄이 오는 길목인 지금 구룡포 일원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포항 구룡포 모리국수

△푸짐한 양에다 넉넉한 인심, 가성비 좋은 생선국수

장장 56여 년 동안이나 구룡포 읍내에서 ‘까꾸네 모리식당’을 하고 있는 이옥순 (78)할머니는 식당문을 들어서는 손님 숫자를 눈짓으로 파악하고 음식 주문도 받기 전 냄비부터 불에 올려놓는다.

냄비에는 미리 준비해 둔 생아귀와 간, 대창을 넣은 다음 콩나물과 홍합, 대파를 한 움큼 넣고 여기에 홍합 삶은 육수를 냄비 가득 붓는다.

또 하나의 냄비에도 물을 끓여 국수를 따로 삶는데 넓은 건면이라 7분 정도는 삶아준다. 서로 달라붙지 않게 북채만 한 굵은 젓가락으로 연신 저어 주고 한 번씩 건져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56년의 경륜의 노하우로 국수가 잘 삶긴 지를 살핀다.

“ 우리가 주문하는 건면은 한 번 더 얇게 밀어서 납작 국수 가락으로 면을 뽑아 오기 때문에 찰기가 더 많지” 말갛게 익은 국수가 이 할머니 눈에 들어오면 생아귀가 끓고 있는 국물 냄비에 다시 옮겨지고 본격적인 맛 내기에 이어 색내기 작업까지 들어간다.

마늘 한국자, 고춧가루 듬뿍 한국자가 전부다.

생선탕인가. 국수인가. 얼핏 헷갈리기도 하지만 구미가 당겨지는 주황빛으로 보글보글 끓는 모습과 구수한 냄새가 군침을 돌게 하고 입맛을 자극한다.

생선이 들어간 모리국수의 국물맛은 묵직함이 느껴지는 시원한 맛이다.

생아귀의 내장과 간이 국물에 풀어져서 걸쭉해진 국물에 한몸이 된 국수 면발이 입안을 휘감는다. 빨간 국물 속 아귀의 살은 뽀얗고 촉촉한 육즙을 그대로 머금고 있다. 생아귀의 맛도 귀하지만 특히 아귀의 간과 쫄깃한 대창맛은 바닷가 산지가 아니면 맛보기 힘든 이곳만의 별미다.

모리국수는 2인분 주문이 기본이고, 가격은 14.000원. 가격 대비 양은 냄비가 넘칠 정도로 푸짐하여서 다들 놀란다. 곁들여 내는 반찬은 할머니가 직접 버무려내는 막김치 한가지다.

“고춧가루를 많이 넣어 칼칼하고 뜨거우니 빈 그릇에 덜어서 먹어야 돼요. 시원한 막걸리와 곁들여 마시면 뜨거운 입도 식히고 제맛인데…” 손님들도 이 할머니의 충고에 바로 따른다. ‘구룡포 막걸리’를 반주 삼아 후룩후룩 소리를 내며 마치 경쟁이라고 하는 듯 연신 모리국수를 먹는다. 이마에서 땀이 절로 줄줄 흐른다. 다들 모리국수 냄비 속에서 쫄깃한 아귀 대창 부드러운 간과 아귀살을 건져내 뼈를 발라 먹는 재미가 쏠쏠한 듯 보인다.
 

생아귀의 살과 내장으로 끓여내는 모리국수

△손님들이 셀프로 끓여 먹던 명태 모리국수

이 할머니가 모리국수 장사를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56년 전인 1966년.

“시누이집이 구룡포 맞은편 초가집이었어요. 그 집 마당이 널찍했어요. 거기를 그냥 얻어서 양철지붕을 올리고 장사를 시작했지요”

그 당시 영덕 강구항이나 구룡포에는 큼지막한 명태와 대구가 많이 잡혔었다고 한다. 흔한 데다 값도 싸고 해서 국수물 재료로 이용하기로 맘먹었다.

“그땐 국수를 끓여서 건져 놓기만 했지요. 손님들이 각자 가져다가 양껏 끓여 먹었지. 요즘 말로 셀프서비스야”

“양은냄비에 명태를 층층이 수북이 올려 쌓아 두고, 그 옆에 큰 고무 다라이에다 국수를 산처럼 삶아 놓았었지요”. 둥근 양철 테이블 중앙에 연탄불을 피워 두면 끼니때 모여든 사람들이 제각각 알아서 양은냄비 하나씩 푸짐하게 국수를 담아와서 직접 끓여 가며 먹고 부랴부랴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고 회상한다.

“그때만 해도 새댁 시절이고 장사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실수도 많았지요. 장사를 하면 이문을 남겨야 되는데 그런 계산 없이 재료비에 조금 얹어 받고 양은 무한대로 줬으니 어찌 돈을 벌었겠어요”

지금 가격만 받았어도 큰돈 벌었을 텐데 그땐 다들 어려워 차마 그러지 못했다고. 그저 열심히 하면 돈이 벌리겠지 생각만 하고 일만 죽어라 했단다. 그렇게 13년 동안 초가집 마당에서 간판도 없이 장사를 하다가 지금의 자리로 터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들 권진수씨가 거들고 있어서 이 할머니에겐 천군만마다.

구룡포 모리국수가 전국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구룡포를 사랑하는 권선희(여류 시인)씨가 이옥순 할머니의 모리국수 맛을 우연히 보고 시인의 감성으로 기억과 추억이 될 음식으로 2004년 언론에 소개하면서부터 구룡포 명물 모리국수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손질한 생아귀

△잘 나가던 구룡포, 옛 추억을 자극하는 모리국수

모리국수 이름에 얽힌 재미나는 스토리텔링 소재도 눈길을 끈다.

싱싱한 생선과 국수를 함께 넣고 끓여낸 모리국수는 ‘모여라’는 뜻의 사투리 ‘모디’라는 말에서 이름 지어졌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한사람씩 따로 먹는 음식이 아니라 여럿이 모여 냄비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모여서 먹는 국수(모디가 먹는 국수)라고 ‘모디국수’로 불리다가 모리국수라는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포항 구룡포 모리국수

또 음식이름을 묻는 사람에게 ‘나도 모린다’고 말한 게 입으로 전해지면서 모리국수가 됐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때 일본인 집성촌이었던 구룡포 지역 특성 때문에 ‘많다’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 ‘모리’에서 기인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푸짐한 양 때문에 모리국수로 불리게 된 것이라는 일본어 기인설이 현지에서는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1960년대까지 꽁치로 대변되던 구룡포항은 일제 강점기인 1942년 인천과 함께 읍으로 승격될 정도로 수산물 어획이 번성했고 사람과 돈이 몰렸다. 대게가 걸리면 그물이 망가진다고 해서 발로 밟아 대게를 부수고 그물에서 뜯어내 바다에 던졌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당시 구룡포에는 질 좋고 값나가는 수산물이 넘쳐 났다.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조리기능장·예미정종가음식연구원장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조리기능장·예미정종가음식연구원장

배를 타고 고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부들은 속을 따뜻하게 풀어 줄 국물이 반가웠고 우후죽순처럼 생긴 모리국수 식당들은 당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겨울철 서민음식으로 칼칼한 모리국수가 재조명되고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영화를 누렸던 구룡포의 옛 추억과 향수를 떠올리는 자극제가 되고 있다.

“새댁 부탁하네, 매일 문을 열지만 이제 이 할매가 늙어서 점심장사밖에 못해요.”

“일 년에 딱 두 번 설날과 추석날만 쉬는데 ‘장사하느냐’는 전화가 하도 와서 이 할매가 쉬지를 못해. 쉬는 날은 전화 좀 하지 말라고 신문에 써줄 수 없는가? ”

할머니의 너무나 소박한 부탁이다. 손을 잡고 그만 그러겠노라 약속을 해버렸다. 구룡포읍 까꾸네 모리국수 영업시간은 10시 30분 ~오후 3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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