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너무 믿지 마라. 사람들은 대개 진리는 자기 측에 있다고 믿는다. 자기와 다른 의견은 틀리다 여긴다. 이는 안갯속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 앞서가는 사람, 뒤따라오는 사람, 모두 안개에 싸여 있다. 오직 자기만이 보인다. 사실은 자기 자신도 안개에 싸여 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나보다 한 수 위의 삶이 있는 것을.

북송시대, 천하에 겨룰 사람이 없을 정도의 명궁이었다는 진요자. 어느 날, 사람들을 모아 놓고 멋진 활 시범을 보였다. 화살 열 개 가운데 열 개를 다 명중시켰다. 보는 사람마다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마침 지나가던 기름장수 노인이 빙긋이 웃었다. 진요자가 노인에게 물었다. “나의 활 솜씨에 왜 놀라지 않소?” 노인 “놀랍소. 활이 당신 손에 아주 익숙한 것 같소” 기분 상한 진요자가 “노인장, 내 활쏘기 기예가 만만하게 보이오?”하고 물으니 노인이 웃으며, “오해하지 마시오. 기름장수를 오래 한 경험에 비추어 한 말이요” 노인은 호리병처럼 생긴 기름병을 세워서 병 주둥이 위에 네모난 구멍의 엽전을 얹어 놓고, 그 구멍으로 국자로 기름을 떠 넣었다.

엽전에는 기름을 한 방울도 묻히지 않고 병 속에 기름을 가득 채웠다. “이게, 오래도록 같은 일만 하다 보니, 그저 내 손에 익었을 뿐이라오” 천하의 명궁 진요자 못지않은 기름장수 노인의 솜씨. 한 수 위의 경지는 아닌가.

송나라 때의 ‘독성잡지’에 당나라 화가 대숭(戴嵩)의 투우도(鬪牛도) 이야기가 있다. 대숭(戴嵩)은 유명한 화가로 특히 싸우는 소 ‘투우도’를 잘 그렸으며,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높이 평가받았다.

송대(宋代)의 관료 마지절(馬知節)이 이 ‘투우도’를 소장하고 있었는데, 애지중지 비단보에 싸서 보관하고 가끔 거풍(擧風) 시키면서 감상하였다. 어느 날 소작농의 농부가 먼발치에서 그림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화가 난 마지절이 농부를 불러 나무랐다. “이 사람아, 이 그림은 당나라 때 화가 대숭이 그린 ‘투우도’다. 감히 이 귀한 그림을 보고 웃다니?”

농부는 “저같이 무식한 농사꾼이 뭘 알겠습니까? 하지만 소를 많이 키워본 나로서는 이상해서 그만 웃음이 나왔습니다. 소들은 싸울 때 뿔로 상대편을 받으며, 꼬리는 바싹 당겨 뒷 사타구니 사이에 끼워 넣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소는 싸우면서 꼬리가 하늘로 치켜 올라가 있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 말을 듣고 마지절은 얼굴을 붉혔다. 소싸움의 기본자세를 화가도 모르고, 그림 소장자도 모르고, 농부가 안 것이다. 농부가 오히려 한 수 위?

황희 정승의 일화. 황희가 시골 길을 가던 중 누렁소와 검정 소를 부려 논을 가는 농부를 만났다. 한참 구경하다 두 마리 중 어느 소가 일을 잘하는지 물으니, 늙은 농부는 일손을 놓고 일부러 황희가 있는 곳까지 와서 황희의 귀에 대고 가만히 검은 소라고 말하면서 누렁소가 들으면 안 된다고 했다. 황희 정승이 지나친 소의 마음을 농부가 염려하고 있었다. 농부가 한 수 위의 경지?

우리가 무언가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의 잘못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바르게 알고 있는 것인가. 남을 탄핵하기에 앞서 자신을 살피자. 배움은 멀리 있지 않다. 자신의 부족함을 살펴 겸손하자. 한 수 위의 삶이 있다. 병(甁)에 가득 찬물은 흔들어도 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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