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일 한동대학교 공간시스템공학부 교수
김주일 한동대학교 공간시스템공학부 교수

요새 도쿄 근교의 카마쿠라라는 곳에서 한국 관광객들이 줄을 서 사진을 찍고 있다고 한다. 그저 바닷가에 철도가 지나가는 건널목일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의 배경이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순례지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또 얼마 전 교토에 갔을 때는 산속 계곡, 약수터 같은 곳으로 열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예쁘게 장식한 열차가 자연 속으로도 불쑥 들어오는 모습은 특이한 매력이었다. 신칸센의 나라지만 지방에는 저속 철도도 여전히 남아 쓰임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테제베, 이체 같은 고속철도는 광역권을 빠르게 연결하는 역할만 하고 있다. 구석구석 작은 마을들은 여전히 저속 철도노선이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느린 기차를 타고 동화 속에 등장할 법한 작은 마을들을 돌아다니는 재미가 아직도 살아 있어 유럽 관광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반면, 고속철도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우리나라 지방의 철도노선들은 사라져 가는 분위기이다. 포항과 경주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두 도시는 철도로 이어진 하나의 생활권으로 만들어져 왔다. 하지만 수도권과 연결된 KTX가 들어오면서, 지금은 서로 딴살림(?)을 차려 버린 형국이다. 아무리 보아도, 서로 간의 연결성은 오히려 후퇴된 것만 같다.

고속철도가 교통오지로 여겨지던 지역 분위기를 극적으로 바꿔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좀 실망스럽다. 철도역이 시가지로부터 한참 먼 곳에 개발되다 보니, 도착한다 해도 또 다른 여정이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두 시간 반 만에 도착하면 뭘 하나. 시가지로 들어오기 위해 다시 한 시간 이상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만 한다. 사람이 붐비는 시간대라면 택시를 잡는 데만도 수십 분이 걸린다. 애써 차를 잡는다 해도 웬만한 장소로 가려면 일이 만원은 추가로 소요된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서 지인이라도 방문하는 경우면, 직접 차를 가져가 태우고 오는 편이 마음 편하다. 역에 도착한 그분들이 겪을 난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KTX를 믿고 찾아온 지인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으려면 직접 가는 방법 외엔 도리가 없다.

과거 새마을호 때를 생각해 본다. 물론, 서울에서 출발해 무려 네 시간 반을 타고 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열차에서 내리면 바로 포항과 경주 시내를 볼 수 있었다. 주변 도시로 이동하기도 훨씬 쉬웠다. 들어오는 것이 느렸지, 지역 내에서 이동하기에는 훨씬 편한 방식이 아니었다고 할 수가 없다. 이럴 바엔, KTX보다는 차라리 동대구에서 연결하는 새마을호를 직선화하고 자주 운행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지금 진행되는 철도 개편이 지방위기 시대에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교통체계는 흔히 사람의 핏줄에 비견되곤 한다. 핏줄에는 굵은 동맥, 정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몸의 모든 조직에 연결되기 위해서는 점차 작은 핏줄로 이어지면서 결국에는 모세혈관까지 도달해야만 한다. 하지만 KTX 개편 이후 지방도시의 모습은 마치 정맥만 연결된 것 같은 모습이다. 수도권과의 연결은 강화했지만, 정작 지역 내의 모세혈관 연결은 후퇴되어 버렸다고나 할까. 자칫 ‘빨대 효과’만 늘리지 않을까 두렵다.

요새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에 또 다른 GTX 노선계획이 발표되고 있다. 고속과 중속, 저속의 철도노선들이 수도권 전체를 정말 핏줄처럼 촘촘히 엮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지방도시들의 경우 그토록 원하던 고속철도를 얻었다지만, 과연 지역을 활성화하기에 적합한 교통체계가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 단지 ‘고속’이라는 보기 좋은 함정에 빠져 접근성, 활용성, 그리고 지역 활성화라는 디테일을 등한시한다면 지역의 교통 여건은 더욱 어려워져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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