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홍곤 그림/이철진

김씨-아기 원대로 내버려 둬요. 오늘만은 혜경이 뜻대로 해줘야 되잖수.

반장-암 그래야죠.

반장부인-그러면 오늘은 애기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세요.

재수-(자리에 도로 앉으며) 오늘은 참지!

김씨-아가 염려 말고 앉거라. (혜경 앉는다.)

상팔-(안 호주머니에서 사진을 한장 끄내고) 저런 엉터리 그림보다 이 사진이 훨신 혜경씨에 어울릴겁니다. (혜경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반장부인-(사진을 들여다 보며) 어머나! 이것도 지개진 사진이네 호호호.

재수-두번 다시 물 지키다간 망신 하겠다. 이것도 그미친 권가놈 때문이야.

상팔-저따위가 어디 그림 축에 들어 가나요. 이 다음에 저 그림보다 크게 확대 한 걸 드릴테니. 자 오늘은 기념으로 이것부터 받아 두세요.

(혜경 사진을 받아 보지도 않고 갈기 갈기 찢어 버린다.)

재수-아! 이년이 이게 무슨 짓이냐!

반장-물을 진 모양이 부끄러워 그런가봅니다. 물을 지도록 내 버려 둔게 첫째 잘못이었지요.

상팔-혜경씨 모르도록 찍어서 화가 난 모양입니다. 요 다음엔 정식으로 찍어 드릴께.

반장부인-자 그쯤 하고 이제 약혼 반지 교환을 합시다.

재수-그럽시다. (반지통을 혜경 앞에 놓는다. 상팔 포켈에서 반지를 끄낸다.)

반장부인-네가 색시 손가락에 끼워 줘야지. (상팔 손을 내어 밀고 혜경의 손을 더듬는다. 혜경 징그러운 벌레라도 피하듯이 손을 감춘다.)

재수-손을 내 주지 않고 뭘 해! 자넨 사내로서 뭘 주저하고 있나? 손을 잡아 다녀서라도 끼워줘야지.

상팔-자 손을 내 놓으세요.

(혜경 반지를 빼앗는 동시에 벌떡 일어서 상팔의 얼굴을 향하여 반지를 힘껏 내 던지고 마당으로 뛰어 내려 대문 밖으로 달려 나간다. 대문 밖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나므로 담뒤 우물쪽으로 사라진다. 모든 동작이 순식간에 행해젔다. 청에서 사람들이 당황하여 서두는 바람에 그림틀이 밑으로 떨어지다가 윗못에 걸린 끈 때문에 떨어져 내려오지는 않고 중간에서 덜렁거리고 있다.)

재수-저 저년 잡아라! (대문 밖에 나타났던 일꾼 갑과 을이 급히 우물쪽으로 달려간다. 동식과 상팔은 마당에 뛰어 내려 뒷곁으로 달리고 반장내외는 "이게 웬 일이냐?"하고 청에서 좌왕 우왕하고 있다.)

김씨-얘야! 혜경아! 아가! (뒷곁으로 달려 나간다.)

재수-저년이 미쳤나? 도망 가면 어디 까지 가겠다구! 어디 보자 이년! 애비 망신을 시켜도 분수가 있지! (뒷곁으로 간다.)

동욱-(방에서 뛰어 나와 재수를 가로막고) 못 갑니다.

재수-이놈아 비껴라! (동욱의 뺨을 친다.)

(담 넘에서 "사람 빠졌다! 우물에 사람 빠졌다!"하고 외치는 소리가 난다.)

재수-뭣이 (급히 달려 나간다. 반장내외도 허둥 지둥 달려 나간다. 동욱 뛰어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선다. 담 넘에서 사람들의 제 각기 외치는 소리.)

동욱-(되돌아 청 앞으로 걸어와 혜경의 그림을 쳐다 보고 목 메인 소리로) 혜경아! 너를 일찌기 내 보내지 않은 우직하고도 우유부단한 이 오빠를 용서 해다오. 혜경아! 오빠에게 한 마디 작별말도 없이 홀연히 가버렸구나. 너는 패배한 것이 아니다. 너는 승리를 했다. 너는 이제야 살길을 찾았구나. 강백이도 너의… 너의 투쟁을… 거룩한 죽음을 찬양하겠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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