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인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연구교수
김영인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연구교수

올해도 설 명절을 보내기 위해 국민의 절반 이상이 민족 대이동에 동참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귀성길의 정체를 감내하며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으로 향했다. 한국인에게 고향은 험난한 객지(客地)에서 마주한 설움과 시름을 달래주는 부모의 따뜻한 품과 같다. 고향이 우리의 지친 마음을 포근하게 채워주듯, 지방 역시 저성장에 신음하고 있는 국가를 일으켜 줄 때가 왔다.

대한민국은 현재 중앙집권형 국가 시스템의 늪에 빠져있다. 권위주의 산업화시대를 거치며 국가 발전을 이끌었던 수도권 집중화 정책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 기형적인 불균형 문제를 던져주었다. 전 국토의 12% 수준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50.7%인 2,601만 명이 살고 있으며, 자본·일자리·교육·의료 등 모든 분야의 생활 인프라가 수도권에 쏠려 있다. 이와 반대로 지방은 저출산, 고령화, 청년인구 유출이라는 삼중고를 겪으며 지방소멸의 위기에 허덕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6대 국정 목표 중 하나로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표방하였다. 그리고 2023년 7월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를 출범시켜 지방 살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중앙정부의 노력은 수도권 쏠림과 지방소멸의 악순환이라는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나아가,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경상북도 또한 지방시대를 여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경상북도는 지난해 지역 내 기업과 대학을 이어주는 경북형 유(U)시티 프로젝트를 가동하여 지방정부 주도의 경제성장 모델을 인정받았다. 올해에는 ‘경상북도 지방시대 계획(2023~2027)’에 기반한 5대 전략 22개 핵심과제에 2조7,000억 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성사했다. 여기에 이철우 도지사의 강력한 추진력으로 구성된 「저출생극복 TF」는 경상북도가 대한민국 지방소멸 문제를 앞장서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물론 장기간 유지되어 온 한국의 수도권 일극 체제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지방자치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고, 중앙에 대한 지방의 재정적, 심리적 의존 상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현실을 회피 또는 부정하기보다는 우리나라가 왜 지방시대를 맞이해야 하는지 다음과 같은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국가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함이다. 헌법 23조 제2항은 ‘국가는 지역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하였다. 이 조항은 지역 간 개발 격차를 좁히고 균형발전을 실현해야 할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 것으로, 저성장의 늪에 빠져있는 한국의 신성장동력으로 지방을 활용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마련해 준다.

둘째, 대한민국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함이다. 민주주의는 권력 분산과 국민주권을 핵심 가치로 한다. 지방분권은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지방으로 분산시킴으로써 지방정부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동시에 높여준다. 또한, 지방자치는 주민이 자신의 거주 지역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해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함으로써 민주정치의 발전에 기여한다.

이처럼 대한민국이 ‘지방시대’를 활짝 열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지방시대는 국가의 가빠진 숨통을 트여주고, 고단한 국민에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가뭄 속 단비와 같을 것이다. 지방시대가 열리는 그 반가운 과정에서 지방이 주도하고 중앙이 지원하는 상향식 국가운영 시스템이 정립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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