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일 한동대학교 공간시스템공학부 교수
김주일 한동대학교 공간시스템공학부 교수

더위가 채 물러가지도 않았지만 해수욕장에는 서둘러 ‘입수금지’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여름내 번잡하던 해변타운은 내년을 기약하며 마치 동면에 들어가듯 잠잠해지곤 한다. 그런데 요새 새롭게 떠오른 레저문화가 해변을 여름만이 아닌 사계절 활기찬 곳으로 만들고 있다. 게다가 강원도 북쪽의 인적도 드물던 해변을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등극시키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바로 ‘서핑’ 때문에 생긴 일들이다. 이 서핑이라는 문화가 우리나라로 넘어와 본격적으로 해안의 경관을 바꿔가고 있다.

그저 바닷가 물놀이의 하나로 보던 분들도 있겠지만, 서핑은 생각처럼 그리 단순한 놀이로 그치지 않는다. 서퍼들에게 있어 서핑은 젊음의 정신적 가치를 공유하기 위한 하나의 세계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만든 틀에서 벗어나 무한한 자유를 맛보기 위한,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활동이라는 것이다. 서핑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폭풍 속으로’에 나오는 “좋아하는 걸 하다 죽는 건 비극이 아니야”라는 대사가 서핑의 이런 컬트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서핑의 기원도 태평양 섬나라의 종교의식이었다고 하니 말이다. 이처럼 자유를 꿈꾸는 젊음의 해양 레포츠가 지구를 돌고 돌아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어느덧 서핑 인구가 20만 명을 넘어가면서, 파도가 있는 해안마다 서핑타운들이 형성되고 있다. 제주 중문으로부터 시작되어 부산 송정으로 퍼지더니, 이제는 양양 인구, 태안 만리포 등 여러 해안이 서핑 장소로 자리 잡고 있다. 경북 동해안 지역에도 포항 용한리, 월포에 서퍼들이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서핑클럽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서퍼들은 피서객이 몰리는 여름보다는 오히려 가을, 겨울을 선호하기 때문에 한적한 계절의 해변타운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지역이 슬슬 반응하기 시작한다. 이제 해수욕장이 여름 한 철 장사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서퍼가 몰리는 해변타운마다 상가나 숙박시설이 새로 생겨나고 있고, 아예 지자체가 나서서 서핑타운 조성을 앞장서는 경우도 있다. 포항 용한리의 경우도 포항시가 20억 원을 투자해 편의시설을 지으면서 서핑타운으로의 변모를 꾀하고 있다. 각 지역이 서퍼들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을 시작한 것이다. 한때 해변의 불청객으로 취급되던 서퍼들이 이제는 러브콜의 대상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서퍼들은 선택은 예상과는 달랐다. 서핑문화의 컬트적 특성만큼이나 독특하고도 특이한 선택을 했다고나 할까. 그들이 향한 곳은 강원도 양양군이었다. 그 흔한 여행 가이드북에도 한번 소개되지 않던 한적한 시골 해변을 서핑의 수도로 낙점한 것이다. 당장 올해 여름부터 양양은 타올랐다. SNS에는 양양해변과 주변 상권의 사진들이 수없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달아오른 여름의 청춘들을 끌어들였다. 한적하던 시골마을이 급기야 홍대, 강남이 부럽지 않을 활기찬 청춘타운으로 변모하면서, 급기야는 ‘양리단길’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하기에 이른다. 올해의 최고 화제를 뿌리는 핫플레이스로까지 등극한 것이다.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것은 이 시대 젊은이들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특한 선택이다. 기성세대는 그들의 발걸음을 잡아보려 여기저기 멍석을 깔아 놓곤 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미리 깔아 놓은 멍석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기성세대의 허를 찌르고 의외의 장소를 찾아 자신들의 놀이터로 삼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좁은 오르막길을 경리단길로, 경주 대릉원 옆의 허름한 한옥촌을 황리단길로 만들면서 그들만의 새로운 지도를 그려간다. 그리고 급기야 올해는 서핑이라는 문화를 가지고 인구 2만밖에 안 되는 어촌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처럼 장소를 놓고 펼치는 세대 간 술래잡기(?)는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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