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홍곤 그림/이철진

반장-상팔이란 놈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더군 역시 어린 애야 !

반장부인-약혼식은 구럭저럭 치루지만 다음엔 빨리 결혼식을 하자고 떼를 부릴거예요

반장-글쎄 훗달이라도 결혼식을 후다닥 올려야 마음을 놓겠는걸

반장부인- 이 집 큰 아들의 거동이 아무리 봐도 수상해요 결혼식 때까지도 마음을 못 놓겠는걸요

반장- 흥 이 집의 영감의 고집이 어떤 고집이라고. 제 아무리 서둘어도 에비 고집을 당해 낼려구! 설사 애비를 설복시킨다 손치더라도 영감은 백만환에 묶여 꼼짝 못 할 거 아니요 거미줄에 걸린 파리야 파리. 근데 우리 중신한 수고로 쌀 한 가마니는 너무 헐한데

반장부인-글쎄 쌀 한 가마니로 입을 싹 씻을 모양이지. 내일 내가 형부를 졸라 더 얻도록 하죠

(재수 동식 상팔 뒤곁에서 등장)

재수- 이 사람아 ! 아무리 젊은 사람의 혈기라 하더래두 약혼식을 앞둔 신랑이 컴컴한 우물 속엔 뭐하러 내려 가는가? 쯧쯧 !

(밧줄을 청 밑에 넣는다)

반장부인-꽃같은 색실 두고 떨어지면 어떻컬번 했니? 영락없이 몽달귀신이 되지

(재수 상팔 청으로 올라간다)

반장-이놈은 어떻게나 대담한지 물불을 안가리거던 여하튼 요새 세상엔 첫째 주먹에 세야 언권이 서는 거라오

재수-그 참 좋은 말씀이요

동식-(부엌을 드려다 보고) 어머니 배고파 빨리 식을 올려요

김씨-(부엌 앞에서) 오냐 ! 이 상 가치들고 가자 (부엌으로 들어 가더니 김씨와 음식을 차린 상을 들고 나와 청으로 올려 놓는다)

재수- (우편 방을 향하여) 혜경아 이리 나오너라 (대답이 없으니 문을 열어 본다) 네 누나는 어딜 갔나?

동식-형님 방에 있을 거예요

재수-얼핏 오라 해 네 형도 (사랑 방으로 가서 망문을 열고)

동식-누나 ! 빨리 와 ! 빨리 나오라니까 뭘 하고 있어 모두 기다리고 있지 않니 !

동욱-( 방 안에서 소리만 들린다) 이 녀석이 왜 이래 떠들어 ! 저리 가 있어 !

동식- 형님도 오라 해요

동욱-(소리만) 저리 못 가 ! (방에서 잉크 병이 날라 나온다 동식 급히 몸을 피하고 청으로 되돌아 온다

동식-체! 기분 나쁘게 !

재수-(벌떡 일어서며) 저 놈을 당장에 ! 아-니 저놈을 … …

김씨-(급히 재수를 잡고) 동백이가 불란서로 떠난다고 이별주에 취해 저런다오 내바려 둬요

재수-오늘이 대관절 무슨 날이라구… 누구 앞에서 하는 버릇이냐 천하에 배우지 못한 놈 같으니라구)

반장-왜 이러십니까! 오늘 만은 영감님이 참아야지요.(재수를 앉힌다)

재수-그녀석 불란설 가던 지옥으로 가던 잘 없어졌다

김씨-(사랑방으로 가서) 얘야 아가 ! 이리 나오너라 잠시 동안만 와서 앉아 있으면 되잖니 (이윽고 혜경 말없이 방을 나와 김씨의 뒤를 따라 청으로 올라간다)

혜경아 오늘은 네가 주인인데, 처녀 때는 다 그렇게 부끄러운 법이란다

반장부인-어쩌면 저롷게 얌전하고 예쁠가? (김씨 혜경을 상팔이 우편에 앉힌다. 혜경 될수 있는대로 상팔과의 거리를 멀리 할려고 애 쓰며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다.)

재수-사돈 내외분이 참석했으면 오즉 좋으련만.

반장-워낙 일이 바뿐 분이라서… 안에서는 감기로 누웠고…….

상팔-(아까부터 벽에 걸린 혜경의 그림을 고개를 돌려 뒤로 쳐다 보고 있다가) 혜경씨 저 그림 누가 그린겁니까?

반장부인-너한테 얻어 맞었다는 그 그림쟁이가 그렸겠지. 어찌면 저렇게 그림 솜씨가 서툴까? 우리 혜경이의 날씬한 몸집이랑 백윽같은 살색이랑 저 그림이 들어 망처 놨네. 쯧쯧! 어디 그릴게 없어 하필 물지는 꼴을 그린담. 보기 숭하게.

재수-난 여태 이런것이 집에 걸려 있는 줄은 몰랐구나. (일어서 그림을 뗄려든다.) 에이 보기 싫어!

혜경-(급히 일어서 아버지를 막고) 아버지! 떼지 마세요. 나중에 제 손으로 떼겠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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