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 재배부터 판로 개척까지…"백지장도 맞들면 낫죠"
<글 싣는 순서>
△‘귀농 1번지 경북’ 활력이 솟는다
△콩 심은 데 이젠 돈 난다
△들판이 꿈을 키우는 무대로
△좋은 먹거리 소비자가 먼저 안다
△농업의 첨단화 ‘스마트 팜’
△‘맞춤형 상품 개발’ 영농조합법인
△농촌 활력소 ‘귀농·귀촌 유치지원사업’
△청년정착과 관광 육성 방안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막상 농사 현장에 뛰어들다 보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해당 작목에 필요한 다양한 지식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수십 년간 농사를 지은 농부의 경우 경험을 통해 배운 다양한 지식으로 작물을 재배하지만 갓 농사를 시작한 젊은 농부는 경험이 부족해 시행착오를 겪는 경우가 대다수여서다.
이러한 어려운 점을 극복하기 위해 비슷한 농사를 짓고 있는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소비 판로까지 함께 고민하는 ‘영농조합법인’이 농가에서는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영농조합법인은 농업인 5인 이상을 조합원으로 해 설립한 협업적 농업 경영 조직으로 농업ㆍ농촌 및 식품 산업 기본법에 따라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농산물의 출하, 가공, 수출 등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옛 속담처럼 작물 재배 정보공유에서부터 홍보와 판로개척으로까지 연결되면서 ‘영농조합법인’은 지역 특산품의 브랜드 가치 증대와 소비자 요구 충족의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농촌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동결건조로 천연의 맛 살린
김성현 대표의 '영농조합법인 푸루른'
2013년 영농조합법인 푸루른을 설립한 김성현(39) 대표는 올해로 귀농 9년 차다. 귀농 전 직장인이었던 그는 회사의 사정과 부모님의 병환으로 귀농을 결심했지만 사실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귀농을 꿈꾸며 농산물 쇼핑몰 운영 등의 일부터 시작해 온 터라 자신 있게 귀농했다. 하지만 개인 사업자로 시작해 1차로 생산된 농산물 만을 수확해 판매한다는 것이 큰 이윤을 남기지 못하면서 법인체를 구성해 가공품을 만들어 판매하기로 했다.
영농조합법인 푸루른은 과일 칩과 과일 분말, 과일주스를 가공해 판매하고 있다. 처음 과즙을 생산하려고 했지만 시장이 포화상태임을 알고 눈을 돌려 선진지 사례로 일본 아오모리 견학을 갔을 때 그곳에서 동결건조를 알게 됐다.
2015년 처음으로 동결 건조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국내에서는 동결건조 제품이 전혀 없는 상태라 시작만 하면 대박이 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가격에서 판로가 없어 어려움을 겪자 이후 재방문한 일본 시장에서 풋사과를 상품화하는 것을 보고 동결 건조해 분말로 출시한 결과 기업과 농민 모두에게 일정 부분 기여하게 됐다. 풋사과는 출시 즉시 다이어트 식품으로 소개돼 2016~2018년까지 효자 상품이 됐고 2019년에는 새싹보리로 동결건조한 분말이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김성현 대표는 “영농조합법인 설립 당시에는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이후 수익이 나기 시작하면서 조합원들의 협동심이 더욱 굳어졌다”며 “혼자 사업을 시작해서 추진하는 것보다 조합원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면서 함께 고민하다 보니 수익이 5배 이상은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젊은 귀농인들이 초기 지원으로 2~3년 견디다가 원금 상환이 돌아오면 힘들어 떠나는 경우가 많다”며 “농사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함께 서로가 상생할 수 있는 관계로 농사가 아닌 농업의 시대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농조합법인 푸루른은 현재 연간 8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상품을 개발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이정원 대표의 '쉼표 영농조합법인'
2015년 설립한 쉼표영농조합법인의 이정원(36) 대표는 ‘미녀 농부’로 도 잘 알려졌다. 대학 시절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며 끼니도 챙기지 못할 정도의 빡빡한 하루 일정을 소화해내면서 급격히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진정한 꿈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던 차에 귀농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부모님 역시 농사일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사는 단독주택의 텃밭에서 재배한 가지와 방울토마토를 지인들에게 나눠주며 상품성과 맛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쉼표영농조합법인의 주 작물과 품목은 쌀과 깨, 배 등의 곡물생산과 함께 체험과 가공을 하는 업체로 대표브랜드인 ‘미녀 농부’로 더 잘 알려졌다. 어르신 3명과 청년 4명으로 구성된 쉼표영농조합법인은 현재 3000평 규모의 농사를 짓고 있으며 농산물이나 가공품은 개인판매로, 그 외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연간 3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특히 다품종 소량생산을 통해 소포장으로 소비자 직거래를 하고 있으며 현대인의 생활환경에 맞춘 맞춤형 농산물을 기획해 방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가공품을 개발하고 있다.
청년협동조합 창업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고 사회적 기업자 페스티벌에서 우수 팀에 선발되기도 한 이 대표는 ‘코로나 이후의 미래 설계’라는 부제를 담은 ‘파밍테라피’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이 대표의 바쁜 일상과 일과 중 에피소드가 소개돼 있다.
귀농 6년 차인 이정원 대표는 “지역 청년 농부들이 모여 회의할 장소가 없어 카페 ‘골드스푼’을 열게 됐다”며 “저녁 시간에는 지역 청년 농부들과 우리 농산물에 대해 회의도 하고 서로가 멘토, 멘티가 되는 상담소로도 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에 더 많은 후배 청년 농업인들이 보다 쉽게 농업에 접근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법인의 상호처럼 쉼표를 통해 잠시 쉬어가면서 재충전해 더 멀리 발돋움하기를 바란다”고 청년 농부들을 응원했다.
넓은 들판, 꿈 키우는 무대로 바꾼
오세곤 대표의 '햇빛촌 영농조합법인'
16년째 벼농사를 짓고 있는 오세곤(38) 대표는 직장에 다니면서 공무원인 부친의 농사를 돕다가 점점 농사일이 점점 많아져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마을의 어르신들이 농기계를 잘 다루지 못하면 지역의 형님, 동생들과 함께 찾아가 도와드린 일이 지금의 ‘햇빛촌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한 계기가 됐다.
2016년 설립한 ‘햇빛촌 영농조합법인’은 주 작물인 벼를 비롯해 감자와 양파, 마늘, 당근 등을 재배하고 있으며 2019년 기준 1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양파와 당근은 생협으로 친환경으로 짓는 벼는 수확해 농협으로 나가고 있다.
청년농업인과 고령자가 함께 조합원으로 가입된 햇빛촌 영농조합법인은 고령자의 노하우를 전수해 농사를 짓고 한 사람이 농기계를 살 때 기곗값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지인들이 함께 돈을 모아 기계를 사서 서로 번갈아가면서 사용하고 있다. 또 농지를 가진 고령의 농업인은 농지를 팔지 않고도 소득을 보전해 주고 농지가 필요한 귀농인에게 그들의 농지를 재임대하는 다리 역할도 하고 있다. 주변 농가에 친환경 농사를 유도하면서 봄부터 겨울까지 꾸준하게 소득이 발생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으며 현재 11명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오세곤 대표는 “농기계 1대당 1억 원 정도의 가격이 들어가는데 매년 농사를 지어서 할부로 산 장비값에 투자하고 나면 남는 게 없기 때문에 장비값이 좀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농지는 임대하더라도 농기계는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에 농기계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며 “청년 귀농정책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준비없는 귀농은 힘들기 때문에 귀농해서 5년 동안은 별다른 소득이 없어도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준비된 다음에 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세곤 대표는 “현재 크기와 품질면에서 최상의 감자를 오리온에 납품하고 있지만 햇빛촌 영농조합법인의 고유한 브랜드를 만들어 출시하는 게 목표이자 꿈”이라며 “끊임없이 농업 관련 교육을 찾아서 듣고 국내외 견학도 다니며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콩 심은 데 돈 난다"
박정웅 대표의 샘물영농조합법인
샘물영농조합법인은 구미시 도개면에서 콩나물콩을 생산해 선별 보관 포장 판매하는 회사로 2018년 박정웅(43) 대표가 설립해 연 매출 6억 원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지역의 젊은 농업인 30명이 힘을 합해 운영하면서 CJ브래딩과 경상북도농업기술센터가 협력을 맺고 콩나물 콩 재배를 시범사업으로 성장한 회사다. 또 파종과 수확을 대행해 초기에는 콩나물콩 30㏊로 시작해 지난해 70㏊로 높이고 일반대두 30㏊, 잡곡류 30㏊를 생산해 선별 보관 포장 판매하고 있으며 100㏊ 중 30㏊를 샘물노업법인에서 소화하고 있다. 이 밖에도 계약재배와 작목반에서 재배한 것을 법인에서 출하하고 있다.
영농조합법인의 농작물은 대부분 AT(농산물유통공사)를 통해 정부 수매 원칙으로 납품하고 있지만 샘물영농조합법인은 저온 저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1년 내내 상시 납품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를 통해 농업인들이 더욱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특히 내년에는 2모작 작부 체계를 구상해 들녘사업의 일환인 감자와 콩, 등을 GAP(우수농산물품질인증제도)인증 재배해 선별과 포장, 납품체계를 구축해 조합원 소득향상으로도 연결할 계획을 하고 있다.
현재 샘물영농조합법인이 주력으로 하는 작물은 대두로 대두 30ha(된장콩), 소두 70ha(콩나물콩)를 생산하고 있다. 수익창출이나 이윤추구보다 먼저 고객의 요구에 맞춘 소포장 제품으로 신뢰도를 높였고 농업인과 더불어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 다양한 제품군을 출시해 고객의 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샘물영농조합법인은 현재 2명의 정규직 사원이 있고 일손이 부족할 때는 함께 일하는 일용직 6명 정도를 더 채용하고 있다.
박정웅 대표는 “농업 분야는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며 “회사의 규모와 조합원 유통을 늘리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북 농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청년 농부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