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일 편집부국장
곽성일 편집부국장

정치는 늘 기대와 실망 사이를 오간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국의 나침반이 고장 난 듯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시기는 드물다. 조기 대선 정국이 가시화되며, 정치의 본질은 흐릿해지고, 오히려 ‘정치 아닌 것들’이 정치의 중심에 들어섰다. 이름 없는 권력의 그림자, 사라진 책임, 반복되는 정쟁.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갈등과 무기력이다.

최근의 정국은 정치의 변곡점을 넘어, 정체성의 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새로운 세력의 부상과 구체제의 해체가 동시에 일어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오히려 과거의 유령들이 이름만 바꾼 채 반복 출현하는 형국이다. 정당은 새 이름을 내걸지만, 인물과 구조는 낡은 틀을 그대로 답습한다. 새로운 시대를 말하지만, 그 말은 대개 과거의 잔향일 뿐이다.

이런 정국 속에서 ‘누가 나서느냐’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정말 우리가 ‘누구를 선택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이다. 이 질문은 단지 후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민주주의는 절차와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 제도를 작동시키는 유권자의 선택이 깨어 있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저마다 ‘변화’와 ‘혁신’을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의 실체는 흐릿하다. 어떤 변화인지, 누구를 위한 혁신인지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혁신’이라는 단어가 오염되고 있다. 누군가는 통합을 외치고, 또 다른 이는 구조 개편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이 보여주는 정치 언어는 여전히 진영 논리에 갇혀 있고, 미래보다는 생존을, 비전보다는 계산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분화와 전환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이념의 기둥은 부서지고, 진영의 울타리는 낡았다. 정치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많은 행위들이 오히려 민주주의의 본질을 가리고 있다. 과잉된 충성, 무기력한 합리성, 사라진 책임. 이것이 오늘날 정치의 얼굴이라면, 우리는 이제 새로운 상상력을 정치에 요구해야 한다.

이런 와중에 어떤 후보는 말한다. 분열을 끝내고, 시대를 통합하며, 국가의 설계도를 다시 짜야 한다고. 전환의 정치, 새로운 기틀, 다음 세대를 위한 구조 개편. 이 말들이 단지 미사여구에 그치지 않으려면, 유권자의 냉정한 판단과 검증이 필요하다. 말이 아닌 태도, 구호가 아닌 궤적을 봐야 할 시점이다.

정치는 시대를 반영한다. 그리고 시대는 정치인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표현한다. 우리는 지금 그 목소리를 다시 묻고 있는 중이다. 침묵하지 않는 유권자, 망각하지 않는 유권자가 있을 때만, 민주주의는 작동한다. 결국 정치는 거울이다. 지금의 혼란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라면, 우리는 이 거울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깨어 있는 선택, 냉정한 판단,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을 심을 수 있는 사람’을 가려내는 눈. 정치가 방향을 잃었을 때, 나침반이 되는 것은 결국 민심이다. 거대한 소음 속에서도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권자의 직관은 때로 어떤 전략보다 강하다.

우리는 지금 또 한 번의 선택 앞에 서 있다. 그 선택이 과거로 향하는 문이 될지, 미래로 나아가는 문이 될지는 전적으로 우리 손에 달려 있다.

곽성일 편집부국장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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