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이지만 광역지자체에서 도시개발 관련 공직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업무 분야이다 보니 신경 쓸 것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공청회 준비가 제일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말 그대로, 개발 계획을 미리 지역민들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듣는 자리이다. 지방자치와 참여민주주의의 핵심과 같은 행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민들과 직접 접촉하고 반응을 구하는 행사이다 보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업무였다.하지만 정작 설명회 행사 자리에 나가보니 현장 분위기는 기대와는 달랐다. 일단 ‘시민’이 별로 눈에 띄
세대별로 유독 큰 영향을 준 책이나 인물이 있기 마련이다. 요새 젊은층에게라면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와 같은 혁신가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그러면 기성세대, 특히 사회 정점에 있는 50대 이상의 남성들에게도 그런 책이나 인물이 있을까? 뜬금없을지 모르지만, 삼국지, 그리고 제갈량이 그런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한다.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라는 말에서 보듯, 나이 지긋한 남성들의 세계관에 삼국지가 미친 영향은 엄청나다.그런 영향의 징후는 신구세대가 만나는 직장 술자리에서 잘 드러난다. 술 한
오래전, 지역에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의 일이다. 한 시민단체의 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용은 지자체가 해안가에 새로이 조성하는 공공 조형물 프로젝트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그 조형물로 발생할 수 있는 경관이나 안전 문제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자료를 검토하고 예상 가능한 몇 가지 우려를 정리해 그에게 전해 주었다.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역의 시사 방송을 물색해 놓았으니, 출연해서 내 의견을 말해 달라고 그가 다시 요청해 온 것이다. 이후 방송사 측에서 실제로 연락이 왔고, 방송작가는
포항의 도심부로 이사한 지도 해가 바뀌면서 이제 일 년이 되어가고 있다. 지도를 펼쳐 사는 곳을 찍어보니 정말로 더도 덜도 아닌 포항의 정중앙이다. 외곽에 있는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물에만 살다가 이제 도심부 주민이 된 것이다. 도심공동화, 즉 도심에 살던 사람들도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흐름에 개인적으로는 거스르는 선택을 했다고나 할까.포항의 경우 외곽에 사는 것이 출근이나 쇼핑은 물론 서울을 오가기에도 훨씬 수월한 편이다. 하지만 도심부에서 살아보아야만 할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도시계획이라는 내 전공에서 오는 것
아파트 재건축 시장에서 큰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서울 반포지역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 사업에서 무려 12억의 세대별 분담금이 매겨졌다는 소식이다. 지방의 웬만한 신축 아파트 몇 채에 해당하는 가격이라 계산도 어지러울 지경이다. 최근 높은 금리나 건설비용을 생각한다 해도 믿기 어려운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돈을 벌어주던 재건축 시장이 이제 소멸해간다는 신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사실 아파트 재건축이란 것은 한국의 독특한 상황이다. 수백 수천 세대가 사는 거대한 단지를 일사불란하게 허물고 다시 짓는 과정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
요새 도쿄 근교의 카마쿠라라는 곳에서 한국 관광객들이 줄을 서 사진을 찍고 있다고 한다. 그저 바닷가에 철도가 지나가는 건널목일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의 배경이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순례지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또 얼마 전 교토에 갔을 때는 산속 계곡, 약수터 같은 곳으로 열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예쁘게 장식한 열차가 자연 속으로도 불쑥 들어오는 모습은 특이한 매력이었다. 신칸센의 나라지만 지방에는 저속 철도도 여전히 남아 쓰임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유럽의 경우
등산로 입구를 지나다 보면 크고 작은 돌들을 탑처럼 쌓아놓은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산의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한 일종의 샤머니즘 관습인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기분을 참 묘하게 만든다. 그냥 가자니, 남들이 다 비는 복을 나만 지나치는 것 같아 아쉽다. 그렇다고 돌을 올리기엔 위험부담이 크다. 수많은 돌이 쌓여 있다 보니, 맨 위에는 아주 작은 돌이 간신히 올라가 있기 때문이다. 성공하면 기분 좋은 등산이 되겠지만, 잘못해서 탑을 자극해 와르르 무너뜨리기라도 하면 낭패다. 행운은커녕 불운을 가져오나 싶어 기분이
‘병원’이 새해 초반 모든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먼저 의대정원 확대 이슈가 포문을 열었다. 묶여있던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리겠다는 정부 공약 때문이다. 이슈는 다시 지역 간 의과대학 유치 전쟁으로 이어졌다. 내가 사는 포항만 해도 ‘연구중심 의대 유치’에 사활을 건다는 비장한 플랙카드가 곳곳에 날리고 있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는 야당 대표의 지방병원 기피 논란이 정점을 찍고 있다. 부산 방문 중 피습된 야당대표가 지역의 외상센터를 마다하고 굳이 헬기로 서울대 병원까지 옮겨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이 사태들의 진짜
우리는 이미 두 번이나 엑스포를 유치했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산엑스포 이야기가 나와도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었다. 엑스포도 등록박람회니, 인정박람회니 하는 등급이 있다는 것. 그런데 대전, 여수엑스포는 인정박람회에 불과했고, 이번 부산엑스포야말로 최초의 등록박람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뒤늦게 엑스포 열기가 높아져 갔다, 결국 유치에 실패하긴 했지만 말이다.어쨌든, 우리들 대부분은 엑스포를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제 행사 정도로만 보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 행사가 대체 어떤 목
최근 종종 다른 지역에 강의를 다녀오곤 한다. 희망적인 내용이면 좋으련만, 지방소멸 위기와 관련된 강의 요청이 대부분이다 보니 발걸음이 그리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 지역마다 위기의 요인은 명확하다. 하지만 솔직히 이를 헤쳐나올 방법은 흐릿하기만 한 현실이다. 하지만 지난주에 다녀온 강원도의 경우 다른 지역과는 또 다른 특이한 추세를 보여준다. 지방 도시 전반이 인구 감소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그래도 강원도는 상당히 ‘선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한때 180만에 달하던 강원도 인구는 1990년대에 급속히 줄어들면서 순식간
지방에서 지피던 메가시티 불똥이 결국 서울에 가서 불붙는 형국이다. 시작된 지방에서는 연기만 모락모락 하다가 꺼져가는 지경인데 말이다. 이른바 ‘서울 메가시티’가 갑자기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김포를 서울에 편입시키는 확장안이 두 도시 사이에 논의되면서 생긴 일이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으리라 짐작하지 않은 바는 아니지만, 먼저 메가시티를 추진하다 흐지부지되어버린 지방지자체 처지에서는 속이 쓰리지 않을 수 없다.사실 서울의 경우를 지방에서 추진하던 행정통합이나 메가시티와 같은 선상에서 보아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서울-경기는 이미
푸르름이 한풀 꺾여가는 가을이면 왠지 아쉬워져 자연 속으로 한걸음이라도 더 들어가 보고 싶어진다. 어느새 불그스름해진 잎사귀들이 한국인들의 단풍놀이 시즌을 알리고 있다. 더욱이 올해는 여느 때보다 맑고 청명한 가을이라, 계절 깊숙이 한번 탐험을 떠나볼 기회인 것 같다. 다른 계절이라면 몰라도, 가을이라면 역시 경북의 가을이 가장 신선하고도 다채롭지 않을까. 지금 당장이라도 한번 발걸음을 향해보고 싶은 경북의 가을 탐험 장소들을 소개해볼까 한다.먼저 영일만 일대에서 가장 빠른 가을을 맞이하는 곳, 바로 포항의 경북 수목원이다. 멀게는
토지개발 관련 비리가 늘 문제가 되다 보니, 때로는 우리나라의 관련 규제가 너무 강한 것이 아니냐고 비판도 있다. 규제가 지나치다 보니, 이를 피하기 위한 비리의 소지도 많아진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선진국 경우를 살펴보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유럽의 경우, 대부분의 도시는 지역의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매우 까다로운 규제를 적용하곤 한다. 건축물을 맘대로 헐거나 짓기 어려운 것은 물론, 토지를 구입해도 공공이 정해놓은 상세한 계획안에 따라서 개발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 한국의 규제수준이 과도하다고 볼
더위가 채 물러가지도 않았지만 해수욕장에는 서둘러 ‘입수금지’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여름내 번잡하던 해변타운은 내년을 기약하며 마치 동면에 들어가듯 잠잠해지곤 한다. 그런데 요새 새롭게 떠오른 레저문화가 해변을 여름만이 아닌 사계절 활기찬 곳으로 만들고 있다. 게다가 강원도 북쪽의 인적도 드물던 해변을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등극시키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바로 ‘서핑’ 때문에 생긴 일들이다. 이 서핑이라는 문화가 우리나라로 넘어와 본격적으로 해안의 경관을 바꿔가고 있다.그저 바닷가 물놀이의 하나로 보던 분들도 있겠지만, 서핑은
지역의 인구뿐 아니라 한국 전체의 인구도 정체하고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제 인구가 늘지는 않고 배분되기만 하는 때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과감하던 지자체의 목소리도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 한때 인구 백만의 광역시를 목표로 출사표를 내미는 중소도시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인구 감소를 막겠다’는, 다분히 소심한(?) 정책 기조로 넘어가는 곳들도 보이는 상황이다. 딱히 근거도 없이 인구를 크게 불리겠다는 공격적 전략보다는 지역 내부를 챙기고 단속하는 것이 우선이고 또 현실적이라는 생각이다.이런 점에서 이른바 ‘인구 댐’
얼마 전 도시 보행환경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전문가 한 분을 초청해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보행환경? 중요하지, 사람들이 걷기 편하고 안전하게’. 이런 정도 생각들이야 다 할 수 있겠지만, 강의에서 다루는 보행공간은 그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또 섬세한 문제였다. 우리가 새로 눈을 떠야 할 내용들이 적지 않았다.강의 요점을 부득이 두 가지로만 정리해본다. 첫째, 보행자들의 편리와 안전을 위해서 보다 공들인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자동차 공간의 설계에 많은 공을 들인다. 최근 들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보행은
새만금 잼버리 문제로 연일 시끄럽다. 청소년을 맞이하는 행사라면 우선은 잘 챙겨주고, 가능하면 통 크게 ‘쏘는’ 모습을 보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장삿속이 먼저인 것 같은 운영에 국민은 낯뜨겁기 그지없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이 과정에서 새만금 간척지의 곤란한 상태가 고스란히, 그것도 국제적으로 드러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지반 상태나 온갖 환경 여건이 캠핑조차 어려울 정도로 조악하기만 했다. 국제적 홍보와 투자유치를 노리고 개최한 행사에서 오히려 단점만 드러낸 격이라니, 더 난감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지역
여름 휴가철을 맞이해 잠시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 포항을 포함한 소위 지방도시에서 생활한 지 이제 꽤 오래다 보니, 서울 생활이 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더 절감하는 것은, 서울과 지방에서 살아가는 생활의 패턴 자체가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른 양상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라는 데 문제가 있다. 서울에서의 생활이 훨씬 복잡하고 까다로울 것 같지만, 의외로 포항에서의 생활패턴보다 훨씬 단순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우선은 대중교통 체계의 차이이다. 잘 갖추어진 대
상품의 품질 이전에 브랜드 자체가 먼저 어필하는 시대이다. 브랜드 이미지가 품질을 넘어 사용자들의 품격이나 라이프스타일까지 암시하곤 한다. 대표적인 것이 애플이다. 이 회사는 제작한 제품을 판다기보다, 어쩌면 그들이 구현한 세계 자체를 파는 것 같다. 그래서 이용자들은 단순히 소비자라기보다는 그 세계의 시민, 때에 따라서는 노예(?)가 되기도 한다.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도 브랜드로 팔린다. 힐스테이트, 자이, 푸르지오 등, 이색적인 명칭과 로고를 내세운 아파트가 주류이다. 오가는 상품도 아닌 부동산인 아파트에 브랜드라니. 원래부터 이
입시철도 아닌 장마철 즈음인데 갑자기 대학 입시문제가 이슈로 등장했다. 어려운 일부 수능 문제들이 사교육 시장과 이해관계로 얽힌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물론 사교육과 관련된 논란들이야 과거에도 있어 왔다. 하지만 주로 과외 공부를 허용하는 정도에 대한 논란이었지, 지금처럼 사교육 산업(?)의 구조에 대한 문제는 아니었다. 이른바 ‘일타강사’들의 엄청난 수입과 영향력, 그리고 이런 거대한 시장이 발생하는 과정에 대한 사회적 해부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어쨌든, 교육 기회란 것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민감하고도 중요한 이슈인지를 다시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