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일 한동대학교 공간시스템공학부 교수
김주일 한동대학교 공간시스템공학부 교수

오래전, 지역에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의 일이다. 한 시민단체의 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용은 지자체가 해안가에 새로이 조성하는 공공 조형물 프로젝트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그 조형물로 발생할 수 있는 경관이나 안전 문제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자료를 검토하고 예상 가능한 몇 가지 우려를 정리해 그에게 전해 주었다.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역의 시사 방송을 물색해 놓았으니, 출연해서 내 의견을 말해 달라고 그가 다시 요청해 온 것이다. 이후 방송사 측에서 실제로 연락이 왔고, 방송작가는 내 우려 의견을 반영한 기획 원고를 작성해 보내 준다. 방송에서 나는 조형물의 경관이나 안전상의 우려를 말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고, 거기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막상 녹화가 시작되자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사회자들이 기획과는 다르게, 조형물에 대한 찬양 일색의 분위기로 이끌어 가는 것이었다. 질문도 원고와는 달랐다. “조형물이 생기면 시민들이 참 좋아하고, 지역도 활성화될 것 같은데, 교수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그야말로 ‘답정너’같은 질문만 하는 게 아닌가. 비판적인 언급은 원천봉쇄하려는 의도였다. 당황한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녹화를 끝냈다. 글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금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조형물 설치를 놓고 벌어진 지역의 정치적 싸움에 멋도 모르고 말려들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조형물 설치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업이 없는 것 같다. 도시마다 에펠탑이나 자유의 여신상처럼 지역의 상징이 될만한 조형물을 만들고자 애를 쓰고 있다. 이렇게 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에 ‘도시디자인’ 개념이 떠오르면서부터이다. 기업처럼 각 지역과 도시도 독특한 디자인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퍼져갔다. 지역마다 캐릭터와 로고를 만들었고, 거리나 광장에는 공공 조형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도시디자인이 비교적 손쉬운 정책이라는 점도 유행에 한몫했다. 다른 개발사업처럼 대규모의 토지나 예산이 필요하지 않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지자체로서는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진행할 수 있는 사업이란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등장한 조형물들이 성공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심지어 결국 철거까지 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최근 경북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당장 도청 부지에 놓였던 조형물만 해도 흉물과 특혜 논란에 휘말리면서 철거된 바 있다. 특산물인 대추 모양으로 만든 군위군의 화장실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화장실’이 아니냐는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포항의 ‘은빛 풍어’라는 조형물은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로 재료인 철재의 비용도 보전하지 못한 채 철거된다. 흉물논란이 없는 지역이 드물 정도이다.

조형물이 흉물로 전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민 참여의 부재는 역시 빠지기 어려운 문제이다. 거대한 물체가 삶터에 놓이는 과정에 작가의 예술세계나 지자체의 행정 논리만 있을 뿐, 정작 작품과 함께 살아야 하는 시민들의 시야는 무시되기 일쑤이다. 예술로서의 작품과 현실은 다르다는 사실이 인식되지 못하는 점도 큰 문제이다. 작품은 일단 설치되고 나면 시공간의 영향을 받는 현실의 구조물이 된다. 이 과정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을지,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뉴욕에서는 새로운 명소로 각광 받던 ‘베슬’이 하루아침에 ‘자살 타워’로 바뀌며 폐쇄한 경우만 보아도 그렇다.

이렇게 보면 공공 조형물은 결코 손쉬운 정책은 아닌 것 같다. 예술과 행정, 그리고 시민의 필요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아야만 하는 복잡미묘한 정책이다. 진행시키고 볼 정책이 아니라 용의 눈을 그리는 심정으로 심사숙고해야 할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작품을 넘어 좋은 도시를 만들 수 있는 조형물을 찾는 안목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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