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갈평리 평원요(平原窯) 도촌(陶忖) 박태춘 도예가
20여년간 창작에만 전념…매 작품마다 순수성 묻어나

도자기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박태춘 도예가

"그저 좋더라, 마냥 좋더라"

누가 자신에게 흙이, 불이 왜 좋으냐고 물으면 들려주는 대답이란다.

억겁의 세월을 견디며 쌓이고 쌓인 흙은 어머니의 부드러운 살결이요, 이 땅의 젖줄이다. 그 살결에 혼을 불어넣고 기나긴 생명을 창조한다는 도예가 도촌(陶忖) 박태춘(55).

박태춘은 지난 20년간 혼을 불사르듯 새로운 그릇 창작에 전념해온 사람이다. 천 년 도자기의 역사가 이루어 놓은 흙의 흔적, 지구상의 그 어떤 것과도 다른 흙을 주물러 그릇이란 형태로 담아내려 애쓰고 있다. 때문에 그의 우직한 성품이 빚어낸 찻그릇과 도예작품은 순수성이 있어 좋다고 한다.

전시실에 자리 잡은 갖가지 항아리들

부산 기장이 고향인 그는 우연한 기회에 도봉 김윤태선생이 운영하는 '상주요'에 갔다가 빚어놓은 그릇에 매료된 것이 오늘의 도촌으로 살게 됐다. 부드러운 흙이 다시 돌이 되는 게 좋아 도봉선생 밑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 때 나이 27세인때 1980년,

막상 들어가고 보니 스물일곱 청년에게 맡겨진 일은 장작패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궂은 일을 참 많이 했다고 한다.

"처음에 들어가서 한 두어달 줄곧 장작만 팼어요."

천남설화

왜 선생님은 장작패는 일 외엔 왜 아무것도 안 시키실까? 하지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묵묵하게 일만 했다. 얼른 흙을 만지고 항아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힘든 줄은 몰랐다.

많은 시간이 흐른 어느날 처음으로 항아리를 만들어볼 기회를 얻었다. 마음 같아서는 스승을 능가할 것 같았는데 흙 주무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제서야 스승님의 참뜻을 알게 됐다. 장작패는 일이 왜 처음이어야하는지를.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마음을 누르고 끝없이 인내하고 자신을 낮추는 겸허를 가르치려 했던 것이라는 걸 느꼈다. 그릇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월이었다, 그리고 노력이고 인내며 겸허였다.

진사항아리

도촌은 스승이 가슴으로 느끼게 해준 겸허함을 안고 충북 단양 방곡민요, 문경요 천한봉선생댁을 오가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살려나갔다. 장인들이 그러했듯 수많은 고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준 것은 그와 하나가 된 흙이었다.

1987년 도촌은 경주에 평원요(平原窯)를 설립한 후 깊은 도자의 세계를 배운다. 흙의 생성과정을 이해하고 그 흙이 그릇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배우면서 외동읍 괘릉리에 20여년 가까 터를 놓고 살다 2007년 다시 문경으로 간다.

그가 떠난 진정한 목적은 우물안에서 벗어나 순수성을 찾기위해서다. 경주에 젊은 도예인들이 터를 잡기 시작하면서 가스가마 작업이 성행했다. 그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쟁쟁한 도예가를 배출해낸 문경이란 땅에서 그들과 숨쉬며 그들의 도자세계를 좀 더 가까이서 공부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지금 많이 외롭다"고 한다.

그는 우리의 도자기 속에는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흙의 맛과 우리의 삶의 정서가 농축돼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연과 사람과 공생하는 분위기를 꿈꾸며 순수한 마음으로 도예에만 전념하고 싶어한다.

넓고 조용해서 "작업도 많이 할 수 있고 좋심니더"

그의 삶이 고스란히 들어앉아 있을성 싶은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갤러리와 차실을 겸한 그곳에 들어서자 갖가지 항아리들이 가슴에 안긴다. 화려한 듯 투박한 듯 얌전하기도 하다. 보는 이도 그러한데 20여년 세월을 함께 나누었을 그의 항아리와 그릇들, 그래서 도촌에게는 항아리 닮은 은근한 미소가 엿보인다.

"청자와 진사 연구에 10년 넘는 세월을 매달렸습니다."

흙작업 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했던 그는 선인들의 전통기법을 재현하고 전승하는 작업에 몰입했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면서 그만의 색깔을 찾아내고 입혀 나갔다. 하지만 가마가 그 빛깔을 마음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순수 토석재료만을 사용한 청자를 만들었다. '진사유약'개발도 했다. 그가 만든 진사유는 6가지 유약의 발색이 다 특색을 띤다. 그 외에 순분청, 천남유(설화유),백옥유 등 25가지의 유약을 직접 만들어 쓴다.

그는 1994년 울산 MBC화랑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진사 작품을 많이 선보였다. 그의 작품을 본 관계자들은 일찍부터 진사작품을 선보인 그에게 여주나 이천 도자기촌으로 가면 상당히 좋을 것이라 권유하기도 했다. 애써 만든 유약에 자부심을 갖고 쓰는데 지금은 전문 유약을 파는 사람들이 있어 허무하다고 한다. 그러나 더 좋은 유약을 개발하고 있는 그는 머지않아 더 나은 작품이 나올 거라 확신한다.

지금까지 작업을 해왔지만 스스로 만족할 만한 작품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걸 새삼 느낀다는 도촌. 그는 10여년전부터 항아리 작업과병행해 생활소품, 즉 작은 찻그릇도 만든다. 작은 그릇을 만드는 건 자신의 삶의 격려라고 했다. 그의 찻그릇을 즐겨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찻그릇에 말간 향이, 찻물이 베이는 기쁨도 그에게는 항아리작업 못지 않게 크고 역시나 재미있단다. 현대 다완은 다양성, 형태, 빛깔, 느낌 등 조선도공이 빚은 것과 틀리다는 그는 "뭔가 전수안된 기술이 있을것"만 같아 지금도 혼자서 그 기술을 찾아 고민하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노력하는 도예인이다.

▶약력◀

도촌 박태춘

1980. 기장군기장읍 교리 상주요 입사

1985. 충북 단양군 방곡민요 입사

1987. 문경시 천한봉 선생 사사

1990.7. 한국현대미술대전 특선, 현대미술상

1990.10.신라미술대전 입선

1991.5. 경상북도 공예품 경진대회 입선

1994.12.울산 MBC화랑 '학성'개인전

1995.11.신라미술대전 특선

1996.5. 울산시 종합문화예술회관 개인전

1998.1. 울산 아트리움 갤러리.UBC공동기획 초대전

1999.4. 울산지방기능경기대회 도자기 심사위원

1999.9. 전국기능경기대회 도자기 심사위원

2001.3. 울산지방기능경기대회 도자기 심사장

2001.8. 황토자기 발명특허 취득

2002.4. 울산지방기능경기대회 도자기 심사장

2003.7. 창강전

2003.7. 신라문화유적 작품전

2003.10.경주 미술 협회전

2004.5. 경주 예총예술제

2004.9. 전국기능경기대회 도자기 심사장

2004.10.경주 미술 협회전

2007. 문경으로 이주

2008. 05. 문경전통찻사발공모대전 입선, 특선

2009. 05. 문경전통찻사발공모대전 입선, 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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