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윤혜주 수필가

봄이 강물을 타고 흐르며 마구마구 피워올린 꽃들에 설렜다. 그러나 잠깐 사이, 하얀 속살 내비치던 목련이 제빛을 잃었다. 기암절벽 틈새 피었던 보랏빛 동강할미꽃도 졌다. 그러다 노란 부리를 오므리던 개나리 진 자리에 솟아난 앙증맞은 새순과 눈을 맞췄다. 다시 연분홍 불을 지피던 진달래가 지고 겹벚꽃과 철쭉꽃이 아직 봄의 향연은 끝나지 않았다는 듯 불타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죽음을 서러워하듯 툭툭 떨어지며 토해내는 동백꽃 지는 소리에 봄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아픔에 슬펐다. 봄의 마지막 책갈피를 넘긴다.

누구나 살다 보면 유난히 더 마음이 쓰이는 달이 있다. 보는 이 없어도 가족을 사랑하고 알아주지 않아도 인생을 충실하게 살지만 유독 해결해야 할 일과 생각할 일로 깊은 사유에 들게 되는 달. 내겐 감사와 은혜, 사랑과 자비로 푸른 오월이 그런 달이다. 달력엔 어린이와 어버이가 있고 스승과 부처님이 계시는가 하면, 두 분 조상님의 기일과 큰 딸아이와 그 자식이 태어난 달이기도 하다. 가만히 두 손 맞잡고 생의 전체를 움켜쥐고 있는 존재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나무의 가지는 갈라지고 갈라져서 상부에 꽃을 피우고, 또 만나고 만나서 하나의 줄기로 수렴하듯 생명의 계보를 쫓아 아득한 상념의 소실점 넘어 나를 만난다.

어버이가 있어 생의 움을 틔웠다. 세상에 필연적이라 부를 수 있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 인간의 탄생조차 수많은 우연이 겹쳐 이뤄진 결과라 생각하면 새삼 사랑하는 이들이 신비스럽다. 성장하면서 많은 이들의 칭찬과 위로, 묵직한 삶의 지혜, 따끔한 질타와 경계, 거룩한 가르침을 우연처럼 만난다. 삶이라는 거대한 서사에 약육강식이 기본 법칙인 삶 터에서 그 가르침들은 누군가에겐 징검돌이 되어 세상 향해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다. 나 또한 마른풀 같은 삶을 살다 보니 이 운명이 내 것이 맞는지 하는 생각이 들 때 ‘이웃에 마음 열고 살라’ 하시던 어버이의 다정한 참견을 떠올린다. 원치 않는 상황에 맞닥트리고 감당하지 못해 두려움으로 도망치고 싶을 때, 자포자기의 도망이 돼서는 안 된다며 극복하려는 의지와 실천의 용기를 주신 스승의 죽비 같은 호통도 있었다. 어른 또한 나이를 먹었다고 다 어른이 아니다. 어린애를 안아주고 걱정해 주고 보호할 줄 알며 자기 일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이 어른이라는 그 가르침 또한 고귀하니 감사할 일이다.

내 유년의 개울 곳곳에 디딤돌인 징검돌이 있었다. 아이들도, 바둑이도 건넬 수 있게 덤벙덤벙 놓인 징검돌은 소박한 듯 순박한 멋으로 생김새와 크기는 제각각이었다. 우리가 건너길 원하고 필요로 할 때 함께 있어 준 시간 속 결속의 돌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논밭으로 향하는 어른들이 지나가고, 학교 가는 아이들도 밟고 갔다. 하굣길엔 모여 앉아 물장구를 치고 물수제비를 뜨며 놀았던 징검돌은, 짐 진 자나 새털 같은 이들 가리지 않고 그 무게를 견디며 제 등을 내어주던 이타적인 돌이었다. 자주 찾지 않는다고 야속해 하지 않았으며 지나치게 밟아 닳는다고 불평하지 않았을 징검돌은 사람과 세상, 이곳과 저곳을 연결해 주는 듬쑥한 돌이었다. 나 또한 기꺼이 기다려주고 헤아리고 배려해 준 징검돌 같은 존재들이 있어 더 나은 존재로, 공동체를 위한 길을 고민하고 삶의 무게를 견디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다른 인생도, 다른 세상도 다시 생각하고 고쳐 읽는 삶 또한 가능했었다.

우리는 얽혀서 존재한다. 무형의 끈으로 연결된 인연으로 서로 고통을 나누고 웃음을 나눈다. 이제 보통의 삶이 얼마나 위대한지 아는 나이가 되었다. 나 또한 옹색한 등이나마 누군가 밟고 나아갈 힘이 될 징검돌이고 싶다. 하여 누구에게나 밟고 건넸을 징검돌 같은 이들의 은혜와 감사, 그 숭고한 사랑에 깊숙이 고개 숙여 볼 일이다. 찰나의 봄날처럼 끝내 변하고야 마는 것들 속에서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을 붙잡고 묵상에 드는 오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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