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넘어 히말라야로 (7)

타실룬포 사원 전경.

타실룬포 사원으로 나섰다. 티베트 사원 중 가장 윤기가 흐르고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달라이 라마 다음의 서열인 판첸 라마를 모시는 타실룬포 사원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미륵불 좌상이 있다. 높이가 26m에 달하고, 275kg의 금이 들어갔다고 한다. 1447년 총카파의 제자이자 1대 달라이 라마인 게둔드롭(Gedun-drup)이 짓기 시작한 이래, 역대 판첸 라마들이 증축을 거듭해 온 곳이라 했다. 이 사원은 티베트 불교의 4대 종파 중 가장 세력이 큰 겔룩파의 총 본산이기도 했다.

초기에는 주류에서 소외 되었던 곳이었다. 5대 달라이 라마가 이곳 원장에게 '위대한 학자'라는 의미의 '판첸'(Panchen)이라는 칭호를 내리면서 지위가 격상 되었다. 이후 판첸 라마가 중국의 청 왕조에 의해 서부 티베트의 지도자로 임명되면서 달라이 라마와 갈등을 겪게 되고 분열하게 된다.

우정공로 5천㎞ 기념탑과 티베트 아이들.

1959년 라사 봉기 후 10대 판첸 라마가 마오쩌뚱에게 티베트인들의 종교적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이로 인해 티베트인들에게 인정을 받았으나 중국에서 투옥 당하고 돌연한 사망으로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다. 제 11대 판첸 라마로 암도에서 발견된 6세 소년은 중국 정부에 의해 억류가 된 상태이고, 세계 최연소 정치범으로 불리고 있다. 현재 타실룬포에 근거를 두고 베이징에서 학습중인 11대 판첸 라마, 기알첸 노르부는 중국 정부가 옹립한 사람이다.

이 거대한 사원은 금빛 지붕으로 덮여있다. 철학 대학과 탄트라 대학 건물을 지나 야트막한 비탈길을 올라가면 세계 최대 26미터의 금동불이 모셔진 전각이 나온다.'마이트레야 상'이라는 이름의 이 미륵좌상은 1914년 900명의 장인들이 4년에 걸쳐 만든 정교한 불상이다.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라지 않는 척박한 고원에서 거대한 목조불상을 만들고 사원을 지었으니 과연 민중들의 불교에 대한 염원이 대단하다.

켈상 사원의 대법당 1층에는 역대 라마들의 모습을 묘사한 거대한 탕카들이 걸려 있고, 2층에는 10여 개의 법당에 역대 판첸 라마의 무덤들을 볼 수 있다. 타실룬포는 티베트 역사의 흥망성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원 마당에는 승려들과 중국 군인들이 섞여서 배회하고 있다. 사원 문을 나서면 바로 시가지로 통하고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오니 중국 당국에서 치안에 신경을 쓰는 것일 것이다.

법당 입구에 그려진 만다라에 관심이 갔다. 만다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원'(圓)이라는 뜻으로 힌두교와 탄트라 불교에서 종교의례를 거행할 때나 명상할 때 사용하는 상징적인 그림이며 기본적으로 우주를 상징한다. 즉 신들이 거할 수 있는 신성한 장소이며, 우주의 힘이 응집되는 장소이다. 인간(소우주)은 정신적으로 만다라에 '들어가' 그 중심을 향해 '전진'하며 유추에 의해 흩어지고 다시 결합하는 우주 과정으로 인도된다고 한다.

타실룬포 사원은 뒤로 나지막한 민둥산이 에워싸고 있는데 예전엔 이 산 위에서 천장을 지냈다고 한다.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티베트인들의 천장 풍습은 어쩌면 그들 고유의 자연환경 때문에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티베트 고원은 대부분 암반층이어서 땅을 깊이 팔 수도 없다. 습도와 산소가 부족해 파 묻어도 잘 부패하지 않는다. 시신이 부패하지 않으면 다시 태어날 때 장애를 받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티베트 사람들이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장례 풍습은 조장(鳥葬) 또는 천장(天葬)이다. 천장은 독수리에게 먹여 뼛조각 하나 남지 않게 '하늘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살아서 공덕을 많이 쌓은 자일수록 독수리가 많이 모여들어 그만큼 빨리, 깨끗하게 시신이 '하늘로 간다'고 믿는다. 라사 주변에도 몇몇 천장 터가 있으나 외부인에게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티베트 불교 스승은 이 같이 말한다. '삶이란 육체에 잠시 머무는 여행과 같다. 삶은 단순하게 운영될수록 행복지수가 높아진다. 여행자에겐 짐이 무거울수록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를 포함해 대부분 사람들은 헛된 집착과 욕망 때문에 찰나의 인생을 쓸데없는 일로 낭비하는 것은 아닐까. 영혼을 중시하는 그들의 삶을, 보고 느낀 것이다. 법당 하늘 위에는 과거의 영화를 잊지 못한 독수리 한 마리가 유유히 날고 있다.

가끔씩 멀리 히말라야 하얀 봉우리가 조망된다. 우리는 이제 쿤룬 산맥과 탕구라 산맥을 뒤로하고 히말라야를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 북경부터 칭짱 공로를 거쳐 우정공로 도로 곁에서 우리를 따라 왔을 이정표가 눈에 들어 온다. '라체'가는 고개 길목에서 상하이에서 자본이 와서 세워졌는지 '상하이로부터 5,000km 지점'표지석을 보았다. 그 기념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득한 이곳도 티베트인들이 도로 확장과 포장 공사에 바쁘다.

라체(拉孜)에 도착했다. 이곳은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여행자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교통의 요지다. 성스러운 산 카일라스나 구게왕국 등 티베트에서도 오지인 '아리루트' 갈림길이고, 초모랑마(에베레스트) 가는 길 역시 여기서 갈라진다. 라체에 도착했을 때, 큰 배낭을 맨 미국 아가씨가 다가와 차에 태워 줄 것을 부탁한다. 라사에서 버스로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22살의 이 아가씨 이름은 케이트였고 집은 보스턴이라 했다. 그 모험심이 놀랍고 대단해 뉴 팅그리까지 함께 가기로 했다. 게이트는 티베트 여행을 마치고 네팔을 돌아 인도의 북부지역을 여행한다고 했다. 에베레스트 전망대 기념비가 있는 고개를 지나 시가르에 오니 3시쯤 되었다. 황야의 무법자라도 나올 것 같이 도시가 스산하기만하다. 따가운 햇살과 바람에 흙먼지가 날린다. 케이트를 뉴 팅그리에 내려 주며 남은 여정 잘 마무리 하라는 인사를 건네주고 헤어졌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초모랑마 베이스 캠프로 출발했다. 규모가 작은 검문소에서 통행증 확인을 마치고 조금 더 달리니 포장도로가 끝났다.

가쵸 라(5,216m) 고개는 우정공로에서 제일 높은 고개다. 고개 마루엔 초모랑마 자연보호구라는 아치가 서 있었고 룽다가 꽃잎 마냥 휘날리고 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1시간 정도 더 가자 왼쪽으로 초모랑마 갈림길이 나타났다. 그 길을 좀 더 가니 초모랑마 입산 입장을 확인하는 검문소가 나온다. 차량은 1대당 405위안이고, 사람은 1인당 25위안을 받는다. 끝없이 오를 것 같은 비포장 고개 길을 올라 팡라(Pang la, 5120m)에 도착했다. 이곳이 초모랑마 뷰 포인트다.

세계 최고봉 초모랑마를 위시하여 그레이트 히말라야 산맥을 감상하기 가장 좋은 지점이다. 이른 아침 날씨가 쾌청하기에 압도하듯 펼쳐진 장대한 히말라야산맥이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말끔하게 드러난 히말라야의 거봉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운이 좋은 편이다.

좌측의 칸첸충가와 삼각형 고스락이 특징인 '마칼루'(8,463m)와 초모랑마 곁의 '로체'(8,516m)와 우측으로 서 있는 초오유 봉. 이 산들은 소위 자이언트라 불리는 해발 8000m 이상이 모인 곳이고 그걸 그레이트 히말라야로 부른다.

구름이 낀다면 볼 수 없는 장엄한 풍경이었다. 황갈색 대지 위에 홀연히 솟은 히말라야 감상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시 출발하여 황량한 지그재그 커브 길을 내려가다 보니, 천연 바위 터널이 나오고 타쉬좀(Tashi Dzom)이라는 전형적인 티베트 마을이 나타났다. 이곳 역시 교통의 요지다. 여기서 좌회전하면 마칼루 베이스캠프로 갈 수 있고, 우회전하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향한다. 언제 허물어 졌는지 모를 형태만 남은 흙벽돌집이 시간의 무상함을 일깨운다. 베이스캠프까지는 롱북 빙하에서 발원한 강을 따라 49km를 더 가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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