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교수의 역사칼럼 연오랑 세오녀의 진실

일본 역사 책을 통해 세오녀의 신원(身元)을 캐보자. 우리나라 역사 책에 전혀 밝혀져 있지 않는 부분이, 일본 쪽 문헌에 보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연오랑이 '신라왕자'였음을 일러준 것도 '일본서기'였다.

일본의 또 하나의 고대사 책 '고사기(古事記)'에 의하면, 세오녀는 신라를 떠나며, '부모의 나라에 간다'고 했다 한다. 그리고는 일본으로 갔다. '부모의 나라'가 일본이라는 이야기다. 세오녀가 최초로 간 곳은 일본 큐슈(九州)의 이토지마(島島)반도로 확인된다.

큐슈 북단에 위치하는 이토지마반도 일대는, 당시 왜국이 차지하고 있던 노른자위 땅이었다. 한반도 남단의 김해와 직결되어 있던 항구 고장이다.

세오녀는 이 곳에 한동안 머물다, 큐슈 동부 해안의 보물섬 히메지마로 이동, 흑요석(黑曜石) 채취에 힘을 기울였다. 이토지마에 있는 근친(近親)과 상의한 후, 히메지마(島島)로 간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흑요석으로 화살촉을 만들어 신라에 있는 지고(知古)에게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이토지마에 있던 왜의 여왕 히미코(卑彌呼)는, 세오녀의 어머니였던 것은 아닐까.

◇…세오녀는 신라 '아구느마' 늪 가에서 태어났다

'고사기' 오진텐노(應神天皇·응신천황) 때의 기록에는, 세오녀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 옛날 신라 국왕의 아들 아메노히보코(天之日矛·연오랑)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 인물이 어느날 일본에 왔다. 그가 일본에 온 까닭은 다음과 같다.

신라에 아구느마(阿具奴摩)라는 늪이 있었다. 이 늪가에 한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해에 무지개가 비치더니 낮잠자는 그 여인의 생식기를 환히 비쳤다. 그러자 그 여인은 임신, 아카타마(赤玉·붉은 구슬)를 낳았다.

한 천한 신분의 사나이가 있어, 이 사정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어느날 그 여인에게 졸라 붉은 구슬 아카타마를 넘겨 받는다. 그 후, 사나이는 그 붉은 구슬을 허리에 차고 다녔는데, 어느날 산 속 골짜기에 있는 자신의 논으로 가게 되었다. 산에서 일하는 농사꾼에게 음식을 날라주려던 것이다. 음식을 소에 실어 골짜기로 들어서려하자, 아메노히보코 즉 연오랑과 부닥쳤다.

"산 속에서 소를 잡아 먹으려는 것이 아니냐."

연오랑이 다짜고짜 그 사나이를 잡아 감옥에 가두려 하자, 사나이가 변명했다. "산 속 골짜기에서 일하는 농사꾼에게 음식을 갖다주러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오랑은 들어주지 않고, 체포하려 들자, 사나이는 허리끈을 풀어 붉은 구슬을 꺼내어 임금의 아들 연오랑에게 내물로 바쳐 풀려났다.

연오랑이 그 붉은 구슬 아카타마를 집에 가지고 와서 마루바닥에 놓았더니, 구슬은 아름다운 소녀가 되었다. 연오랑은 좋아하고 그 소녀를 정처(正妻)로 삼았다. 젊은 아내는 갖가지 맛있는 산해진미(山海珍味)를 만들어 연오랑을 극진히 받들었으나, 그는 오만하여 아내를 욕했으므로, 아내는 "내 어버이가 계시는 나라로 간다"며 배를 타고 일본에 가버렸다.

― 연오랑 즉 아메노히보코는 아내가 달아났다는 얘기를 듣고 좇아 갔으나, 바다의 신이 막아서 갈 수가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다지마국(多遲摩國) 즉 단마(但馬)지방에서 그곳 지주(地主)의 딸과 결혼하여 자손을 낳고 살았다.

이 사화(史話)를 통해 파악되는 것은, 세오녀의 어머니는 ①신라의 아구느마라는 늪가에서 살고 있었으며, ②이 곳에서 한 사나이와 맺어져 아카타마(赤玉) 즉 세오녀를 낳았고, ③그 후 세오녀는 어버이의 나라 일본으로 갔다는 사실들이다.

이 기술은 참으로 놀라운 역사적 사실들을 함유(含有)하고 있다.

신라의 '아구느마'란 어디에 있는 늪이며, 그 고장은 무엇을 하던 곳인가. 또한 '아카타마'란 무엇을 뜻한 사람 이름인가. 이들 일본말 이름을 풀어, 역사의 진상을 캐보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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