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으로 맺은 모녀의 인연 … 김복조·이혜란 할머니

경주 황룡동 절골마을에서 만난 인연으로 함께 살고 있는 이혜란(왼쪽), 김복조 할머니.

"어머니, 이제 복지시설 들어가서 편하게 사이소."

"니도 같이 가자"

선문답같은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 찡한 감동이 밀려왔다. 서로 핏줄은 달라도 7년 전부터 어머니가 되고 자식이 돼 한 집에서 의지하며 살고있는 정신지체장애인 김복조할머니(87세)와 이혜란할머니(71세).

20여호의 주택이 띠엄띠엄 자리잡고 있는 경주시 황룡동 절골 마을. 골의 깊이만큼이나 마음의 골이 깊은 이들이 살고 있다.

어버이날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도회지 사람들은 선물을 고르느라 분주하지만 이곳에 사는 두 할머니는 사랑이란 큰 선물을 서로 주고 받는다.

"아침마다 다른 음악을 선물하는 새와 매일 다른 바람을 선물하는 자연이 있어 행복합니다."

지체장애로 말과 행동이 어눌한 김할머니는 경주 쪽샘에서 부잣집 딸로 태어났으나 어릴 적 앓은 홍역 후유증으로 장애를 가지게 됐고, 딸이 장성하자 부모들은 머슴으로 부리던 총각을 딸의 배필로 정하고 재산을 떼 주었다고 한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내를 보고 할아버지는 아내가 먼저 세상 떠날것을 소원했으나 자신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김할머니의 의지처는 이혜란 할머니가 됐다.

유방암을 앓는 절망적 상황에서 남편도 가족도 두고 절골에 들어온지 18년째라는 이혜란 할머니,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 욕심을 내려놓자 병은 스스로 물러났다. 몸이 가벼워지자 이씨는 김할머니 집을 오가며 수발하다 7년전부터 아예 자신의 집으로 모셔와 어머니처럼 모시고 있다.

얼마전부터 일주일에 세 번씩 간병사가 김할머니 목욕을 시켜주어 육체적으로 한결 수월해졌다. 기초수급 대상자가 돼 월 얼마간의 작은 돈이 나오지만 생활은 이할머니의 남동생들이 매월 보내주는 50만원으로 살고있다. 그 대가로 이 할머니는 따가운 볕에서 하루 종일 채소를 가꾼다. 그냥 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신기증도 다 끝냈습니다. 누구에게도 피해주고 싶지 않아서요. 내것이 있으면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재혼해서 열심히 살았지만 남편이 죽자 전처 자식들로부터 크게 배신을 당했다는 이 할머니는 "할매가 없으면 우울증이 걸리것 같은 생각이 들만큼 정이 듬뿍 들었다고 한다.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지지만 정은 산처럼 쌓여 돌처럼 굳어진 이들, 그러나 이들의 얼굴은 천사의 미소를 띤 부처다. 순수함을 간직한 얼굴에서 간혹 흘리는 웃음은 아가의 미소와 다름없다. 비운다는 건 또 다른 것을 얻는다는 말과 같은 것일까. 살아가는데 걸림이 되는 모든 것을 버렸지만 신이 이들에게 되돌려 준 것은 맑은 얼굴과 아기를 닮아가는 순수함,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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