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서 하는 말, 속임수는 남을 속이는 술수, 뻔뻔함은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태연한 것을 말한다. 거짓말이 들통나면 부끄럽다. 속임수가 들통나도 부끄럽다. 당연하다. 뻔뻔함은 들통이 나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얼굴 붉히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이 없다.

수치심 없는 인간이 뻔뻔한 인간, 잘못하고도 얼굴을 치켜드는 인간도 있다. 국회의원 중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도 당선된 사람이 있다. 검찰의 과잉수사 때문일 수도 있고, 판사의 오판일 수도 있다. 3심을 받아야 죄의 유무가 확정되지만, 지금은 죄가 있는 것으로 판결 났으니, 결백이 밝혀질 때까지 자숙해야 하지 않을까. ‘뻔뻔하다’를 넘어 당당한 모습에 당황스럽다.

공자와 제자가 길을 가던 중에 길가에서 변을 보는 사람을 발견하고 불러서 나무랐다. 그 사람은 부끄러워 얼굴을 감싸고 도망쳤다. 길을 계속 가다가 이번에는 길 한가운데서 변을 보는 사람을 만났다. 공자가 다른 길로 돌아가기에 제자들이 까닭을 물었더니, 양심이 없는 뻔뻔한 인간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천하의 공자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인간은 가르칠 방법이 없단다.

총선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한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것은 무슨 뜻이었을까,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국회의원이라도 시켜 가르쳐 보자는 의도였을까. 그런데 더 뻔뻔해지고 있다. 정말 뻔뻔한 인간은 가르칠 방법이 없나 보다. 뻔뻔함이 매력이라고 매달리는 팬이 많다니 정말 더 모를 일이다.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 있다. 죄를 많이 지어서가 아니다. 옳고 그름이나 양심의 가책과 관계없이 외모에 자신감이 없거나, 말솜씨가 부족하거나, 여러 면에서 좋은 조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주눅이 들어 부끄럼 타는 사람이 있다. 고개를 숙이거나 숨을 필요가 없다. 당당해야 한다. 얼굴을 붉히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사랑한다 말하고, 도움을 받았으면 고맙다고 말하고, 실수했으면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부끄러워 말고 당당하게 살 일이다. 정작 부끄러워 고개 숙여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뇌물을 받아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오히려 같은 편의 지지를 받는 사회, 아빠 찬스를 써서 혜택을 받아도 부끄러운지 모르고 큰소리치는 사회, 죄 있는 자의 뻔뻔함도 문제지만, 죄가 있건 말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무조건 괜찮다가 문제다. 이 또한 뻔뻔함이다. 불나비처럼 몰려드는 펜클럽. 이건 아니다 싶다. 뻔뻔함이 정치적 ‘좋아요’를 받고, 무례와 혐오를 부추기는 파렴치가 사회적 ‘하트’를 받아서 될 일인가.

완전거짓말은 아니지만, 속임수와 비슷한 뜻으로 사용하는 ‘꼼수’는 시시하고 치사한 수단이나 방법, ‘홀림수’는 상대방의 실수와 착각을 유도하기 위한 수, 조삼모사(朝三暮四)처럼 잔머리를 굴리는 수다. 전쟁과 같이 생사의 갈림길에 처했을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써먹던 편법이거나, 바둑에서 이기기 위해 사용한 수(手)다. 법적으로는 모르지만 얍삽하다.

뻔뻔한 사람 말고, 돋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아름다운 사람. 잘난척하지 않고도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 남의 소중한 것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사람.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사람.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남의 행복을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 넘쳐났으면 좋겠고, 시집가기 싫다는 노처녀의 말은 계속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