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철길 1만리 - 티베트 넘어 히말라야로 (2)

고산지대의 유실을 막기 위해 돌로 보호시설을 해 놓은 너머에 야크들이 풀을 뜯고 있다.

끝없는 녹색 평원을 달려 란저우(蘭州)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쯤이었다. 그 사이 풍경은 또 바뀌었다. 녹색이 드물어졌고 황토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대한 황하 상류가 보였다. 우리가 종단하려는 티베트 고원을 에두른 탕구라 산맥에서 발원한 황하는 시작부터 황토빛 흐름이었다.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도 인종이 많이 바뀌었다. 붉은 가사를 입은 티베트 승려와 머리를 땋은 티베트인들이 많아졌다. 한 바퀴 돌리면 불경을 한번 읽는 것과 같다는 '마니차'를 돌리는 할머니. 티베트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염호 주변을 지나는 기차안에서 바라본 설산의 모습이 장관이다.

란저우에서 시닝까지는 불과 3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기차가 지나온 동안 고도가 높아져 시닝은 해발 2천미터를 넘어서고 있다. 이곳이 예전에 티베트의 관문 역할을 했던 곳이다. 지금은 행정구역 개편으로 청해성에 속하지만 티베트 불교에서 그 위치가 대단한 총카파가 이 곳에서 태어났다. 이제부터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므로 시닝을 실제적으로 티베트 고원의 출발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시간은 오후 7시를 가리키고 있지만 해가 지려면 아직 많이 남은 듯 햇볕이 쨍쨍했다. 경도 상으로 볼 때 북경과는 대략 두 시간 이상 차이가 나야 하지만 북경을 표준시로 하여 전국에 적용시켰기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이며 아마 북경은 밤일 것이다.

기차에서 만난 티베탄들은 저마다 꿈을 안고 목적지를 향하고 있다.

마침내 거얼무 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6시10분이었다. 침대 칸에서 2박 동안을 하는 동안 친해진 승무원의 설명에 의하면 여기서 고원 기관차로 바뀐다고 알려준다. 카메라를 들고 기차 앞으로 달렸다. 지금까지 우리를 끌고 대륙을 횡단한 기관차가 분리되고 하얀 색의 고소 기관차 3량으로 바뀐다. 희박한 산소 속을 달리게 설계된 기관차는 미국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했다. 그 같은 사실을 증명하듯 기관실엔 중국인과 함께 엔지니어인 듯한 백인이 타고 있었다. 중국 대륙 3천여 킬로미터를 끌고 온 저소 기관차는 이 곳에서 교대하는 것으로 임무를 마쳤다. 야구에서 9회 말에 나타난 구원투수처럼 말이다. 나머지 구절양장 힘겨운 1천142㎞를 끌고 갈 기관차였다.

지금부터 진정한 하늘길(天路)을 가게 될 것이다. 후진타오 말대로 '칭짱철도는 중국 철도사에 있어 위대한 업적일 뿐 아니라 세계 철도사의 기적'을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기차로 급격하게 고도를 높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강원도 정선선의 구절리역 스위치 백이 떠올랐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후진하며 한 계단씩 오르는, 그런 오름을 계속 반복하며 티베트 고원을 오르는 건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3량의 고소 기관차로 바꿔다는데 약 20분 정도 걸렸다. 기차는 직선으로 티베트 고원을 향해 출발했다.

기차가 출발하자마자 산소를 공급한다고 중국어와 티베트어 그리고 영어로 된 안내 방송이 나왔다. 에어컨이 위치한 곳에서 슈- 소리와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산소가 나오기 시작했다. 의자 밑에도 노즐 구멍이 있어 그곳에서도 산소가 나왔다. 이같은 산소 공급에도 고소증을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승무원은 고무튜브로 된 산소 호흡기를 나누어 주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처럼 의자 아래 혹은 곁에 있는 산소구멍에 그 튜브를 꼽고 양 콧구멍에 끼우도록 되어 있다.

열차에 동승한 복무원인 왕전화(26)에게 조심스레 물어 보았다.

"혹시 야크가 뛰어든다든가 고소증에 사람이 상한 일은 없는가?"

"동물과 충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것들이 철로에 못 들어오게 팬스를 쳐 놓았기 때문이다. 또한 고소증으로 사람이 죽은 일은 없다. 다만, 피를 토하는 사람은 몇 명 있었을 뿐이다."라는 설명을 들었다.

새벽에 사람들이 설치는 바람에 잠에서 깬 나는 베이스캠프인 식당칸으로 갔다. 아직 창 밖은 어두워 사물을 분간 할 수는 없었으나 세계의 지붕을 지나가는 풍경을 놓칠 수는 없었다.

같은 침대칸에 있던 중국 여성인 유안안(45)씨가 아침을 먹으러 우리 곁으로 왔다.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라싸로 출장을 가고 있는 중인 그녀는 철도과학연구원 칭짱철도 시공 환경보호 관리원이었다.

"중국은 칭짱철도 건설에 따른 환경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요. 생태계의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연 보호구역을 많이 지정하였고 인공 구조물을 최소화했지요. 동물 보호를 위해 철길 양쪽에 방책망도 만들었습니다."

"효과를 거두었나요?"

"그렇습니다. 세계 최고 높이에 건설되는 철도이기 때문에 이같이 비슷한 사례가 없어 고생을 많이 했었죠. 생태계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던 건 사실입니다. 정부는 칭짱철도 주변의 환경보호를 위해서 21억 위안을 투자했어요. 이는 전체 공사비의 6.5%로 정말 큰 돈을 들인 셈입니다. 열차에서 사용한 물은 모두 정화처리 후 방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럴 것이다. 그만큼 중국 당국도 원시의 이 고원을 보호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만이고 큰 오산일 것이다. 자연의 적은 인간뿐이었으니까. 만년설 풍부한 물이 녹아 흐르는 티베트를 관통하는 얄룽창포라는 강이 있다. 중국은 이 강에 눈을 돌렸다. 그 물을 건천(乾川)이 되어 가는 황하(黃河)로 물길을 돌린다는 장수북조(藏水北調) 공정이 그것이다. 칭짱철도에 이어 또다시 엄청난 규모의 자연 개조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전국 인민대표대회와 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도 이 방안이 공식 의제로 채택되기도 했다.

'시짱(西藏)의 물이 중국을 구한다'는 책은 후진타오나 원자바오 총리가 당국자들에게 필독서로 권장할 정도라는 것이다. 얄룽창포 강은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히말라야 산맥을 감싸고 돈 후 방글라데시를 거쳐 갠지스 강과 합쳐 인도양으로 흘러나가는 큰 강이다. 방글라데시에선 브라마푸트라 강으로 불리기도 한다. 만약 이 공사가 시작된다면 유사 이래 최고의 토목공사가 될 것이다. 우리가 탄 칭짱철도 역시 그 공사에 지대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일종의 시너지 효과인 셈이다.

기후 온난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는 과학 혹은 문명의 이름으로 행하여진 결과물이다. 인간의 자연 파괴에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연을 무시한 결과는 언제나 치명적 재해로 돌아온다는 역사의 교훈에서 막연하게나마 그 두려움을 느낄 뿐이다. 중국은 무섭게 변하고 있다. 예전의 만만디가 아닌 속도전을 감행하고 있다. 이젠 어느 누구도 중국을 다시 잠들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런 우려를 하는 나에게 누군가가 이렇게 외쳤다. "중국이 미쳤어!"라고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적으로 고도는 높아 갔고 날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다. 거얼무역에서 라싸역까지 가는 기차는 낮 시간에만 운행하도록 되어 있다고 했다. 아마 지반이 불안정하기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이 같이 운행하도록 조치를 한 모양이었다. 그러므로 남은 여정 14시간은 낮 시간이기에 질리도록 티베트 고원을 볼 수 있었다.

드디어 고산지대에서 산다는 동물인 야크가 보이기 시작했다. 끝 간데 없는 구릉과 우기철이 끝나가므로 파릇하게 살아난 초원이 펼쳐졌다. 가뭇하게 보이는 쿤룬산맥의 만년설과 호수, 파릇한 초원과 투명한 하늘의 대비는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기차는 쿤룬산맥의 옆구리를 감거나 뚫린 터널을 지나며 파노라마 영상을 활동사진처럼 보여주며 고원지대를 내달렸다. 주인이 관리하는 것인지 아니면 야생인지 모를 말 무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는 장면도 보였다.

저 말을 길들여 타기 시작한 티베트인들은 토번이라는 강력한 제국을 건설했다. 그 말발굽은 중국 당나라의 수도 장안까지 휩쓸었다. 오랑캐라고 멸시하던 당나라는 문성공주를 송첸캄포 왕에게 시집 보내 화친을 도모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문헌으로 전해온다. 수목 한계선을 이미 넘어선 까닭에 창 밖으론 드넓은 초원과 구릉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불모의 땅을 걷고 수레를 끌고 어느 세월에 전쟁하러 갈 수 있을까. 속전속결의 비결은 말에 있었다. 저 고원에 말을 타고 달렸던 토번의 야성과 기개는 어디로 가고 중국에 편입 되었을까.

그토록 강성했던 토번은 몽골이 세운 원나라의 침입을 받았다. 조공을 바치는 속국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러나 원나라 황제는 티베트인의 불교에 깊이 감화된다. 그 이유로 원나라는 티베트 불교를 국교로 선포했다. 한국도 고려 공민왕 때 원나라의 영향으로 티베트 불교가 잠시나마 국교가 된 적이 있고,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원나라는 티베트의 정복자에서 보호자 입장으로 바뀌었고 티베트의 통치자에게 바다와 같은 지혜의 뜻인 '달라이라마'라는 호칭을 봉헌하고 국사로 모셨다. 중국의 표현을 빌리자면 말 그대로 허허실실(虛虛實實)이다.

기차는 아득한 옛날인 1천300여년 전, 송첸캄포에게 시집가던 문성공주가 3년에 걸쳐 울며 걷던 길을 단 48시간 만에 종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 드넓은 평원에 수직으로 서 있는 건 송전탑과 산뿐이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은 어안렌즈에 투영된 것처럼 모두 둥글었다. 역사를 반추하는 사이에도 기차는 기세 좋게 무인의 고원을 내 달린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사이 멀리 무지개가 뜬다. 쌍무지개다. 저 무지개 끝에 가면 제임스 힐튼이 쓴 소설 속 '샹글리라'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발 4천500여 미터의 티베트 고원을 에워싼 만년설로 덮인 산을 넘지 못한 낮은 구름이 드리워 있다.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라는 말이 있다.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구다. 나라는 망하고 국민은 흩어졌으나 오직 산과 강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말이다. 그 말은 맞다. 토번은 사라졌으나 창 밖의 초원과 하얀 산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비가 눈으로 바뀌더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8월에 눈이라니 묘한 기분이 든다. 8월의 대한민국은 끈적거리는 더위가 한창일 것이다. 간간이 유목민들의 파오라는 천막이 보였다. 그곳엔 어김없이 불경이 적힌 오색 룽다가 펄럭였다. 룽다는 티베트에서 기도 깃발을 말하는데 영어로는 윈드 호스(Wind Horse) 즉 '바람의 말'이란 뜻이다. 불심 돈독한 그들의 염원을 서방정토에 있는 부처님께 전해 달라는 깃발이다. 룽다에는 정말 날개 달린 천마도가 그려져 있다.

기차는 해발 4천594 미터의 '추나호'를 끼고 달리고 있다. 이 거대한 땅이 아득한 예전에 바다였음을 확실하게 증명하듯 이 호수 역시 염호(鹽湖)였다. 얼마나 큰지 그 호수 일부분을 기차로 달리는데 무려 20여 분이 걸렸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이 구간은 속도를 내지 않았다.

창밖으로 '칭짱공로'가 보인다. 2차선 포장도로다. 이 도로는 거얼무에서 부터 철길과 함께 했다. 아니 함께 한 것이 아니라 철도가 도로를 따라 건설된 것이다. 험악한 쿤룬 산맥을 넘는 이 도로 덕분으로 철도 공사에 필요한 기자재가 공급될 수 있었다. 가끔 보이는 트럭엔 화물을 가득 실은 채 거북이처럼 매우 느리게 가고 있다. 희박한 산소 때문일 것이다. 1950년 티베트 침공에 성공한 중국은 칭하이성에서 라싸까지 운송하기 위해 수만 마리의 낙타를 동원했다. 1킬로미터 전진하는데 낙타 12마리가 죽어야 할 정도로 험난했었다고 한다. 전설 같았던 그 말이 이젠 말 그대로 옛 이야기가 된 것이다.

-계속

글/사진 = 윤석홍(시인·여행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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