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축산 백운암 가는 길에
가을이 깊게 내려앉았다.
통도사를 지나 극락암에
다다랐다.
경봉 스님이 입적하실 때까지
거처하셨던 삼소굴은
여전히 소박한 모습
그대로였다.
세 사람이 웃는다는 삼소굴
유교 불교 도교의 근본은
한곳이라는 가르침이다.
붓다가 살던 인도의 산 지명을 딴
영축산은
떠나가는 가을에
취하게 하는 낙엽 내음이
가득했다.
처음 가보는 혼자의 길
호젓하기보다 설레임과
막막함이 함께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돌계단 길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번뇌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집중하라는 죽비였다.
돌계단 위에 내려앉은
낙엽과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내가 하나가 되어갈 때쯤
백운암이 보였다.
통도사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백운암
만공스님이 깨달음을 얻었던
수행도량답게 영축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온다.
계절은 끊임없이 오고 또 가지만
나는 늘 그대로임을 알아챈다.
지켜보는 자는 변하지 않는다.
그저 흐름을 관망할 따름이다.
사바세계를 무대로 한바탕
연극을 멋지게 해보라는
경봉 스님의 일갈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