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일 한동대학교 공간시스템공학부 교수
김주일 한동대학교 공간시스템공학부 교수

‘사람은 나면 서울로’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의 유독 강한 ‘중앙 지향’ 드러나는 표현이랄까. 서울, 아니면 지방으로 양분하는 인식의 반대편에는 또 일종의 ‘변방 콤플렉스’가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런 구도에 있어 2022년은 특별한 시점이었다. 중앙과 변방의 인구가 사상 최초로 역전된 시기였기 때문이다. 수도권 인구가 다른 모든 지역의 인구보다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다 보니 개인적으로도 2022년은 특별했다. 서울에서 자란 시간보다 지방 생활한 시간이 더 많아진, 말하자면 공식적인 지방시민(?)이 된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제 지방시민 입장이 되다 보니, 가끔 중앙의 지인들이 보여주는 지리 감각에 놀라곤 한다. 의외로 포항이 경북인지 경남인지를 정확히 구분해주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경주로 놀러 갔다는 친구에게 ‘포항에도 들리지 그랬냐’고 하면 ‘경주하고 포항은 너무 멀지 않냐’고 되묻는 경우도 있다. 울산의 간절곶과 포항의 호미곶을 혼동하는 경우는 예사이다. 웃어넘기고 말지만, 중앙 사람들에게 있어 지방은 이렇듯 흐릿하게 존재하는 변방일 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인식이 지리적인 것에만 그치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여러 부문에서 중앙은 지향하고 변방은 피하려는 심리가 자못 심각한 수준이다. 수억대의 연봉을 제시해도 의사를 구하기 어려운 지방도시가 있다는 뉴스도 있었지만, 웬만해서는 지방에는 취업을 하지 않으려는 의식이 팽배하다. 지방에도 몇 안 되는 글로벌기업이나 탄탄한 공사가 있지만, 여기 근무하면서도 서울로의 이직을 모색하는 경우도 자주 보았다. 심지어 연봉에서는 손해 보더라도 일단은 서울로 가고 싶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물론 개인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렇게 지독한 중앙과 변방의 이분법 속에 어떻게 지방도시가 쇠락하지 않고 배길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도시가 지하철로 쇼핑몰로 가득 찰 수는 없다. 지방도시도 나름대로의 특징과 장점, 그에 맞는 삶의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지방을 그저 흐릿한 변방으로만 보는 인식구조에서 이런 것들이 제대로 인정받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리 크지도 않은 국토, 게다가 고속교통망으로 촘촘히 연결된 시점에도 중앙 프라이드, 변방 콤플렉스는 여전하다.

그런데 문제가 비단 서울 지방 사이에만 있는 건 아니다. 지방 내부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곤 한다. 가끔씩 멀리 대구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참석한다. 따지고 보면 살고 있는 포항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불과하다. 어차피 경북이라는 하나의 지방권역일 뿐인 것이다. 하지만 행사장에서 받는 인사는 주로 ‘어이구, 멀리서 오셨네요’,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라는 표현이다. 이어지는 인사말도 보통은 뻔하다. ‘포항에는 가끔 죽도시장에 회 먹으러 갑니다’라는 식이다. 뭐랄까,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대구라는 중앙에 온 먼 변방의 인사로 대접받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포항이라는 지역을 그저 ‘해산물 시장’ 정도로 본다는 생각도 지우기 어렵다. 왜 포항에서 문화공연을 보았다던가, 아니면 그린웨이를 한번 걸어보았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일까? 무대를 지역으로 옮겨도 변방 콤플렉스는 양태만 달라질 뿐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지역균형 정책은 어느 나라보다도 강력했던 편이다. 심지어 서울의 일부를 떼어내 지방으로 보내는 행정도시, 혁신도시와 같은 시도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중앙으로 향하는 흐름은 여전하기만 하다. 시설 이전으로도 풀 수 없는, 그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일 게다. 결국 중앙과 변방이라는 이분법, 그리고 변방 콤플렉스를 이대로 두고 진정한 균형발전이 있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