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가을이다. 가을걷이로 들판이 비워지고, 휑한 느낌이 든다. 바람이 싣고 오는 쓸쓸함으로 나를 길들이면 가까운 이와의 눈물겨운 이별도 견뎌 낼 수 있을 거라고 어느 시인이 말했지만, 눈물겨운 이별이 없는데도 어딘가 허전하다.

가을이 아니라도, 도시화와 기술의 발달, 개인주의가 현대인을 외롭게 만든다. 개인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강조하다가 인간관계의 단절을, 도시화는 좁은 공간에 살면서도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을, 인터넷과 스마트 폰의 발달이 직접적인 소통의 기회를 줄여 외로움을 심화시키고 있다.

‘외로움’과 ‘고독’이 사전적 의미로는 별 차이가 없다. 외로움(loneliness)의 사전적 정의는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을 뜻하고, ‘고독은 다른 사람들과 접촉, 관계, 연락이 없이 홀로된 상태’를 뜻한다. 두 단어가 모두 인간관계 부족, 사랑하는 이의 부재, 신중한 고민, 전염병, 정신 질환, 조난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는 외로움(loneliness)과 고독(孤獨, solitude)을 구분하고 있다. 외로움은 내가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없다. ‘거절당한 소외’, 소외되어 혼자 있는 힘겨운 심리를 말한다. 고독은 나 자신이 남과 어울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혼자 있고 싶다. 타인과는 ‘자발적인 자기격리’이고, ‘스스로 선택한 혼자됨’이다. 그래서 외로움은 참고 견디고, 고독은 즐긴다는 말을 한다.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은 외로움이고,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은 고독이다. 설리번(Sullivan)은 ‘관계로부터 격리된 부정적 혼자됨’을 외로움으로, ‘스스로 나다움을 찾는 긍정적 혼자됨’을 고독으로 구분했다.

외로움은 다른 사람들과의 정서적 연결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발생한다. 외로움은 일시적일 수 있다. 낯선 곳으로 이사했을 때, 새로 직장을 옮겼을 때, 특별한 사람이 그리울 때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기존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발적으로 혼자 있음이 자기 성찰, 창의성 증진, 스트레스 감소 등의 효과를 가져 온다. 자기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바로 이 고독의 시간이 생각을 집중하게 하고,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를 부여하게 만든다.

고립은 사회적 동물이 그 사회와의 관계, 즉 인간관계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다. 타인과의 물리적, 사회적 접촉이 거의 없는 상태다. 집단에 속해 있지 않고 외톨이로 소외되어 있다. 고립은 사회적 관계의 양과 질의 영역이고, 외로움은 주관적인 정서의 영역이다. 외로움은 일상에서 타인과의 교류도 활발하고,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외로움은 특정 계층만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언제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이다. 외로움이나 사회적 고립은 함께 어울리지 못한다. 오래가면 우울증, 불안 심리, 심혈관 질환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

세상에서 아주 힘든 것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마음을 얻으려면 꼬투리 잡는 버릇을 벼려야 한다. 꼬투리를 많이 잡히는 사람도 문제지만, 꼬투리를 많이 잡는 사람은 피곤한 사람이다. 외로움이나 고립을 자초한다. 고독은 즐기되, 남의 꼬투리 잡는 버릇은 버리자. 넉넉한 마음으로 사색하고, 삶의 가치를 창조해 가는 가을의 삶을 살자. 머리 위에 푸른 하늘이 집 한 채로 열려 있지 않으냐. 눈을 열고 가슴을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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