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철길 1만리- 티베트 넘어 히말라야로(3)

티베트 주도 라사를 내려다보고 있는 언덕 위에 세워진 포탈라궁. 정치적 권한을 행사하는 백색궁과 종교적 신의 권한을 누리는 적색궁이 퍼즐을 맞추듯 건축된 신앙의 성소다.

조금 숨은 가빠했지만 고소증을 느끼지는 못했다. 객석의 많은 사람들이 산소 튜브를 코에 걸고 있었다. 거얼무역부터는 기차내 복무원이 승객들이 담배 피우는 것도 금지시켰다. 이 칭짱철도와 도시는 티베트 고원에 비하면 그야말로 점과 선밖에 안 된다. 아득하게 펼쳐진 저 구릉 뒤쪽에도 시선이 닿지 않는 남쪽 어딘가에도 티베트 유목민들은 존재할 것이다. 혹시 점과 선만 보고 티베트가 중국에 중화되었다고 단정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밥을 먹을 시간도 아닌데 식당 칸에 복무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두 여자가 장비를 꺼내 놓고 맥박과 혈압을 재며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한가한 틈을 이용해 나도 진료를 받았다.

드디어 해발 5천72m 탕그라역이 가까워지고 있다. 탕그라 산맥은 청해성과 시짱 자치구를 나누는 경계선이다. 최고봉 겔라다이동 봉은 6,62m로 중국에서 가장 긴 강인 양자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총 길이가 6천300㎞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의 시원이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쿤룬산에 이르면 그 아름다움에 눈물이 마를 줄 모르고, 탕구라산에 이르면 손으로 하늘을 잡을 수 있다는 옛 시의 감흥이 되살아난다. 둥근 구릉과 끝없는 초원은 진기한 풍광이었다.

티베트로 가는 열차 안에서 복무원들이 맥박과 혈압을 재고 있다.

진공 포장한 과자나 라면 봉지들이 기압의 차이로 공처럼 부풀어 올라있다. 그럼에도 심각한 고소증이 없는 걸 보면 그 사이 적응이 된 모양이다. 탕구라역에 정차하면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무산되었다. 무인 정거장으로 바로 통과했기 때문이다. 라사까지 여섯 번 쉰다고 해서 정차하는 역이 그 숫자만큼 있는 줄 알았다. 그건 아니었다. 무인 정거장도 있고 역무원이 부동자세로 기차를 배웅하는 유인 정거장도 스쳐 지나갔다. 이 기차가 개통된 것은 그저 시작일 뿐일 것이다. 티베트 고원에 무진장한 지하자원을 실어 나를 화물차와 소위 완행열차도 다녀야 할 때쯤이면 스쳐 지나가는 저런 역도 붐비게 될 것이다

기차는 나취에서 서서히 고도를 내리고 있다. 참고 자료로 산 중국 잡지에서 본 칭짱철도의 단면은 라사를 향해 줄 곳 내리막길이었다. 고도를 내리며 무수히 많은 양과 야크가 보이고, 티벳인들의 흙집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라사 강이 분명한 물줄기 양안의 곡저 평야에는 티벳인들의 주식인 짬바의 원료 '라이보리'가 추수를 앞두고 누렇게 익고 있었다. 문성공주와 금성공주가 3년이 넘게 걸어왔던, 종착지 라사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바람에 나부껴 휘날리고 있는 룽다와 타르쵸.

칭짱철도는 라사까지 개통되었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야둥(亞東)은 티베트 제 2의 도시인 시가체 행정구역에 있는 야둥(亞東)은 인도가 가깝다. 4천545m 나투라 고개만 넘으면 된다. 세계 최고봉 초모랑마(티베트어로 에베레스트를 말함) 역시 시가체 관할 구역이다. 인도와 중국은 고대로부터 교역의 고개 길인 국경 나투라를 국경분쟁 때문에 폐쇄했다. 인도가 티베트의 중국 귀속을 용인하는 협정에 서명을 한 후, 재개통을 위해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곳이다. 중국을 견제하려고 달라이 라마에게 우호적이었던 인도가 경제적 이익 때문에 돌아선 것이다. 달라이 라마의 입장이 묘해졌지만 황화 문명과 인더스 문명의 소통이 시작된 것이다. 라사와 티베트 제 2 도시인 시가체를 잇는 칭짱철도의 첫 번째 지선 건설작업은 이미 시작됐다고 했다. 시가체는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 가까운 곳이다. 티베트-네팔간 국경에서 4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중요한 곳이다. 철도가 시가체까지 이어지면 기차를 타고 초모랑마에 간다는 상상은 꿈이 아닐 것이다. 정말 이건 길의 진보가 아니라 혁명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기차가 연착되어 라사에 도착한 것은 예정시간을 한 시간 가까이 초과하고 있었다. 드디어 고단한, 그러나 다이내믹했던 기차 여정이 끝났다. 밤 9시30분 기차는 라사 역에 멈췄다.

티베트는 색의 나라다. 오색 룽다가 어디서나 나부낀다. 그래서 그 색은 각인이 된다. 모든 보이는 존재가 다 색이다. 하늘, 땅, 물, 바람, 불들이 티베트 산하 곳곳에 타르쵸에 무수히 꽂혀 있는 다섯 가지 색이 그것이다. 물을 상징하는 청색, 하늘을 상징하는 흰색, 불을 상징하는 붉은 색, 바람을 상징하는 녹색, 땅을 상징하는 노란색 깃발들이 달리는 말의 갈기 같다는 룽다가 소망을 담아 살아 있다.

사방이 사막과 산맥으로 둘러싸인 데다 평균 고도가 높은 불모지역이라 일찍부터 고유한 전통문화가 발달, 비교적 훼손당하지 않고 보전돼 왔다. 특히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고 20세기를 맞이한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이다. 그래서 티벳을 '영혼의 성소'라 주저 없이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타시딜레!"

"안녕하십니까"라는 뜻이다. 티베트를 알고 티베트 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해 제일 먼저 배워야 할 인사말이다. 이 말은 묘한 흡인력을 갖고 있어서 단번에 서로의 얼굴에 미소를 번지게 한다. 서로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3천700미터에 위치한 라사 시내 중심가는 꽤 번잡했다. 수많은 한족들이 물밀듯 티베트으로 몰려 들어와 하루가 다르게 현대적 빌딩과 마켓들과 식당들이 생겨나고 있다. 칭짱철도의 개통으로 경제발전이 가속화 되겠지만 환경은 훼손되고 전통문화에 큰 변화가 올 조짐이 느껴졌다. 티베트의 영혼을 무너뜨리기 위해 중국 정부는 칭짱철도로 쾌락의 문명을 매일매일 실어 나르는 것은 아닐까 싶다. 정치적인 속박과 구속은 불가항력이지만 문화만이라도 티벳인들이 지키면서 살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보았다. 불야성의 라사는 고즈넉한 도시는 아니었다. 은둔의 땅과는 거리가 먼 문명의 라싸 시내를 보았다. 번영을 누리는 중국의 한 도시에 불과한 느낌이었다. 불가사의한 건축물이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포탈라궁이 밤 조명에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티베트에 오면 만나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유순하고 단순하게 사는 티베트 사람들을 만나 봐야 하고, 둘째는 텅 비고 광활한 고원의 풍경들을 마음 깊이 받아들여야 하고, 셋째는 불가사의한 사원들을 순례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왔는지 전통 옷을 입고 한 번 돌릴 때마다 한 권의 경전을 다 읽은 셈이 된다는 '마니챠'(손에 들고 돌리면서 공덕을 비는 원통형 기구)를 돌리면서 사원을 순례하는 수많은 순례객을 만났다. 포탈라궁 전체 외곽을 마니챠를 돌리며 걷거나 오체투지로 도는 순례의 걸음을 '꼬라'라 한다.

티베트의 주도 라사를 내려다보고 있는 언덕 위에 세워진 포탈라궁은 정치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백색 궁과 종교적인 신의 권한을 누리는 적색궁이 퍼즐을 맞추듯 조합적 합일로 서 있다. 포탈라궁은 티베트어로 '깨끗한 땅', 즉 '성지'라는 또는 '관세음보살이 사는 곳'이다. 그들이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 믿는 달라이 라마의 거처를 뜻한다.

7세기 손챈캄포 시대부터 적어도 1천여년 동안 지어 비로소 완공한 했다고 한다. 13층 높이에 동서 길이만 해도 360m나 되고 방이 1천개 이상이다. 수천 ㎏의 금을 부어 축조한 스투파(탑)들과 극상으로 화려한 불상들, 고승들의 미라,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탱화들로 가득 찬 불가사의한 건물이다. 모든 종교적 문화 터전을 파괴했던 문화혁명 때에도 주은래(周恩來)가 자신의 군대를 파견해 포탈라 궁을 지킨 것만 봐도 그 존재 가치가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티베트에는 포탈라 궁뿐만 아니라 한꺼번에 만 명 이상의 승려가 수도 정진할 수 있는 사원이 많이 있다. 속설로 한 때 티베트에선 인구의 절반이 승려였다고 한다.

어찌 이런 불모의 땅에서 이렇게 화려한 불교문화를 폭발적으로 꽃 피울 수 있었단 말인가. 삶의 조건이 열악할수록 뛰어 넘으려는 인간의 의지가 강력해지는 것이다. 외부적 조건보다 더 강하고 오묘한 영혼의 세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면 어디에선가 또다른 충만한 세계에 대한 갈망과 염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계속

글/사진 = 윤석홍(시인·여행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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