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가 멀리 떠났다. 목성을 가장 밝게 볼 수 있다는 날이었다. 절망과 희망의 팽팽한 줄다리기에 지쳤을까. 홀로 순탄한 삶을 망치고 행복한 삶을 어그러뜨린 죄책감에 더는 버틸 힘을 잃었을까. 수없이 아득한 가능과 희망에 머뭇거리다 꺾여버린 생이었다. 침묵의 뒤편에서 흐르지 않고 고였던 외로움이 마침내 동파(凍破)된 죽음이었다.
사내는 행복보다 불행의 총량이 더 많았을까. 거듭된 사업 실패 후 열쇠 구멍도 보이지 않는 희망이라는 문 앞에서 왜 그토록 서성였을까. 혼자라도 외롭지 않고 가진 건 없어도 비난받지 않는 한 송이 들꽃처럼, 피면 피는 대로 지면 또 지는 대로 살다 갈 수는 없었을까.
짧은 햇살이 대문 앞에서 서성이다 사라지는 깊은 골목 단층집. 팔순의 노부부에겐 느지막이 얻은 딸 하나가 있었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선지 결혼하면서 발걸음을 끊다시피 했다. 간간이 딸만 손님처럼 왔다 야반도주하듯 갈 뿐, 사위와 손자를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외로움이 노부부의 마음에 굵은 금을 그어대자, 이웃들이 혀를 차던 그 무렵이었다. 노부부는 떠돌이 한 사내를 여분의 빈방에 들였다. 사람 냄새가 그리워서라 했다. 어디 사는 누군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방세 대신 자신들의 보호자 역할을 약속한 무언의 배려였다. 고립된 채 일용직으로 달방을 찾아 전전하는 사내의 순박한 눈빛과 사람됨에 허락한 결심이었다고 했다. 노부부는 진즉에 알았을까. 눈길을 녹이는 건 이름 모를 이들의 발자국이라는 것을. 그들에게도 스며드는 외로움을 견딜 누군가의 그런 발자국이 필요했으리라.
사내는 노부부의 깊은 배려에 보답하듯 소소한 곁 지기가 되어 주었다. 일이 없는 날엔 할아버지의 휠체어를 밀어 산책하기도, 할머니와의 먼 병원 동행도 기꺼워했다. 대문 밖을 빗질하던 나와 눈이 마주치면 그때마다 어색한 표정만 지을 뿐,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네는 법도 대화하는 법도 잊은 사람처럼 보였다. 사람에게 고통의 기억은 참 질긴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사내의 그 모습에서 추호도 의심하지 않을 사랑이 비쳐 든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내 눈에만 목격되는 그 환하게 빛나는 얼굴이 내 안에 스미도록 기다린 적도 있었다.
우리의 얼굴이 담아내고 있는 다양한 표정과 이미지는 어디까지일까. 삶에서 겪은 여러 일들이 얼굴에 더해지면서 그 이력이 얼굴의 전체적인 낯빛에 담아지는 건 감출 수가 없다. 때론 비워진 듯한 항아리 모양의 사내 얼굴에선 덕을 겸비한 포용과 수용, 타인의 존재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너그러운 얼굴빛이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지난 서릿가을의 향기가 냉기에 밀리던 날, 오랜 시간 노부부 댁의 무성한 소문에 마침표를 찍기라도 하듯 사위와 딸이 함께 살겠노라며 모시러 왔다. 다시 찬 길거리를 서성일 사내를 걱정하는 노부부를 다람쥐 도토리 숨기듯 데리고 가버렸다.
‘빈집 매매’. 골목 전봇대에 나붙은 종이가 사내의 처지처럼 위태롭게 나부꼈다. 기껏 붙어있음과 떨어짐의 차이는 종이 한 장의 두께일 뿐, 빈자(貧者)에게 허용된 저항이란 없었다. 된바람이 유난스럽던 날 전봇대마저 비워지면서 단층집도 비워졌다. 더는 차가운 길거리를 방황하는 사내도 볼 수 없었다. 맵찬 바람이 채간 찢어진 종이처럼 그렇게 사라졌다.
정동(情動)이 뒤섞여 있는 애도는 인간을 넘어 뭇 생명들의 본성이다. 더욱이 갑작스러운 단절이라면 그에 따른 애도는 더욱 간절하고 애통한 건 인지상정이리라.
우리의 삶은 상실의 연속이고 떠남과 만남의 끝없는 교차에 있다. 죽음이 아니더라도 매일 무언가를 떠나보내며 살고 있다. 어쩌면 삶이란 냉대와 배신으로 얼룩진 오욕의 연속이고 누추하고 추악한 고통의 악순환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존을 잃고 절박함 속에서 비틀거릴지언정, 만연한 어둠에 지지 않고 가느다란 한 줄기 빛을 갈망하는 삶은 고귀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