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일 편집부국장
곽성일 편집부국장

선거가 지나간 마을에 정적이 깃든다. 바람은 소리를 삼키고, 사람들은 눈빛을 거둔다.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던 이곳에선 그 많던 확신과 자부심이 침묵의 강을 건넜다. 움직이고 있으나 멈춘 듯한 이 적막은 단지 패배의 여운이 아니다. 더 깊고 오래된 질문이 고요 속에서 고개를 든다. 무엇이 옳았는가. 무엇을 지켰는가. 그리고 무엇을 잃었는가.

수십 년을 지켜온 정치적 확신과 뚝심은 낯선 표정으로 바뀌었다. 선거 결과는 단지 숫자가 아니다. 마음의 균열을 드러낸 사건이다. 체념인지 자책인지 모를 눈빛이 거리를 맴돈다. 말은 오가지 않지만 각자의 내면에서 되새기는 탄식이 있다.

이 적막은 정치적 패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지금의 보수가 마주한 형이상학적 침묵이다. 자신이 무엇을 지향해왔는지를 묻는 시간이다. 전통, 책임, 자유라는 단어들은 여전히 있으나, 그것이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묻는 순간, 대답은 쉽지 않다.

누구의 잘못이라 단정할 수 없다. 패배의 원인을 밖에서만 찾을 수도 없다. 내부의 분열, 끝내 봉합하지 못한 균열, 그리고 자기 성찰 없는 고집. 서로가 서로에게 등을 돌리는 사이, 적전분열은 결과를 만들었고, 그 누구도 항변하지 못한다. ‘왜’라는 질문 앞에서 마음만 곪아간다.

그러나 삶은 멈추지 않는다. 아침이면 해가 뜨고, 아이들은 학교로 가고, 어른들은 다시 일터로 향한다. 상실은 개인의 일상 속에서 희미해지고, 인간은 다시 살아간다. 정치는 결국 삶을 담는 그릇이다. 그릇이 비었다면, 다시 채우면 된다. 지금 필요한 건 무언가를 부수는 분노가 아니라, 다시 짓는 인내다.

보수란 단지 과거를 고수하는 태도가 아니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공동체의 지속성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다. 무너진 균형을 붙들고 변화의 속도를 조율하는 일이다. 지금 이 적막은, 그 본래적 사명을 떠올리게 만든다. 고집보다 겸허가, 확신보다 성찰이 필요하다.

상대를 적으로 여기는 정치는 소모적이다. 민주주의는 함께 사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지 전투가 아니다. ‘우리’만을 외치며 선을 긋는 정치는 허약하다. 고립된 보수는 더 이상 ‘전통’이 아니라, 하나의 방치된 기억일 뿐이다.

이 적막을 두려워하지 말자. 외양보다 내실, 구호보다 일상, 권력보다 품격. 그것이 보수가 다시 설 길이다. 정치는 결국, 존재의 품격에서 시작된다. 지금 이 침묵은 패배가 아니라 재생의 조건이다.

우리는 단 한 세대 안에 왕조와 식민, 분단과 전쟁, 군부와 민주주의를 모두 겪었다. 그 격동의 시간 속에서 보수는 때로는 안정의 버팀목이었고, 때로는 침묵의 공범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과연 어떤 쪽인가.

고요가 끝났을 때, 우리는 어떤 언어로 말을 시작할 것인가. 어떤 표정으로 상대를 마주할 것인가. 다시 삶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보수는 존재론을 새롭게 써야 한다. 마을을 지키는 이의 마음으로, 공동체의 질서를 품는 자세로. 웃음을 잃지 말자. 너털웃음으로 세상을 관조하던 여유를, 다시 품자.

침묵 뒤에 오는 것은 말이 아니다. 태도다. 행동이다. 삶이다. 보수의 마을에 내려앉은 적막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다시, 삶으로 가는 길이다.

곽성일 편집부국장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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