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일 한동대학교 공간시스템공학부 교수
김주일 한동대학교 공간시스템공학부 교수

아파트 재건축 시장에서 큰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서울 반포지역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 사업에서 무려 12억의 세대별 분담금이 매겨졌다는 소식이다. 지방의 웬만한 신축 아파트 몇 채에 해당하는 가격이라 계산도 어지러울 지경이다. 최근 높은 금리나 건설비용을 생각한다 해도 믿기 어려운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돈을 벌어주던 재건축 시장이 이제 소멸해간다는 신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사실 아파트 재건축이란 것은 한국의 독특한 상황이다. 수백 수천 세대가 사는 거대한 단지를 일사불란하게 허물고 다시 짓는 과정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외국에서는 아파트 단지의 개념 자체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아파트는 도심부나 역세권에 지은 단독 건물을 의미한다. 각각이 독립된 아파트일 뿐, 우리나라처럼 여러 아파트를 묶어 단지를 만드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라 하면 으레 단지형 아파트를 의미한다. 가끔 지어지는 ‘나홀로’ 아파트는 선호의 대상이 아니기 마련이다.

이렇게 단지형 아파트가 주종이 된 것은 1970년대 한강변 개발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당시 주 공사 실무자들은 초유의 대규모 택지개발을 앞두고, 유럽의 아파트 양식과 미국의 근린주구론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유럽은 전후 복구를 위해 기존 양식과 다른 고층형 아파트를 개발하기 시작한 상태였다. 또 미국은 빠르게 확장되는 교외 주택지를 관리하기 위해 큰 블록 단위로 주거지를 구분하는 근린주구 개념을 적용하고 있었다. 주택공사는 건축양식으로는 유럽 아파트를, 계획방식으로는 미국 근린주구론을 가져오면서 단지형 아파트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를 여의도, 반포, 그리고 강남개발에까지 적용해간다.

따지고 보면 문제는 없지 않다. 당시 유럽의 아파트는 단지로 건설되는 양식이 아니었다. 또 미국의 근린주구론은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지에 적용되는 계획이었다. 이 둘을 결합해 거대한 블록을 가득 채우는 아파트군을 조성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종의 혼종(?)에 해당하는 개발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성장과 개발의 시기에는 장점이 더 많았다. 수십만 평의 신시가지도 단지 단위로 구획한 후에 건설사들에게 배분하고 나면 순식간에 완료될 수 있었다. 한국식의 ‘빨리빨리’ 건설 비결이 바로 단지형 아파트였던 것이다. 급히 짓느라 약해진 내구성은 재건축이 오히려 돈이 되는 여건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가파른 성장이 끝나가면서 단지형 아파트는 의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단 아파트 단지의 큰 덩치가 문제이다. 가장 크다는 송파의 헬리오시티는 거의 1만 세대에 가깝다. 웬만한 군 규모의 인구가 단지 하나에 거주하는 셈이다. 이번 뉴스에서도 보듯, 이런 거대 단지를 재건축하는 것은 점점 어려운 과정이 되어가고 있다. 미래 이익도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거대한 재건축 PF를 진행하는 것은 폭탄을 떠안는 부담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거주자들의 분담금은 늘어나고, 합의도 자금 마련도 어려워지면서 재건축은 미궁에 빠질 수밖에.

공룡처럼 위력을 뽐내며 번성하던 거대 동물들이 기후 급변기에는 오히려 먼저 멸종해가는 경우가 있다. 거대 아파트 단지가 성장과 개발의 시기에는 더없이 좋은 개발수단이면서 또 재산증식 수단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인구가 감소하고 도시가 축소되는 상황에서 가장 센 바람을 맞는 곳이 될 수도 있다. 이제 단지형 아파트의 대안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때가 되었다. 이미 아파트 공동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방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가로주택정비사업과 같은 대안적인 재개발 방안들이 이제는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아파트 단지도 불가침의 영역일 필요는 없다. 단지의 경계를 해체하고 다시 도시로 되돌릴 수 있는 정책도구도 다가올 미래를 위해 미리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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