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의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의원

1980년대 후반까지는 우리나라 전 들판이 청보리밭이었다. 6월 초 망종(芒種) 무렵에 보리를 베내고 모심기를 한다. 들판이 온통 청보리밭이었을 때 배는 고팠지만, 하늘에는 어김없이 노고지리(종달새)가 ‘노골노골지리지리’ 우짖었다. 푸른 하늘에 굴러가는 옥구슬, 평화의 노래다. 일에 지치고, 가난에 시달렸지만, 청록 보리밭 위의 파란 하늘. 종다리가 불러주는 천상의 노래. 참으로 맑은 아름다움이었다. 그 종다리가 지금은 없다.

밭고랑에서, 밭둑에서, 숲 가장자리에서 종다리 노래를 듣고 자라는 잡초 중에 ‘꼭두서니’가 있다. 줄기에 까끌까끌 가시가 있지만 연하고 부드럽다. 김매기가 수월하다. 다년생 덩굴 식물이다. 잎은 4개씩 돌려나지만, 하트모양, 또는 긴 달걀모양이며 끝이 날카롭고 뒷면 가장자리에 잔가시가 있다. 꼭두서니로 붉은 물을 들인다. 꼭두서니(천근·천根) 덩굴의 황적색 나는 수염뿌리는 예부터 약용으로 쓰이고 염료로 사용되었다. 잇꽃(홍화)과 더불어 붉은 천연염료이다.

벗들과 산행이랍시고 비탈길을 걷다가 꼭두서니를 발견하였다. 반가웠다. 노고지리 생각도 났다. 잔소리를 많이 하신다고 노고지리라는 별명을 붙여 드린 지리 선생님 생각도 났다. 큰 소리로 ‘꼭두서니다!’ 했는데 일행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아 서운했다.

꼭두서니. 이름에 ‘꼭두’가 있다. 유사한 말에 꼭두새벽의 ‘꼭두’도 있고, 높은 곳을 말하는 꼭대기의 ‘꼭두’도 있다. 인형극의 꼭두각시도 있다. 한국 민속 인형극 ‘박첨지 놀이’에서 박첨지의 아내 역인 인형, 나무로 깎고 탈을 씌워 놀게 하는 ‘젊은 색시 인형’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다가 ‘사람이 움직여 노는 물체’를 이르는 말이 되었다. 다른 말로는 목덜미를 잡고 논다고 하여 ‘덜미’라고도 한다.

‘꼭두각시’. 의미 확장으로 자신의 의지 없이 남에게 조종되는 존재 모두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형식상으로는 독립적이나 실질적으로는 다른 단체에 종속되어 그쪽 말을 따르는 단체나 정권을 ‘괴뢰’(傀儡)라 한다. 자기 주도적이 아닌, 남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모든 집단이나 세력을 ‘꼭두각시’, 또는 ‘괴뢰’라 부른다.

‘꼭두서니’. 쌍떡잎식물. 용담목 꼭두서니과의 여러해살이 덩굴 식물로 숲 가장자리에서 잘 자란다. 본래 곱도숑, 곡도숑, 곧도숑으로 불리다가 곡도손이, 꼭두서니로 바뀌었을 것으로 보기도 하고, 남사당패의 우두머리인 ‘꼭두쇠’의 복장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꽃상여의 장식용 나무 인형인 ‘꼭두’, 정수리나 꼭대기를 말하는 ‘꼭두’, 꼭두새벽처럼 맨 먼저를 나타내는 ‘꼭두’ 설도 있지만, 붉은색을 말하는 옛말 ‘꼭두색’에서 유래한 ‘꼭두’에다 덩굴이면서 서서 자란다고 ‘-서니’ 그래서 ‘꼭두서니’로 되었다는 설에 마음이 간다. 다른 이름으로는 ‘가삼자리’, ‘갈퀴잎’이 있다.

전설 한 토막. 옛날에 종을 잘 만드는, 큰 절의 범종을 도맡아 만드는 으뜸 대장장이가 있었는데, 쇠로는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기술을 지녔다. 그의 소원은 꽃으로 소리가 나는 종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꽃으로 소리 나는 종을 만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대장장이의 무덤에 특별히 눈에 띄는 풀꽃이 피었다. 가시가 촘촘한 줄기 끝에 종 모양의 아름답고 작은 꽃들이 피었다. 사람들은 그 꽃을 대장장이가 이루지 못한 ‘소원의 종’이라 했다.

꼭두서니의 꽃말은 ‘미태(美態·아름다운 자태)’다. 뿌리, 줄기, 잎 전체를 나물로 먹고, 약재로 쓰고, 천연 염색 염료로 쓴다. 분답지 않으면서 아주 유용한 식물이다. 이게 바로 꼭두서니의 미태(아름다운 자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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