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희(위덕대 학생생활상담실장·심리학 박사)

"우리 집에서는 어제도 혈육간 전쟁이 벌어졌다."

집집마다 형제자매간에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부모들이 많다. 대부분 이 전쟁의 시작은 어찌되었던 동생의 판정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동생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첫째가 듣는 말은 "동생은 아직 어리니까 네가 좀 양보하면 이렇게 안 싸우고 좋잖니", "동생하고 똑같이 굴면 되니? 네가 더 나이가 많고 형이잖아" 이렇게 동생을 위해 참고 희생하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말은 그야말로 우이독경(牛耳讀經)이 되고 만다. 다음에도 어김없이 똑같은 전쟁이 되풀이되고 우리 부모님들은 '내가 아이를 잘 못키우는구나, 또는 얘네들은 해도 안되는구나'라는 무기력에 빠진다. 결국 아이들을 방치하게 되거나 아이들은 심하게 때리거나 야단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아이들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그러면 타이르거나, 야단을 치거나 때려도 안되고 내버려 둬도 해결이 안되는 형재자매간 싸움은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해답은 첫째 아이와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동심리학 교재에는 자주 "Sibling libary"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형제자매간 경쟁심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용어가 전공교재에 등장할 만큼 형제자매간에 경쟁하는 것은 보편적이고 자주 경험하는 일이다. 우리가 자주 싸우는 아이들에게 '왜 형제끼리 그렇게 싸우냐'고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형제자매이기 때문에 그렇게 죽어라 싸워대는 것이다. 가장 큰 목적은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놓고 겨루는 경쟁인 것이다. 부모들이 허구한 날 양보를 강요하는 첫째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동생을 위해 양보는 커녕 '저 녀석이 없어지기라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소원도 가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첫째아이는 대부분 부모와 주위 친척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성장하고 '세상은 이렇게 나를 좋아하는구나',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나'라고 느끼며 마치 왕좌에 오른 듯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동생이 태어나면서 하루아침에 '폐위된 왕' 신세로 전락하는 것이다. 엄마아빠도 동생에게만 관심을 갖는 것 같고 동생에게 우유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쳐다보고 웃어주고 안아주고 놀아준다. 엄마아빠의 사랑을 모조리 뺏어간 녀석을 조금 괴롭히기라도 하면 엄마아빠 둘 다 호들갑을 떨어대며 동생을 보호하려고 자신을 야단치고 협박하면서 나쁜 아이 취급하는 것이다.

이럴 때 첫째는 '퇴행(退行)'을 하기도 한다. 배변훈련을 다 마친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옷에 오줌을 누기도 하고, 야뇨(夜尿)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또는 동생 분유를 퍼 먹기도 하고, 컵으로 잘 마시던 우유를 동생 우유병에 넣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엄마입장에서 보면 '밉다 밉다 하니까 점점 미운 짓만 하네'라고 생각하거나 아이가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럴 때 엄마아빠가 야단을 치거나 비웃어서는 안된다.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고 아이가 하고 싶은 만큼 퇴행행동을 하도록 해 줘야 한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첫째 딸이 작은 딸을 미워하고 때려서 울린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짠해서 작은 아이를 더 위로해 주고 예뻐해 주었다. 큰 아이 보는데서 작은 아이 편을 든 일이 많았다. 그럴수록 큰 아이는 둘째를 미워하고 때리는 일이 잦았다. 결국 해답은 나와 첫째아이와의 관계 속에 있었다. 큰 딸이 가엽게 느껴지면서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표현할 때 큰 아이는 맑고 당당한 원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첫째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관심과 사랑이 자신을 향해있다고 느낄 때 동생에게도 너그러워졌다.

첫째아이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잘 알지만 마음과 행동이 잘 안 된다는 부모도 있다. 대부분 자신의 심리적 상처나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경우, 부모도 심리적으로 상처받은 발달단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성인의 마음을 갖기 어렵다. 이럴 때는 우리 부모님들이 자신이 먼저 심리적으로 건강해질 필요가 있다. 심리상담은 비타민복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비타민이 부족하면 우리 신체가 잘 기능하지 못하는데 '나는 비타민을 안 먹고 내 스스로의 힘으로 좋아질꺼야'라고 버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심리적으로 힘들 때 '내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낼꺼야'라는 사람은 많은 것 같다.

부모님들의 심리적 건강은 매우 중요하다. 한 가정을 끌고 나가야 하는 리더이기 때문이다. 필요하면 심리적으로 건강해지기 위해 상담의 도움도 받고 부모교육도 받으면서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워나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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