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C 해동지도, 지류까지 '상세히'

1872년에 그려진 '포항진지도'에는 형산강 하구에 한자로 해도, 하도, 상도, 죽도, 분도 등 다섯 개의 섬 이름이 뚜렷이 보인다. 형산강 하구에 떠있는 범선은 상선으로 추정된다.

형산강의 옛 모습은 시대별로 어떠했을까. 형산강 탐사를 하면서 이같은 의문이 수시로 머리에 떠올랐다. 하지만 이에대한 어느정도 속시원한 해답을 얻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역사적 자료가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형산강과 관련한 몇몇 자료들 역시 적잖은 상이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오상학(제주대) 교수의 '고지도를 통해 본 형산강의 변천모습'('형산강'. 포항지역사회연구소. 2001년)이란 논문이 눈에 띄었다. 이 논문은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옛 지도들을 참고해 형산강의 옛 모습을 설명한 것으로 형산강의 옛 모습을 개략적으로 이해하는데 적지않은 도움이 됐다. 따라서 오교수의 논문과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자료를 참고해 형산강의 옛모습을 살펴보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형산강 발원지에서 하구까지를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다.

■ 조선지도· 해동지도·광여도에 나타난 형산강

'조선지도(朝鮮地圖)-경주·영일편'은 18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군현지도로 경주분지를 통과하는 형산강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그러나 형산강 각 지류의 명칭은 월성을 돌아흐르는 문천(蚊川)을 제외하면 거의 표시되어 있지 않다. 북동쪽의 형산(兄山) 부근에는 형창(兄倉)의 모습이 보이는데 당시 경주에 속하는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경주부는 영남의 큰 고을로서 지금보다 넓은 영역이었으며, 영일현은 상대적으로 작은 고을이었다. 이 지도에는 형산강 하구의 섬들이 잘 그려져 있다. 형산강 하구에 모두 4개의 섬이 그려져 있는데 지명이 표시된 것은 '해도'와 '죽도' 2개 섬 뿐이다. 죽도는 현재 위치에 비해 훨씬 바다쪽으로 나가 위치해 있다.

형산강의 본류 뿐 만 아니라 지류까지 잘 나타난 '해동지도 경주부'.

여기서 오 교수는 "지금의 냉천 하구에도 커다란 섬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잘못 그려진 것으로 판단된다. 하천의 규모로 볼 때 이같은 크기의 삼각주가 생기기는 힘들 것으로 보이고 현재도 이러한 섬의 흔적을 찾아 보기란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자는 오교수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좀 더 철저한 고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포항지역에 생존해 있는 나이 드신 분들의 설명에 일제강점기만해도 지금의 형산강과 냉천(현 포항시 남구 청림도 입구 '이마트' 옆 하천) 사이에 큰 삼각주가 형성돼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1872년에 제작된 '군현지도'의 영일현 지도는 군현지도가운데 백미로 꼽힌다.

다음의 '해동지도(海東地圖)'는 18세기 중엽에 제작된 군현지도로 형산강 본류 뿐만 아니라 지류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동남쪽에서 발원하여 경주 읍성 부근에서 남천과 북천 그리고 서쪽의 대천과 합류하고 있다. 이어 북쪽으로 흘러가다 안강창(安康倉)이 있던 안강 근처에서 북쪽의 기계천과 서쪽의 칠평천과 합류, 다시 동쪽으로 곡류하면서 영일현으로 흘러든다.

'영일현'지도에는 해안으로 흘러드는 형산강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형산강유역에 보이는 지명으로는 해발 200m 정도의 형산이 위쪽에 그려져 있고, 당시 해안의 선박들이 밀집하면서 부조 장터도 보인다. 눈에 띄는 것은 강 하류의 하중도(河中島)로 섬의 명칭없이 단지 '도(島)'라고 표기돼 있다. 섬의 북쪽 유로가 막히면서 연안과 연결되고 남쪽만 유로로 남아 있다. 위의 '조선지도'와는 다르게 섬이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인 1918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만들어진 '1:5만 지형도'.

'광여도(廣與圖)'는 18세기 중엽 영조 연간의 상황을 잘 반영하는 군현지도책으로 19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이다. 이 지도에는 형산강은 경주 남쪽(백운산으로 추정)에서 발원하여 영일만으로 흘러들고 있다. 하지만 영일현 경계에서 형산강이 끊겨 있고, 흥해, 연일, 장기와의 경계가 실선으로 그려져 흡사 해안선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형산 뒷편, '만귀정(萬歸亭)' 앞쪽 형산강에는 하중도도 그려져 있는데, 현재 경주시 강동면 오금리의 용당마을을 지나는 형산강에 하중도를 그린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광여도'의 영일현 지도는 경주부 지도에 비해 매우 소략적이다. 이것은 조선시대 영일현이 경주부에 비해 면적이 매우 작기 때문이다. 지도에는 하천으로 흘러드는 형산강 뿐 만 아니라 냉천(冷川, 현재 청림동)의 모습도 보이는데, 강폭이 작은 하천인 냉천이 형산강보다 넓게 그려져 있다. 또 형산강 하구에는 삼각주가 두 개 그려져 있고 냉천 하구에도 길게 형성된 삼각주가 그려져 있다.

■ 대동여지도상의 형산강

이 지도에는 형산강 발원지에서 하구까지를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게 그려져 있다. 경주지역의 지류와 합류하면서 영일만으로 흘러드는 형산강의 모습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본류에는 경주 근처의 서천과 형산쪽에 형강(兄江)이라는 지명이 표기되어 있고, 지류에는 건천, 사등천, 복천 등의 지명이 보이는데 다른 지도보다 하천의 명칭이 상세하다. 과거 하천의 명칭은 현대와 달리 각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 형산강도 모든 지역에서 형산강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형강이나 서천처럼 지역에 따라 이름을 다르게 불렀다.

이곳에서 형산강의 큰 특징은 배가 운항할 수 있는 수로를 표시하고 있는 점이다. 곡식을 모아 수송하던 창고인 형산창이 있던 곳까지는 두 줄로 강을 표시했고, 그 위로는 한 줄로 그렸다. 두 줄로 표시된 곳까지는 배가 다닐 수 있는 곳이고, 한 줄로 그려진 하천은 배가 다니기에 어렵다는 것을 말해 준다. 형산강 하구에는 덕도, 죽도와 더불어 몇 개의 섬이 더 그려져 있다.

■ 군현지도상의 형산강

1872년에 제작된 군현지도의 '영일현지도'에서 읍치(현청이 있는 곳)는 원래 형산강 남쪽에 있었는데, 장마 수해를 많이 입기 때문에 1870년(고종 7년) 지대가 높은 북쪽의 대잠동으로 이전했다. 이곳에는 안강에서 영일만으로 흘러드는 형산강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는데, 나루터에는 나룻배와 다리 표시가 보인다. 하구에 형성된 하중도의 모습이 다섯 촌락과 함께 그려져 있다. 이 지역은 하천이 범람하면 해도(海島), 하도(下島), 상도(上島), 죽도(竹島), 분도(分島) 등 다섯 개의 섬으로 나타나는데, 당시 토사가 계속 쌓이면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촌락 주변으로는 갈대 모습을 그려 습지였음을 알 수 있고, 신읍 앞에는 장터 모습이 보이는데 그 당시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부조장으로 보인다.

■ 포항진지도에 나타난 형산강

'포항진지도'는 1872년 조선왕조의 마지막 지도 제작 사업의 일환으로 그린 지도로, 포항진은 지금의 포항시 항구동에 있었다. 이 지도에는 형산강 하구 삼각주가 크고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하구의 삼각주에는 한자로 해도, 하도, 상도, 죽도, 분도 등 다섯개의 섬이름이 뚜렷이 보인다. 옆에는 황색의 지붕을 그려 촌락도 표시되어 있다. 이 지역은 형산강의 토사가 퇴적되면서 하천 범람시 물에 잠기는데, 물에 잠기면 다섯 개의 섬이 나타나 이같은 이름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인 포항에 배가 그려져 있는데 범선(帆船)으로 보아, 부조장으로 오가는 상선으로 추정된다.

■ 기타

구한말 일본이 한국침략을 본격화 할 무렵인 1890년 일본군에 의해 제작된 '1대5만 지형도'에는 안강을 지나 영일만으로 흘러드는 형산강의 모습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특히 이전의 고지도와는 달리 강폭과 유로가 매우 상세하다. 이 곳에서는 형산강의 이름이 '서상강(西相江)'으로 되어 있고, 하구 삼각주에 강도(江島), 독도(獨島), 죽도(竹島), 상도(上島), 하도(下島) 등 다섯 섬의 지명이 표기되어 있다. '포항진지도'와 비교해 볼 때 해도, 분도가 강도, 독도로 다르게 표기되어 있는 것이다. 현재 죽도동 위쪽으로 흐르던 구 하도의 모습과 지금의 송도동을 휘돌아 나가던 유로도 그대로 표시되어 있다.

이와함께 일제때(1918년) 제작된 '1대 5만 지형도'는 구한말에 비해 형산강 하구의 변화가 뚜렷하다. 죽도 윗쪽으로 흐르던 형산강의 좁은 유로(구 하도)가 폐쇄되고 남쪽의 유로만 남아 하구에서 두 갈래도 나눠져 영일만으로 흘러든다. 특히 하구 삼각지의 송호동(松湖洞, 지금의 송도동)에는 커다란 우각호가 보인다. 하구 삼각주에 형성된 다섯 개의 섬은 상도동, 대도동, 죽도동, 해도동 등으로 표기되어 있어 앞 시기의 지명과 다소 차이가 있다.

이러한 하구의 상황은 큰 비가 오면 토사의 퇴적을 가속화 시켜 포항항(현재 동빈내항)으로의 선박 접안을 어렵게 했다. 이때문에 일제는 영일만 하구에 대한 대대적인 직강공사를 벌이게 된다. 1935년 유강~영일만간 직강공사가 완공됨으로써 형산강 하구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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