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 24시] 김형기 바른미래당 대구시장 후보
[동행취재 24시] 김형기 바른미래당 대구시장 후보
  • 김현목 기자
  • 승인 2018년 06월 04일 23시 28분
  • 지면게재일 2018년 06월 05일 화요일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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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채 썩어 화석이 된 '일당 독주'에 종지부 찍겠다"
김형기 바른미래당 대구시장 후보가 3일 오전 대구 중구 달성공원 새벽시장을 찾아 유세에 나섰다. 김 후보가 한 상인에게 김치를 받아 먹고 있다. 윤관식기자 yks@kyongbuk.com
“뿌리가 썩은 것도 모자라 화석이 됐다. 화석을 깨는 것이 쉽겠는가”

6·13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후 첫 휴일인 3일 오전 7시 달성공원 앞 새벽시장. 휴일을 맞아 이른 시간부터 나들이 나온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이 몰리면서 더욱 복잡했다.

김형기 바른미래당 대구시장 후보도 일찌감치 도착해 유세 준비에 한창이었다. 김 후보는 물론 다른 시장 후보와 교육감 후보 3명, 구청장 후보 차량이 공원 앞에 진을 쳤다.

김 후보는 다른 후보가 차량 유세를 펼치는 동안 시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명함을 건네며 얼굴 알리기에 나섰다. 수고한다고 격려하는 목소리도 많았지만 마지 못해 받는 시민들도 있는 등 분위기가 그렇게 우호적이지는 못했다.

김 후보도 능수능란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는 “학창시절 반장 선거 말고는 처음”이라며 “대학 총장도 간선제였기 때문에 선거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말을 걸어오는 시민들에게 눈을 맞추고 묵묵히 그들의 말을 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고 정책을 묻기도 했다.

김 후보의 선거운동원들도 일사분란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운동원들이 한곳에 집결하는 데 시간이 걸렸으며 숫자도 많지 않았다. 김 후보가 유세 차량에 올라 연설을 할 때 다른 후보 차량이 막아서는 일도 일어났다. 후보와 시민들이 만날 때도 후보 옆에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시민들이 후보가 돋보지 않는다며 꽃이라도 달라고 말했을 정도.

또한 오전 9시 30분 이날 예정에 없던 공약발표회가 갑자기 오후 3시 잡혔다. 동선 일부도 생략됐다.

사실상 혼자 다니는 것에 대해 김 후보는 ‘패튼 장군식 유세’라고 웃어 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장군으로 부관 한 명만 대동한 채 차에 올라 전장을 누빈 일화가 알려져 있다. 4일부터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전거로 골목 곳곳을 누빌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김 후보는 이번 선거를 정책·SNS·최소선거비용·합법선거로 진행하겠다고 못 박았다. 등록된 공식 선거운동원이 25명으로 오히려 구청장 후보들 보다 적은 것도 그 이유다. 유세 준비와 과정이 다소 투박한 것도 이런 점이 반영됐다.

시장과 유세 차량 연설을 마친 김 후보는 공원 안으로 들어가서 선거 운동을 이어갔다. 동구에 산다는 한 시민은 “유승민 대표를 좋아하지만 쉽게 후보를 결정하기 힘들다”며 “열심히 하는 사람은 시민들이 알아보는 만큼 열심히 하시라”고 확답을 주지 않았다. 앞서 김 후보와 거리를 뒀던 시민들과 비슷한 심정으로 풀이된다.

김 후보는 이날 처음으로 ‘서울대 출신’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에 대해 다소 겸연쩍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만큼 뿌리 깊은 1당 독재 체제를 깨는 것과 정권의 힘을 가지고 있는 후보에 맞서 선거에 나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줬다.

김 후보는 “연말까지 출마 생각 없었으나 지역 기득권을 깨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마음먹었다”며 “의리도 줏대도 없는 사람들이 지금 대구를 장악하고 있는데 이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잘 나갔던 사람들이 지금은 홍준표 한국당 대표에 붙어 권력을 유지하는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김 후보의 아내인 김애경 씨(51)도 현 상황이 유지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반대했다. 다만 평생을 학자로 살아온 남편이 선거에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출마에 앞서 김 후보에게 극단적인 선택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금은 드러나진 않지만 묵묵히 시민들을 만나며 지지를 호소하는 등 가장 큰 지원군이다.

김 씨는 “지역 1당 독재 타파라는 대의명분은 인정하지만 가족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힘들었다”며 “바꿔야 한다면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고 정치권이 이중적이었다고 돌아봤다.

이 밖에도 김 후보는 자신의 안보관이 확립된 과정을 설명했다. 여권이 안보에 있어서는 불안하다는 표현을 에둘러서 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978년부터 1981년까지 3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안보관이 확립됐다는 것이다. 당시 전술과 안보이론 등을 공부했다.

김 후보는 민족주의에 입각, 국가에 헌신하는 장교들을 많이 봤다. 교관으로 근무하기 전에는 군부 독재에 반대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독재는 반대하지만 군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 정치군인들이 문제지 다른 군인들은 훌륭한 인물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조직도 자금도 밀리는 상황이지만 김 후보는 유세 내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희망을 이야기했다.

김 후보는 “민주당 바람이 불고 있지만 표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기호 2·3번 사이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나를 지지해도 주변 눈치가 보여 드러내놓고 이야길 못한다”고 밝혔다. 또 “무응답층이 많은데 이들이 투표장에 나오면 3번을 찍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 김형기 바른미래당 대구시장 후보
◇학력= △경주초 △신라중 △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경제학박사)
◇경력= △(전)지방분권 국민운동 초대 의장 △(전)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위원 △새로운 대구를 열자는 사람들 상임 대표 △(현)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기타= △1953년생 △고향 경주 △존경하는 인물 다산 정약용 △애창곡 선구자 △별명 전차(우직한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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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목 기자
김현목 기자 hmkim@kyongbuk.com

대구 구·군청, 교육청, 스포츠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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