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퇴계 선생은 “선비는 뜻을 숭상한다. 옛날의 선비들은 절의(節義)를 숭상하여 세도(世道.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도리)를 닦고, 도덕을 숭상하여 인심을 맑게 하였다. 그러나 세도를 닦고 인심을 맑게 하던 자들이 끝내 사악한 자들을 감화시키지 못했으니, 도덕과 절의가 나라에 무익한 것인가?” ‘策問(책문)’에서 던진 질문이다. 퇴계는 선비의 기본적 책무가 상지(尙志-높은 뜻을 숭상함)에 있음을 단정하고, 상지의 구체적 모습을 절의와 도덕 숭상에 두었다.

맹자는 ‘진심장’에서 선비가 일삼는 것을 상지(尙志)라 하고, 상지가 인의(仁義)이며 선비가 걸어가고, 머물러야 할 길이라 했다. 보통 사람은 이익을 중시하고, 청렴한 사람은 명예를 중시하고, 현인은 뜻을 숭상하고, 성인(聖人)은 정신을 중시한다.

염치(廉恥)라는 말이 있다. 염치란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말한다. 청렴하여 지조를 지키고(廉操), 수치심을 아는 것(知恥), 흔히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잘못 했을 때 법적 처벌과는 다르게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잘못이 들통나지 않았더라도 양심의 가책은 느껴야 한다.

몰염치는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없음을 말한다. 도대체가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완전 몰염치다. 나쁜 짓을 하고도 잡히지 않으면 당당하게 나온다. 오히려 정의의 사도인 것처럼 행동한다. 교묘하게 법망을 피했으니 참 자랑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다. 참 희한한 일이다. 교통법규를 위반하여 적발된 운전기사가 오늘 재수 더럽게 없다고 말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치판의 작태에 인의와 염치를 찾을 길이 없다. 백수의 왕 사자가 모기와 벼룩을 제일 무서워한다. 떼를 지어 물고 빠는 악착을 이길 수 없다. 뒹굴고 나부댈 수밖에.

맹자는 의(義)의 단(端)이라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거론하여 인간 내면의 수치스러움을 말했다. 부끄러울 치(恥)라는 글자를 설명하면서, ‘사람에게 부끄러워함은 중대한 일(恥之於人大矣)’이라 선언하여 수치심이 인간의 삶에서 지닌 의미를 강조하였다. 주자(朱子)도 부끄러움을 말하면서 부끄러운 마음이 있다면 성현의 지위에 나아갈 수 있으나 부끄러운 마음을 잃어버리면 짐승의 세계로 돌아가 버리므로 아주 중대한 일이라 라 했다.

인간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반성하고 후회할 때 진보할 수 있지만, 잘못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후안무치(厚顔無恥)’니 ‘철면피’니 하는 말들이 있다. 얼굴이 두꺼워 잘못한 일에도 수치를 모르고, 얼굴에 철판을 깐 듯 부끄러운 표정조차 짓지 않음을 말한다. 인간이 본래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을 하고 나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면 얼굴이 붉어지고, 바로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부끄러움을 알고 반성하기에 짐승과 다르다. 짐승들이야 자각하는 양심도 없고, 양심이 없으니 부끄러운 마음, 즉 수치심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후회하고 반성할 줄 모르는 게 문제다. 부끄러움을 모르니 악인(惡人)으로 추락할 수밖에. 잘못이 있는데 저 높은 데서부터 줄줄이 엮인 지도자급 인사들이 반성은커녕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일심에서 형을 받고도 반성하거나 미안해하는 기색 없이 정의를 외친다. 저지른 잘못도 문제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더 문제다. 안 잡히면 되는 오징어 게임도 재밌지만, 절의와 염치의 세상이 참으로 그립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