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목공예가 김쌍기 씨

"나무에도 마음이 있습니다. 나무의 마음과 깎는 사람의 마음이 합쳐져 장승이 되는 거죠."

청송에서 소문난 목공예가 김쌍기씨.

그는 장승깎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온 장승깎기 전문가다. 2009년 정수미술대전에 한국 전통 상여를 출품하기 위해 준비에 한창인 그를 만났다.

"장승은 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이 말속에는 가슴 속에 심지처럼 박혀있던 아픈 상처가 숨어있다.

결혼 2년 후, 세월로 따지면 20여년 전 난데없이 찾아온 버거씨 병으로 오른쪽 손가락 마디와 오른쪽 다리 3분의 1을 잃은 그는 목숨처럼 생각했던 농사를 포기하고 우연히 소나무를 만지면서 소나무와 함께하는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다.

버거씨병이란 팔·다리의 작은 혈관들이 막혀 발가락이나 발이 썩는 병.

증상이 심해지면 동맥이 막히고 피가 공급되지 않아 괴사로 다리를 잘라내야 한다. 김씨가 처음 이 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된 것은 지난 88년이었다. 1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내면서 손가락·발가락은 물론 오른쪽 다리도 무릎 아래가 떨어져 나갔다. 생살이 썩어 들어가는 고통과 날이 갈수록 불편해지는 팔·다리에 시달려 온 지 20여년.

경북 청송군 현서면 수락리(목연장승촌)에는 병으로 인해 새삶을 찾은 목연 김쌍기씨(50)와 일송 홍순익씨(50)가 동고동락하고 있다.

상투를 틀고 단아한 개량한복을 입은, 평범치 않은 첫인상의 김쌍기씨.

어느날, 살고 있던 율지리에서 '탈·장승 축제' 가 열리면서 처음 망치와 끌을 잡은 그는 곧 장승에서 자신의 새로운 삶을 찾게 되리라는 걸 예감했다고 말한다. 방안에 파묻혀 힘들어한 시간이 끝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뻐할 만한 일이었는데 행사가 끝난 후 '장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멤버들의 도움으로 본격적인 장승 수업에 들어갔다.

컨테이너 박스와 비닐 천막을 작업장 삼아 장승을 깎던 김쌍기씨는 어느날 기적같은 일을 경험했다. 장승을 만들고 부터 발의 통증이 사라졌고 피가 흘러내리더니 발이 썩고 손가락이 썩어들어가던 버거씨병이 완전히 나은 것이다. 이때부터 장승을 깎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북을 두드리고. 예술의 전과정을 몸으로 터득해나갔다.

그는 1천300개의 장승을 깎아 그의 고향인 합천 율지리 도로가에 세웠다. 그리고 합천을 장승 명승지로 만들었다.

"나무에도 마음이 있습니다. 나무의 마음과 깎는 사람의 마음이 합쳐져 장승이 되는 거죠."

그가 말하는 나무의 마음이란 나무 본래의 생김새다. 나무가 살았을 때 가졌던 성정을 거스르지 않고 그 위에 깎는 사람의 의도를 보태면 표정 있는 장승이 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장승마다 생김새가 모두 다르다.

"이제 버릴 것도 없지만 더 얻을 것도 없습니다."

부인과 헤어진 후 김씨는 부모님께 아들을 맡기고 집을 떠났다. 그리고 목공예를 시작하면서 지금은 목공예 분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실력자가 됐다.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하는 그에게 가장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가 있다. 이혼한 아내에 대한 원망은 없지만 자신의 몸을 받고 태어난 아들, 부모의 온기를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을 아들을 생각하면 눈앞이 흐려진다.

하지만 장승을 만들면서 그동안 묵은 욕심과 묵은 병을 다 깎아냈다.

김씨는 목공예뿐 아니라 붓글씨, 그림, 상여 앞소리, 우리 소리 등 못하는게 없다.

그를 따라 목공예계에 입문한 동갑내기 제자, 홍순익 씨(50).

2007년 공무원으로 퇴직하고 새 주택에 입택 하던날 김씨를 초청, 김씨가 너무 좋아 "와도 되겠냐"는 물음에 흔쾌히 허락해준 홍씨 덕분에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로 서로 존대하며 살고 있다.

홍씨 역시 주말부부로 청송 골짜기에서 혼자 지내다 김씨를 만나면서 지금은 목공예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 때론 제자, 때론 친구, 인생의 든든한 동반자가 돼버린 두 사람. 서로 닮은 점도 많고, 다른 점은 서로 보완해주면서 살아가고 있다.

"여건이 되면 앞으로 수락리 길거리에 1천 300개의 장승을 세우려 합니다."

똑같은 길을 가고 있는 두 사람, 뭔가 남기고 싶어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성덕댐 확장으로 방치된 미경작지에 하천복원사업, 폐교활용하기 등 각종 사업 구상은 이미 끝냈다. 이들이 가장 매력을 갖는 것은 소달구지 체험으로 상옥을 거쳐 월포 바닷가까지 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 그리고 장승거리를 만드는 것.

한낱 나무로 만들지만 혼을 불어넣고 생명을 불어넣어 이 땅을 지키고 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기대하고 싶은 것이다.

"장승 하나를 깎는 데는 보통 이틀이 걸립니다."

장승이 필요한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어디서든 사람의 마음에 남기를 바라는 김씨의 마음은 늘 한결같다.

몸이 나아지면서부터 전국의 장승을 찾아 돌아다니면서 만난 장승들이 그의 스승이다. 장승을 찾아 다니다보니 사람을 마중하는 모습이 가장 좋아 지금도 그 일을 계획중이다.

사람이 많은 곳에 서 있는 장승이 행복한 것처럼 외딴 곳보다는 사람이 많은 길가 작업장이 더 편하고 좋다는 그는 사람을 그리워하게 된 것이 긴 투병기간 그를 괴롭힌 외로움 때문이라고 한다.

"재목은 주로 소나무를 씁니다. 사람에게 가장 익숙하고 향기도 친근한 까닭에 장승 재목으로는 소나무만한 것이 없지요."

사람들은 장승을 우상이라고 말한다. 또 미신이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씨에게 장승은 자신이 빚어낸 살아있는 '얼굴'이다. 질병으로 인해 접은 평범한 생활인으로서의 인생 대신 시인이며 공예가며 서예가로 또 다른 삶의 길을 걸어가는 김쌍기씨는 병마도 못 막은 장승깎기로 자신이 장승이 돼가고 있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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