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야마강 입구의 세토수문(瀨戶水門). 연오랑은 이 강 어귀를 막고 있던 바위를 끌로 깨트려 부수고 마루야마강 물길을 열었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어른들'은 극히 드물다.

 

그도 그럴 것이,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는, 초등학교 3학년 사회교과서 포항편에 실려 있기 때문이다.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는, 2009년도까지만 해도 전국 단위의 초등교 국어 교과서에 줄곧 실려 있었다. 그것이 어째서 이때에 갑자기 전국 단위 교과서에서 탈락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가 우리 역사책에 보이는 최초의 한일 관계 기록임을 생각할 때,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효고켄 이즈시진자(出石神社). 연오랑을 제사 지내고 있는 효고켄 으뜸의 신사.

 

연오랑은 신라 왕자였고, 매우 뛰어난 능력의 국가지도자였다.

 

제철(製鐵) 단야(鍛冶) 기술을 본격적으로 일본에 전수한 최초의 인물이었고, 벼농사와 대규모 농토건설 토목공사 및 토기, 고리짝 만들기 기술 전수에 이르기까지, 2세기의 일본에 미친 그의 능력과 정성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일본 서부 및 중부 일대에 몰려있는 연오랑 신사(神社)의 수효가 이것을 입증한다.

 

그의 아내 세오녀 또한 비상한 능력의 여주인공이었다. 그녀는 좋은 무쇠터를 찾아내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매우 가볍고 섬세한 비단을 짜내는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세오녀는 현재도 일본 지방 곳곳에서 제철·직조의 신으로 숭앙 받고 있다.

효고켄(兵庫縣) 요고(餘吳) 호수를 반쯤 메꾸워 만든 땅에서, 나머지 호수를 바라본 풍경. 연오랑이 대토목공사를 펼친 땅이다.

 

제철과 예술에 뛰어난 이 천재부부에 관한 글 연재를 마무리하며, '연오랑 세오녀 제철 예술관'을 포항 육거리에 지을 것을 제의코자 한다.

 

포항시청이 남구 대이동으로 이전하면서, 북구의 육거리 일대는 쇠퇴의 길을 더듬어 왔다. 구청사 일대의 놀터를 아름답고 생기있는 제철 예술관으로 재생시킬 수는 없을까.

 

이것이, 포항의 심장 육거리가, 연오랑 세오녀와 함께 재생할 수 있는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오랑이 제작한 색칠토기를 제사 지내고 있는 에레히코진자(鉛鍊日古神社). '에레(鉛鍊)란, 납을 녹여 만든 염료(染料·물감)를 가리키는 일본 옛말인 동시에 일본말이다. 연오랑은 토기를 만들어, 물감으로 색칠했다.
연오랑(일본이름 천일창) 또는 연오랑 가족의 무덤 터라고 여겨지고 있는 곳.
연오랑을 모시고 있는 효고켄 키타노진자(北野神社).
연오랑 즉 천일창(天日槍)이 잠시 살았다는 곳을 '성지(聖地)'라며 받들고 있다.
일본 효고켄(兵庫縣) 토요오카(豊岡) 분지에 흐르는 사철(砂鐵)의 강 마루야마가와(丸山川). 연오랑은, 이 강변에서 건져지는 사철로 제철을 했다.
연오랑은 강철처럼 단단한 토기를 구워 만들기도 했는데, 이 단단한 토기를 일본인들은 '수에키(須惠器)'라 불렀다. '무쇠처럼 단단한 토기'라는 뜻의 우리나라 옛말인 동시에 일본말이다. 이즈시에 있는 토기 발상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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