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홍곤 그림/이철진

혜경-(재수의 손에서 몽둥이를 빼앗고)아버지 방으로 들어가 쉬세요.

(몽둥이를 청밑에 넣는다)

재수-말을 해서 안들으면 개패듯이 마구 두들겨 줘야 정신을 차리는 거야

김씨-최서방을 떼칠려면 삯이나 주고 떼쳐버리게 올라가서 품삯 셈이나 합시다

재수-(청으로 올라가면서)그놈에 줄 돈은 셈할 필요됴 없어. 더 요긴한 셈이나 해야지

김씨-(혜경보고)최서방이 저렇게 돼버렸으니 당장에 내일 아침 물을 어떻가나? (청으로 올라서며) 설마 술이 깨면 또 오겠지. (재수와 마주 앉는다)

재수-곗돈은 얼마나 모였소?

김씨-(경계하면서) 뭐라구요? 곗돈요?

재수-음! 이달 분으로 거둔돈이 얼마냐 말이요.

김씨 -(말이 없다)

(곰곰히 생각에 잠겨 있던 혜경 부엌에 들어가더니 물양철 두개를 가지고 나와 물지게를 메고 나가려한다.)

김씨 -(혜경의 행동을 보고 있다가) 얘아 혜경아! 네 그걸 지고 어딜 가니?

혜경-물 길러 가요.

김씨-그만 둬라. 무슨 힘으로 네가 그 무거운 물짐을 지겠니?

혜경-다른 여자들도 다 지는데 제가 못 지겠어요? 염려 말아요. 어머니!

김씨 -그만 두라니깐! 품삯 아껴서 다 큰 딸에게 물지게 지운다구 부모가 욕 듣겠다. 너도 부끄럽질 않니?

혜경-모두가 살려고 움직이는데 부끄럽긴 뭣이 부끄러워요?

재수-암 그렇구 말구. (혜경 퇴장) 저애는 저래두 뼈가 있거던 악착스럽게 살려는게 부끄럽다며 차라리 죽어 버리지.

김씨-말 말아요. 살림 망쳐놓고 이제 와서는 딸애 마자 물지게를 지울 셈이유?

재수-그러니까 우리 소유의 우물을 파겠다고 발바닥이 닳도록 올아다니는 게지.

김씨-아따 당신은 언제부터 집안 살림 걱정을 하게 됬수?

재수-사생활과 사회 활동을 결부시켜야 실패가 없다는 걸 몰라? 우물을 파면 살림 밑천도 나오구 더군다나 차기 동장 선거엔…

김씨-아유 그 선거 소린 제발 그만 해요. 매양 나서도 떨어지는 그눔의 선거 이젠 지긋지긋해요. 선거다 정치다. 하는 통에 집안꼴 요렇게 망쳐놓구서…

재수-(고함을 지른다) 다음 선거엔 꼭 이겨낼 자신이 있어! 남편을 그렇게 못 믿겠단 말이냐?

김씨-(기가 죽어) 못 믿는게 아니라...... 우물 얘기나 해보세요.

재수-청석골에 우물만 하나 더 파고 동장 박가보다 헐한 물세를 받으면 동장의 인심은 내게 쏠릴거야. 반장도 보장하겠다더군.

김씨-박동장은 협잡꾼이긴하지만 수단은 당신 보다 한 술 더 뜬다우.

재수-(불쑥 화를 내며) 뭣이 어째? 박가가 한 술 더 뜬다? 임자는 제 남편을 뭐로 보는거야? 어떤 놈이 그런 소릴 해!

김씨-협잡질에 한 술 떨어진다구. 뭣이 그래 언짢으시유?

재수-암! 그러면 그렇지. 내야 정결하게 일을 꾸미거던. 박가놈이 우물 갖고 표를 얻었으면 나야 더 깊은 우물을 파서 대결할테다. 밑천을 던져 우물만 파면 돈과 동장 자리가 한꺼번에 드러 닥칠거야. 동장만 되면 시의원도 시장자리도 넘어다볼 수 있거던.

김씨-여보 우물을 파더라두 위선 무슨 돈으로 시작 할셈이유?

재수-그러니까 아께 내거 묻잖었소. 곗돈 얼마나 모였느냐구.

김씨-모인 돈은 아직 십만환도 못 되는걸요. 다 모이더라도 남의 돈을 마음대로 둘려 쓸수가 있나요.

재수-허- 이젠 불고체면으로 거기라도…

(혜경이가 빈 물양철을 걸린 물지게를 지고 힘 없이 들어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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