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위기 극복, 독일에서 배운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시청 전경
독일 볼프스부르크 주식회사 이사회 소속 토니 구게무스 멀핑거(Toni Guggemoos Mulfinger)씨와 볼프스부르크시 디지털경제사무위원 옌스 호프슈뢰어(Jens Hofschroer)씨는 ‘아우토비전 프로젝트’(AutoVision Project)의 성공 요인이 “공통된 위기 의식과 이후 이뤄진 소통과 협력”이라고 입을 모았다. 도시공간기획과 재정투입 등 지방정부에 주어진 권한이 있더라도 민간 기업의 사회적 책임감과 지자체의 협조, 나아가 공통된 목표의식이 없었다면 추진될 수 없었던 프로젝트라는 의미다.

△폭스바겐 ‘역사와 미래 가치 고민’

1999년 7월 기존 창업·혁신회사(GIZ)와 아우토비전 유한회사를 확대 개편해 세워진 ‘볼프스부르크 주식회사’(Wolfsburg AG)는 볼프스부르크시와 폭스바겐이 공동으로 출자한 회사이다.

지난달 23일 볼프스부르크 주식회사를 대표해 경북일보와 인터뷰를 진행한 구게무스씨는 “1990년대 혹은 2000년대 실업률이 상당히 높아졌을 때 따라오는 문제들이 있는데, 회사에서도 반드시 공동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있었다”면서 “볼프스부르프시와 함께 한 역사가 있는데, 이 도시의 경쟁력이 있어야 폭스바겐 기업 이미지도 좋아지고 매력적이게 된다. 회사 근로자들도 볼프스부르크 출신이 많아 시가 가진 문제점을 폭스바겐이 지나칠 수 없다는 의식도 있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20세기 초 폭스바겐 그룹 본사가 위치하면서 도시와 함께 성장했던 ‘역사’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노사의 의식이 직면한 지역 경제 위기 앞에서 지자체와 손을 잡게 한 연결고리가 된 셈이다.

폭스바겐은 엄밀히 니더작센(Niedersachsen) 주에 속한 기업으로 분류된다. 기초자치단체에 속하는 볼프스부르크시가 아닌, 광역자치단체 격인 니더작센주와 손을 잡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구게무스씨는 “프로젝트가 추진되기 전 폭스바겐 사정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해외기업에 매각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수익이 마이너스였다”면서 “외국에 회사가 팔리게 되면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고, 기업 이미지에도 타격이 크다고 생각해 볼프스부르크를 떠나지 않는 선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이어 “당시 네 가지 방향을 설정했는데, 기술력이 있는 신생기업과 스타트업 회사를 지원하는 게 첫 번째 대책이었고, 두 번째는 부품을 독점하는 회사들의 독점구조를 깨고 여러 곳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방식인 다변화를 택했다”며 지자체와 함께 산업구조의 변화를 이끌었던 대책들을 설명했다.

그는 또 “볼프스부르크 내 호수를 중심으로 레저·복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서비스인력 개발과 인력을 형성하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실업률을 낮추게 된 결과를 얻었다”며 “합작회사를 통해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고 매력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한 과정인데, 지자체와 기업 모두 이익을 보는 관계를 구축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민·관 파트너십에서 ‘소통’을 강조한 독일 볼프스부르크 주식회사 이사회 소속 토니 구게무스 멀핑거(Toni Guggemoos Mulfinger, 오른쪽)씨와 볼프스부르크시 디지털경제사무위원 옌스 호프슈뢰어(Jens Hofschroer, 왼쪽)씨가 볼프스부르크시청 1층 로비에서 지역을 상징하는 동물(늑대) 조형물을 앞두고 악수를 하고 있다. 전재용 기자
△볼프스부르크시, ‘동등한 관계’ 중심 경제 성장

볼프스부르크시를 대표해 인터뷰에 나선 호프슈뢰어씨는 먼저 “폭스바겐과 함께 프로젝트를 추진할 당시 시민과 볼프스부르크시는 손을 내밀어 준 것에 고마웠다”며 “감사한 마음으로 기꺼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회상했다.

다만, 폭스바겐과 볼프스부르크시가 프로젝트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합작 출자한 공공기업 볼프스부르크 주식회사의 자본 투입 비율 5대5는 동등하게 이끌어가겠다는 의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프슈뢰어씨는 “독일 법 체계 안에서 회사를 설립하는 안을 세밀하게 검토했고, 중앙정부의 큰 틀에서 활용할 수 있는 안들을 찾아 시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한 것”이라며 “반드시 5대5로 자본을 투입하자는 법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동등하게 지역산업 개발과 고용창출을 추진하기 위해 자본 투입 비율을 정한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지역 발전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 등을 추진할 때 민·관 어느 한쪽 의견에 힘이 실리지 않고,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기본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독일은 대륙법체계를 갖고 있는 국가로 연방이라는 통치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법률은 연방법(Bundesrecht)과 주법(Landsrecht)의 구조로 돼 있어 연방헌법인 ‘독일연방공화국기본법’(Grundgesetz)이 법령체계 최상위에 있다. 연방헌법은 기본법이 규정한 범위 내에서 입법권을 행사하고, 나머지 사항은 주의 권한에 속한다. 앞서 주 건축법과 행정법을 검토해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시 부지를 제공해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건축물과 문화복지시설들을 지었던 과정이 모두 볼프스부르크시의 주도로 이뤄질 수 있었던 근거다.

볼프스부르크의 정책들은 자동차산업 중심의 지역경제체제를 유지하면서 상대적으로 약한 산업에도 자동차 산업을 활용, 상업·유통·관광에서도 효과를 봤다. 호프슈뢰어씨는 “아우토비전 프로젝트의 긍정적 결과 중 하나는 폭스바겐의 투자 외에도 많은 민간 투자자들이 생겨 도심을 더 매력적으로 가꿀 수 있게 여건이 마련된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25년과 미래 25년, 이어지는 ‘상생’

2024년은 볼프스부르크 주식회사가 설립된 지 25년을 맞이하는 해다. 이제 시와 볼프스부르크 주식회사는 새로운 미래 25년을 준비하고 있다. 과거 운영된 시스템의 한계를 체감함에 따라 기본적인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 유지와 일자리 확충 등 지역 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전문인력의 유지와 인재 양성은 숙제다. 볼프스부르크시에서도 이 같은 점을 인지해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해나가고 있다. 결국,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 이후에도 해당 직종에서 필요한 인력 규모를 유지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셈이다.

구게무스씨는 “현재 회사가 당면한 문제 때문에 시 관계자와 자주 만나고 있다”면서 “다른 나라의 예를 살펴보고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지,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지금 논의 중인 과제는 ‘산업현장의 디지털화’와 ‘노동력 부족’”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볼프스부르크 디지털 프로젝트를 두고 2016년부터 시와 긴밀하게 논의를 하고 있는 중이고, 중앙정부 차원의 경제적 지원도 있어 현재 정책들을 적용하면서 지켜보는 시기”라며 “현재 폭스바겐 본사가 지원하는 ‘42 볼프스부르크’(비영리 코딩학교)를 통해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교육이 이뤄지고 있고, 인재들이 폭스바겐 소프트웨어 개발팀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볼프스부르크시는 산업현장 디지털화와 전문인력양성에 발맞춰 지원하는 동시에 도시 정주 여건 개선에 힘 쏟을 방침이다.

호프슈뢰어씨는 먼저 “1990년대 당시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단기적인 프로젝트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쇼핑센터와 스포츠센터, 아우토슈타트와 같이 결과를 본 것도 있지만, 레저분야를 중심으로 도시를 추가 개발해나가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이어 “베를린에서 출퇴근하는 인구가 많은데, 세금이 다른 도시로 나가게 된다. 볼프스부르크가 사람들이 출퇴근하는 도시가 아니라 살고 싶게 만드는 도시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게 목표”라고 부연했다.

볼프스부르크와 폭스바겐의 상생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폭스바겐 탄생 85주년에 맞춰 새로운 엠블럼이 제작되는데, 엠블럼에는 ‘볼프스부르크성’을 비롯해 지역을 상징하는 동물인 ‘늑대’와 도심 내 ‘알러호수’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해당 엠블럼은 폭스바겐이 생산하는 차량의 휠과 핸들 등에 담긴다.

호프슈뢰어씨는 “40년 전에 만들어진 채 쓰이지 않던 엠블럼을 최근에 발견했는데, 변화한 도시의 심볼을 넣으면 폭스바겐과 도시의 끈끈한 유대감을 보여주게 되고, 주민들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라며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드는 작업들을 꾸준히 추진할 계획”이라고 웃음을 지었다.

민간기업과의 상생을 모색하는 지자체들에는 핵심 주체로서의 위기극복을 위한 ‘책임 있는 자세’와 ‘적극적인 소통’을 강조했다.

구게무스·호프슈뢰어씨는 “당면한 문제에 대한 소통이 끊어지면 어떤 프로젝트도 설 자리가 없다”면서 “예를 들어 우리는 크리스마스가 오면 볼프스부르크성에서 시 관계자와 폭스바겐 임원이 모여 식사를 하고 소통을 하면서 지역을 위한 일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관계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한 테이블에 앉아 문제 해결을 위한 소통은 오히려 독일보다 아시아권에 속하는 나라들이 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구현하려는 황금비율에 정답은 없다. 경험치를 보고 함께 기획하고 나아가는 게 결국 열쇠”라고 조언했다. 독일 볼프스부르프시에서

전재용 기자
전재용 기자 jjy8820@kyongbuk.com

경찰서, 군부대, 교통, 환경, 노동 및 시민단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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