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천 하구 5~6㎞ 구간, 생활하수 그냥 흘려보내 '시궁창' 방불

경주시 사정동 사정수문에는 인근 아파트단지에서 배출되는 각종 생활오수가 그대로 형산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입춘(4일)이 지나서인지 형산강은 물론 경주평야에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얼마전까지만해도 군데군데 남아 있던 형산강의 두꺼운 얼음장도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겨우내 움추렸던 형산강도 이제 봄맞이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지난해 10월부터 형산강 하구에서 강 북쪽(오른쪽)을 따라 울주군 백운산 발원지까지 도보 탐사를 하고 있는 탐사팀은 이제 강 남쪽(왼쪽)을 따라 다시 형산강 하구로 되돌아 오면서 탐사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6일 13회차 탐사는 경주시외버스터미널 위쪽 남천(문천) 하구에서 출발했다. 지난주 탐사때 남천 하구 하천변에 버려진 몇마리의 개(犬) 사체를 사진으로 찍어 경주시청에 신고했다. 인근 개 사육장에서 죽은 사체를 몰래 갖다 버린 것이었다. 경주시청에 신고한 뒤 조사 및 처리 결과를 통보해 달라고 했지만 아직 묵묵부답이다.

겨울가뭄으로 수량이 줄어들어 오염이 심각한 옥야보 인근 형산강물.

남천 하구에서 경주시 황성동 세잔베르체 아파트 앞까지 5~6km 구간의 여러 하수구에서 발생한 생활오수가 형산강으로 그대로 흘러들고 있었다. 사정동 사정수문, 금장교 아래, 월령보 2수문, 세잔베르체 아파트 옆 하수구 등이었다. 이들 하수구에서 나오는 생활오수가 왜 하수종말처리장으로 가지 않는지 의아했다. 이에대해 경주시청 담당 공무원은 "경주시수질환경사업소 건설 당시 일부 지역의 경우 수질환경사업소로 연결되는 하수관로를 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이들 하수구에서 나온 물은 세제물이 섞인 탓인지 거품이 심하게 일었다. 형산강 부영양화의 주범인 것이다. 하수구 바닥은 그야말로 시궁창 그 자체였다.

경주시가 형산강변에 불법 경작을 금지한다는 현수막을 세워놓았지만 그 옆에서는 버젓이 텃밭이 만들어져 있다.

남천 하구에서 서천교 구간에는 수만평으로 추정되는 불법 텃밭이 일궈져 있었다. 인근 주민들은 지난해까지만해도 없었다고 했다. 지난해 가을부터 누군가 몰래 조성했다고 귀띔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불법 텃밭 옆에는 경주시 건설과가 세워놓은 경고문이 있었다. 경고문에는 '하천구역내 불법농작물 경작행위는 하천법 제84조에 의거 5년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고 적혀 있었다. 전시행정의 표본이었다. 형산강 경주시 구역내에는 수없이 많은 불법 농작물 경작행위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단속 실적은 전무한 실정이다. 형산강환경지킴이 김상춘탐사대장은 "경주시의 불법 텃밭 단속은 기대조차 하지 않지만 쓰레기 수거 등 형산강 정화운동에라도 적극 동참하길 바란다"며 "형산강 살리기 운동은 경주시민들에게는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만큼 결국 형산강물을 먹는 포항시민들이 앞장설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형산강 둔치 곳곳에는 새의 몸통을 제외한 각 부위들이 버려져 있다.

경주시는 수년전 형산강의 시가지(남쪽) 구간(서천교~황성대교간 약 4~5km)에 주차장, 조깅 및 산책로 등 편의시설을 조성했다. 즉 형산강변 둔치를 공원화한 것. 지금은 강 건너 북쪽 둔치도 공원 조성 사업을 벌이고 있다.

멀리서 본 강변 공원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이었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에 왜가리 등 물새떼가 한가로이 노닐고, 그 옆 깨끗이 조성된 공원 벤치와 산책로에는 시민들이 담소를 나누는가 하면 조깅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선 강물이 얕고 유속이 느리다보니 부영양화 물질 등 퇴적물이 점점 쌓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 강 양쪽을 콘크리트로 직강화한 탓에 수초가 없어져 물고기가 살 수 없는 생태계로 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매일 이곳 공원에서 산책을 즐긴다는 이민호(63. 경주시 황성동)씨는 "흐린날의 경우 강물에서 탁한 냄새가 날 때가 많다"며 "겉으로는 아름다울지 몰라도 강물이 점점 생명력을 잃어가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 했다. 한마디로 형산강이 점차 자정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증거라 여겨졌다.

형산강환경지킴이 오주택회장은 "형산강 전 구간중에서 가장 오염이 심한 곳이 경주시가지 구간"이라며 "형산강 하구인 연일읍~포스코교 사이 형산강 둔치조성 사업의 경우도 생태계 측면에서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철저한 조사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월령보~강정보~서보 사이 강변에는 물이 말라 웅덩이 보다는 조금 큰 곳이 군데군데 있었다. 강물이 조금씩 흐르다 심한 가뭄으로 강물이 고여 버린 것이었다. 이끼 등 수초사이로 붕어 등 어린 물고기들이 답답한 지 아가미를 물위로 내놓고 배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등이 벗겨지고 군데군데 붉은 반점이 있어 피부병에 걸린 것이 분명했다. 심한 겨울 가뭄으로 강물이 흐르지 못해 물과 수초가 함께 부패해 일어난 현상이었다. 나무 막대기로 이끼를 걷어낸 후 물속을 헤집어 보니 바닥은 부영양화 물질(각종 찌꺼기)이 두텁게 쌓여 있었다.

각종 환경오염으로 신음하는 형산강이 겨울 가뭄으로 더욱 고통받고 있는 안타까운 현장이었다. 이들 물고기를 잡아 먹고 있었든지 왜가리 몇마리가 사냥꾼의 총소리에 놀라 하늘로 날아 올랐다. 둔치 곳곳에는 새의 머리, 발목, 털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사냥꾼들이 오리 등 새를 잡은 후 장만한 후 버린 것이었다.

경주시수질환경사업소 옆 둔치에서 도시락을 먹은 후 잠시 경주시수질환경사업소 배수구를 둘러봤다. 사업소에서 처리된 하수가 신당천을 통해 형산강으로 배출되고 있었다. 육안으로는 매우 깨끗해 보였다. 하지만 인근 신당천 하류에 있는 신천교 아래 물은 악취가 심했다. 신당천 인근 논·밭이나 가옥에서 버려진 오폐수가 그대로 형산강으로 유입되는 듯 했다.

국제레미콘 공장을 지나 옥야보 인근 강물 역시 탁도가 심했다. 거품이 이는 것으로보아 인(P)·질소(N) 등 부영양화 물질이 많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옥야보 주위 언덕에는 배추를 가득 담은 대형 비닐 수십 포대가 나뒹굴고 있었다. 그 옆에는 각종 생활쓰레기 더미도 보였다. 비닐 안 배추가 누른 색으로 변해가고 있는것으로 보아 버린 지 1주일 쯤 되어 보였다.

사방보 주위에는 누군가 텃밭을 만들기 위해 불을 질렀으며, 일부 구간에는 이미 텃밭을 만들어 대규모로 보리를 심어 놓았다. 한마디로 하천관리의 사각지대였다.

사방보 옆에서 한 남자가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초망으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형산강환경지킴이 한 여성 회원이 "저 물고기 잡아 먹을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아무도 "먹을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했다. 물고기가 먹지 못하는 강물을 포항시민들이 먹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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