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손녀가 거울 앞에서 실랑이다. 손녀의 차르르 윤기 나는 머리를 예쁘게 묶고 싶은 할머니와 미덥지 못한 손녀의 눈빛이 거울에 얼비친다. 침침한 눈과 무딘 손끝이 자꾸 머리끈을 놓치자, 할머니는 진땀 흘리신다. 좀 전까지 발그레하니 생글거리던 손녀의 얼굴도 차츰 일그러진다. 거듭된 시도에 복원력이 떨어진 끈은 이미 늘어질 대로 늘어져 있다. 곤혹한 할머니는 울상인 손녀를 바나나 우유로 달래며 다시 끈을 바투 잡는다.
올봄엔 대전 안사돈이 오지 않았다. 매년 이맘때면 경주 벚꽃을 핑계로 다녀가셨다. 봄의 전령 같은 낭랑한 목소리로 방문을 알린 뒤, 분홍스카프를 휘날리며 왔었다. 그때서야 무딘 감성의 나는 창문을 열어젖히고 오는 봄과 벚꽃 나들이 오는 안사돈을 맞으며 봄 앓이를 하곤 했다. 그때마다 안사돈은 특별한 것 없는 내 음식 솜씨를 치켜세우며 바리바리 싸주는 음식도 기껍게 받아 가며 즐거워했었다. 그랬던 안사돈이 오지 못한다고 했다. 짧은 전화 속 넘어 안사돈의 파들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젠 더 이상 건강이 허락지 않는다는 그 뚜렷한 증거에, 팽팽했던 긴장의 끈 하나 끊어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그제야 기품 있는 히어리꽃 같은 안사돈의 그 봄나들이가 얼마나 소중한 얽힘의 돌봄이었는지를 알게 됐으니 이 아둔함을 어쩌랴. 삶 전체를 관조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지난여름엔 아이들이 집에 오지 않았다. 도심 속 달구어진 친정집이 불덩이 같다며 주저하더니 인근 도시의 숙박업소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돌아갔다. 부엌에서 땀 흘리려던 생각이 쾌재를 부르다 일시에 축축한 서운함으로 바뀌었다. 내 몸과 마음이 머무는 곳이고 가족이 함께 삶을 이룩한 공간인 내 집이 순간 외면당한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팽팽하니 이어져 오던 연(緣)의 끈이 차츰 느슨해짐을 느끼는 순간, 목구멍에 걸린 가시 같은 슬픔이 일렁였다.
그리고 지난가을, 나는 인근 오일장을 찾지 않았다. 장이 서는 날짜조차 깡그리 잊고 지냈다. 가을이면 명약 같은 햇살 받으며 인근 오일장 구석구석을 더듬던 내 오랜 습관의 끈 하나를 놓아버렸다. 덩달아 연례행사처럼 하던 도토리묵도, 늙은 호박을 사다 계단에 줄 세우던 즐거움도 잊었다. 차 트렁크 가득 가을 결실을 싣고 개운하고 말간 얼굴로 돌아오며 느꼈던 풍요의 행복감마저 놓고 말았다. 이렇듯 나이가 든다는 건, 소소하고도 작은 감정의 끈들을 차츰 놓치거나 놓음으로 한 시절의 무엇으로 기억되다 사라짐을 안다는 것이었다.
끈은 대상과 마주할 때 맺어지는 관계다. 우리 삶의 가장 아름다운 존재 양태이기도 하다. 애초에 인간은 무리 지어져 있어도 외로운 갈대 같은 존재였다. 수시로 불안에 시달리고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헛헛함을 이기지 못해 어울려 사는 존재였다. 기대며 함께할 그 어떤 끈이 필요했으리라. 그 출발은 기댐이라는 위안에서의 연대이고 공생이었을 것이다.
이제 내 인생 시계는 울울창창한 여름 숲을 뒤로하고 낙엽 진 깊은 숲으로 향하고 있다. 익숙하지 않은 슬픔 앞에서 익숙한 것들과 이별해야만 하는 저무는 생이다. 그동안 내 삶을 지탱해 온 수많은 끈의 회로는 단절도 외면도 아닌 자연의 순리에 순응해 놓음의 시간에 있다. 탄력이 떨어지고 윤기마저 잃어버린 연의 끈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들지 못하거나 더딜 것이라 해도 어쩌겠는가. 마음의 습(濕)에 거풍이 필요할 뿐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수많은 변곡점을 거친다. 그러나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예전의 그 탄성 앞에서 초연해지려 한다. 그런데 왜 돌아가지 못하는 것들과 애틋함은 그리움으로 흐르지 않고 고이는 걸까. 팽팽함이 끼어들던 내 일상이 수만은 끈의 연으로 얽혀진 행복이었음을. 그 마음으로 내어줄수록 잘 영글어 내실 있는 삶이었음을 깨닫는다. 소중한 것들이 다시 보이는 봄이다. 이 봄, 나는 또 무슨 끈 하나 더 놓아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