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으로 균형잡힌 탑신 장중한 아름다움 보여줘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탑신 장중한 아름다움 보여줘
  • 양승복·정형기기자
  • 승인 2013년 08월 06일 22시 13분
  • 지면게재일 2013년 08월 07일 수요일
  •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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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양 봉감모전오층석탑과 서석지
영양군 입암면 소재 국보 제187호 봉감모전 오층석탑

△국보 제 187호 봉감모전오층석탑

봉감모전오층석탑은 통일신라 초기의 모전석탑(模塼石塔 돌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탑)으로 영양군 입암면 산해 2리 서쪽 강가의 밭 가운데 세워져 있으며, 안정감 있고 위풍이 당당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전체 탑높이 약 9m, 초층 탑신이 폭 3.34m, 높이 2.04m로 이 마을을 '봉감(鳳甘)'이라고도 부르는 데서 '봉감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주변에 기와 조각과 청자 조각 따위가 흩어진 것으로 보아 절터였으리라고 짐작되며, 탑의 뒤편이 금당(金堂)자리였다 하므로 남향의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멀리 병풍처럼 두른 산세와 탑 옆으로 난길을 따라 가면 만나게 되는 태극처럼 휘어진 동산천 줄기가 만드는 풍광을 보면 왜 이런 산 깊은 곳에 이토록 공들여 탑을 쌓았는지를 짐작케 한다.

서석지

1930년대 유광교일이 현지답사해 조선총독부에 처음 보고되고 1943년 빈산신삼이 편간한 '조선의 석탑'에 소개돼 학계에 알려졌으며, 목탑, 전탑, 석탑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나는 목탑번안(木塔飜案)의 대표적인 작품임을 보여준 희귀한 자료이다.

탑에 대한 유래와 전설은 알려지지 않으나 탑이 있고 소지명으로 불러 내려온 것을 볼 때 폐사된 사명이 봉감사가 아닌가 보이며, 1977년 8월 22일 국보 제 187호로 지정됐다.

탑은 터를 고른 위에 흙과 돌을 혼용해 지표면을 정리하고 그 위에 제법 큰 자연석을 이용하여 기단부를 만들었으며, 기단은 단층기단으로 10여 개의 장대석을 결구해 쌓았는데 모두 어느 정도 다듬은 흔적을 보이고 있고 그 위에 다시 낮은 2단의 괴임을 쌓아서 탑신부를 바치고 있다.

봉감석탑 석함

전형적인 모전석탑으로, 1단의 기단은 편평한 자연석을 썼고, 한 변의 길이가 약 5m인 네모난 개석(蓋石) 위에 높이 41cm의 대석(臺石)이 있고 2단의 탑신(塔身) 받침이 구성됐으며ㅡ 그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렸다.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도 모두 벽돌 모양의 돌로 쌓았다. 1층 탑신에는 섬세하게 조각한 문주(門柱)와 미석(眉石)이 있는 감실(龕室)을 뒀다. 2층 이상의 탑신은 중간마다 돌을 내밀어 띠를 이룬 것이 특이하다. 옥개석은 아래위의 면 모두 계단 모양의 층을 이뤄으며, 처마의 너비는 위로 올라갈수록 좁다.

한변이 약 5m의 2층 기단위에 축조됐고, 1층 기단 폭이 3.34m 높이 2,30m며,수성암을 벽돌모양으로 가공한 석재를 사용한 5층 모전석탑으로 전체 높이 11.30m로 1층 탑신 남면 하단부에 화강암으로 섬세하게조각한 문주와 미석이 있는 불감을 조성해 부처를 모셨으나 현재 부처는 분실됐다고 한다.

그 가운데 모전 석재로 1층 몸돌 받침을 두단 쌓고 그 위에 5층을 올렸는데 상륜부가 없는 상태에서도 전체 높이는 11.30m며, 탑신은 벽돌모양으로 가공한 수성암을 쌓았는데 두툼하게 잘라 잘 다듬었지만 크기는 그다지 고르지 않은편이며 단단한 석질은 아니다. 1층 탑신 18단 높이 2.30m, 너비3.26m, 남쪽에 감실 높이 1.10m, 폭1.10m, 깊이 1,06m 화강암으로 부처를 모셨는 듯하며, 2층 이상은 층마다 중간 부분에 턱을 두었고 아래 위를 서로 다르게 쌓은 방식이 특별하다.

지붕은 1층의 받침 수가 8단 위로 올라 갈수록 한단씩 줄고 처마 너비도 점점 좁아 지는데 고른 체감률로 균형 잡혀 보이며, 또 각층이 아래쪽은 넓은 반면 위쪽은 좁아져서 몸체 자체에서도 체감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힌 정연하고도 장중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탑으로, 국보 제30호인 분황사 석탑과 함께 신라시대의 모전석탑 계열에 속하는 우수한 탑이다.

1990년 해체·복원시 주변에서 상륜부 목심주초석(木心柱礎石)과 탑 안에서도 사리구를 보관하던 석함 일부가 발견돼 과거 어느 땐가 해체 또는 붕괴돼 수리할 때 안에 있던 사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깨진 사리구 석함을 탐 안에 체우는 돌로 이용한것 같다.

초증 탑신은 높은 편이나 폭이 넓어서 안정감이 있으며, 각 층의 체감률은 크지만 전체적 균형은 잘 이뤄져 있지만 현재 5층까지만 남아 있다. 탑 전체의 높이가 11.3m이고 기단 폭은 3.34m이다.

△경북도 중요민속자료 제 108호 서석지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원과 함께 조선시대의 전통 3대 정원으로 손꼽히는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에 위치한 서석지(瑞石池).

경북도 중요민속자료 제 108호인 영양 서석지는로 성균관 진사를 지낸 석문(石門) 정영방(1577-1650)이 광해군 5년(1613년)에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는 정자와 연못이다.

자양산의 남쪽 완만한 기슭에 위치한 연못을 중심으로 경정(敬亭), 주일재(主一齎), 수직사 남문 등의 건물이 자리 잡고 있으며, 경정은 넒은 대청과 방 2개로 돼 있는 큰 정자며, 주일재는 '운루헌(雲樓軒)' 편액이 걸려 있다.

주일재 앞에는 연못쪽으로 돌출한 석단인 '사우단'을 만들고 소나무, 대나무, 매화, 국화를 심었으며, 연못은 사우단을 감싸는 U자 형의 모양을 하고 있다.

연못의 동북쪽 귀퉁이에는 산에서 물을 끌어 들이는 도랑을 만들었고, 반대편 서남쪽 귀퉁이에는 물이 흘러나가는 도랑을 만들었으며, 각양각색의 형태로 쏟아있는 연못 안의 크고 작은 돌을 '서석군'이라 하는데 이 연못의 이름은 서석군에서 유래했다.

돌 하나에 모두 이름이 있어 정영방 선생의 학문과 인생관은 물론, 은거 생활의 이상적 경지와 자연의 오묘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심취하는 심정을 잘 알수 있게 해준다.

서석(瑞石)이란 이름은 이 연못을 팔때 땅 속에서 상서로운 모양의 돌(瑞石)이 나왔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서쪽의 구릉 아래 흰 돌이 서 있는 곳에 연못을 팠기 때문에 서석지라 이름을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서석지는 가로 13.4m, 세로 11.2m 크기의 연못이며 연못에는 연꽃이 가득해 해마다 연당의 연꽃들이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7월 중순이 가장 아름답다.

서석지 앞에는 경정이라는 정자가 있고, 좌우로 주일재와 운서현을 두고 있으며, 주일재 앞쪽에 동서 4.5m, 남북 3m의 사각형 단을 연못 안쪽에 축조한 후 소나무, 대나무, 매화, 국화의 네 벗을 위해 쌓은 사우단이 있다.

연못의 사벽은 막축 석돌이며 북변에는 지중으로 돌출한 방형소석단을 쌓아 단을 이룩해서 사우단이라 이름 지었다.

단의 뒤편으로 물려서 3간 맞배집을 지어 주일재라 이름했는데 이 집은 온돌이 2간, 마루가 1간의 홑처마 맞배집으로 마루에는 운루헌 편액이 걸려 있으며, 사우단에는 송죽매국을 심었고, 서편 못가에는 4간 대청과 온돌방이 있는 경정을 두고 경정 뒤편에는 수직사 2동을 부설해서 연당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했으며, 사우단이 중심부에 돌출해 연못 전체의 모양은 ㄷ자형이 됐다.

서석군이 집중돼 있는 동편 지제는 영귀제라고 부르며, 서석들의 명호는 19종으로 서편 경정하의 열석들을 옥성대, 그 북쪽의 삼석이 상경석, 그 동하에 낙성석, 사우단 앞이 조천촉이고 동편수중에 집중돼 있는 서석들은 수륜석, 어상석, 관란석, 화예석, 상운석, 봉운석, 난가암, 통진교, 분수석, 와룡암, 탁영석, 기평석, 선유석, 쇄설강희절암 등의 이름을 지녔다.

이 서석군과 정사를 포함하는 경정잠영삼십이절과 주의산천에 의탁한 임천잡영십육절은 석문 정영방 선생이 이곳에서 추출해낸 자연과 사상과 은둔생활을 읊은 시며, 연당·서석지 주변 산천 경개의 정수를 굴절없이 노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루 위에는 정기, 중수기, 경정운 등 당시의 대명절의로 이름난 명사들의 시가 걸려 있고, 이 마을에는 선생들의 자손들이 세거하고 있으며 1979년 12월 28일 중요민속자료 108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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