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일 한동대학교 공간시스템공학부 교수
김주일 한동대학교 공간시스템공학부 교수

푸르름이 한풀 꺾여가는 가을이면 왠지 아쉬워져 자연 속으로 한걸음이라도 더 들어가 보고 싶어진다. 어느새 불그스름해진 잎사귀들이 한국인들의 단풍놀이 시즌을 알리고 있다. 더욱이 올해는 여느 때보다 맑고 청명한 가을이라, 계절 깊숙이 한번 탐험을 떠나볼 기회인 것 같다. 다른 계절이라면 몰라도, 가을이라면 역시 경북의 가을이 가장 신선하고도 다채롭지 않을까. 지금 당장이라도 한번 발걸음을 향해보고 싶은 경북의 가을 탐험 장소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먼저 영일만 일대에서 가장 빠른 가을을 맞이하는 곳, 바로 포항의 경북 수목원이다. 멀게는 시베리아까지 이어지는 태백산맥의 끝자락에 있기에 10월의 산속 공기는 이미 나뭇잎을 붉힐 만큼 충분히 차갑다. 산속의 수목원이지만 산책로와 편의시설이 정비되어 있어, 마치 집 근처 공원을 거니는 것처럼 편하다. 하지만 엄연히 깊은 산중인지라, 가을 냄새는 꽤나 진하다. 여유가 있다면 오가는 길에 산 밑의 ‘기청산 식물원’도 둘러볼 일이다. 무관심 속에 스러져가던 한반도 식물 생태계를 위해 세운 도피성과 같은 곳이다.

예천 회룡포는 잊고 있다가도 유독 가을이면 생각나는 장소이다. 뭐랄까, 육지 속의 섬과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모래사장에 발을 딛고 나면 마치 남해 어딘가 고적한 섬에 도착한 것만 같다. 구불구불 흐르는 강변 모래사장에서 바라보는 단풍은 전에 없던 새로운 가을 경험이다. ‘힐링’이라는 게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복잡한 세상을 떠나 잠시 ‘고독한 여유’를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면, 회룡포가 바로 그에 맞는 곳이 아닐까. 한적한 강변을 산책하다 보면 문득 엇갈리던 삶의 템포를 되찾는 느낌이다.

청송 주왕산이야 두말할 것 없는 대표 가을명소이다. 불그스름한 단풍에 만족하지 못해 아예 빨갛게 달아오른 가을을 만나고 싶다면 바로 이곳이다. 그만큼 경북에서도 가장 짙은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라고나 할까. 안개 낀 수면에 반쯤 잠긴 고목들로 유명한 주산지도 당연히 코스에 넣어야 한다. 하지만 가을에 더욱 유명세를 치르는 곳이니만큼, 엄청난 인파와 맞닥뜨릴 준비는 해야 할 것 같다.

젊은 감성의 가을맞이 장소로는 대구 칠곡보 생태공원을 꼽고 싶다. 큰 산이나 숲이 있는 곳이 아니어서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의 감성에 맞는 가을 탐험이 기다리는 곳이다. 주차 걱정 없는 넓은 강변부지에 탁 트인 잔디밭과 산책로가 보인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아스라한 분홍빛, 바로 핑크뮬리 밭이다. 북미대륙에서 왔다는 벼를 닮은 식물이 언젠가부터 젊은 세대들에게 새로운 가을 전령으로 자리 잡았다. 자전거도로와 캠핑장, 그리고 마치 폭포소리처럼 들려오는 칠곡보의 물소리도 좋다.

가을의 정수인 청명한 하늘을 보다 가까이 느껴보려면, 영천 보현산 정상의 천문대가 제격이다. 차가워진 공기 속에 달도 숨은 가을밤, 구불구불 산길을 한참 달려 도착하면, 갑자기 별도 사람도 많아진 희한한 밤 풍경을 볼 수 있다. 연중 가장 투명한 하늘 아래 반짝이는 별을 보려고 담요로 무장하고 모여든 사람들이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마다 약속한 듯 탄성을 지르며 이색적인 가을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 가을 탐험은 예스러운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하는 안동 병산서원이다. 사계절 좋은 곳이지만, 특히 가을이면 서원 앞 강 물결은 더 깊어져 있고, 서원의 오래된 나무 들보는 더 진해져 있다. 선현들의 정신세계와 공명해 보고 싶다면 가을의 병산서원 만한 데가 또 있을까. 오가는 길에 보이는 하회마을 황금색 들판도 빼놓을 수 없다.

경북의 산과 물, 그리고 하늘은 이렇게 가을에 유독 더 잘 어우러지면서 우리 발걸음을 이끌고 있다. 더 찬 기운이 오기 전, 한번 지역의 가을을 만끽하는 탐험을 떠나보는 건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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